▲프랑스 동부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롱샹교회는 2차대전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대 교회건축에서 당시 대표적인 건축가 르 꼬르비제에 의해 디자인된 불후의 명작이다.

2-2 프랑스 롱샹의 노트르담 듀 오 교회
Notre-Dam-du-Haut, Ronchamp, France Le Corbusier, 1950-54


“나는 이 예배당을 건축함에 있어 침묵의, 기도자의, 평화의 그리고 영적 기쁨의 장소를 창조해내기를 원했다. 또한 이 예배당의 신성한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일하게 했다.”
- 1955년 6월 Monseigneur Dubois 주교에게 보낸 Le Corbusier의 편지에서

이 노트르담 듀 오 교회 일명 롱샹교회의 설계자인 르 꼬르뷰제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한 프랑스 건축가로서 20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추앙 받고 있는 건축가이다. 그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전 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지금까지도 현대건축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0년 전에 완성된 그리고, 20세기 건축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이 순례교회 롱샹은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감동적인 건물로서, 현대건축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며 지금도 세계의 모든 건축가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교회는 프랑스 동부의 작은 시골마을인 롱샹의 전쟁으로 파괴되어 버린 옛 교회당 자리에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졌다. 교회 부지는 사방으로 멀리 아름다운 시골 풍경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다. 로마시대부터 전략적 방어요충지였던 이 언덕은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이 봉헌된 지난 4세기 이래로 순례지였다. 13세기에 다시 채플이 지어졌고, 거기서 일어난 많은 기적의 소문이 지난 7세기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을 유혹하였다. 이 채플은  1913년에 번개에 의해 파괴되었고 대신 신고딕 양식의 건물을 지었다가 1944년 가을 독일의 공격으로 폭파되었다. 그 후 새로운 교회를 위한 디자인을 1950년에 꼬르비제에게 의뢰했다.

▲내부 예배실의 모습

2차 대전 후 수많은 교회당의 수리와 건설의 과정에서 프랑스 종교예술위원회(the Commission d'Art Sacré)는 기독교 예술을 회생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다루기 쉬운 2류의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피할 수 없는 쓰레기”대신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꼬르비제에게 이 롱샹의 새 교회당 설계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꼬르비제는 이 제의를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순례지의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면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하기로 롱샹 출생인 루시앙 르뒈( Lucien Ledeur)신부의 끈기 있는 설득으로 결국 수락하였다. 사실, 그는 사방으로 수마일의 멀리까지 펼쳐지는 부지의 경관에 매혹되었고 이러한 부지의 특성은 그의 최종 디자인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 예배당의 목적인 ‘순례’의 행렬은 그의 건축 공간 디자인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건물의 공간과 형태에 대하여 관찰자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우리는 건물을

“접근하여, 보고, 흥미가 일어나고, 서서 감상하고, 돌아다니고, 발견한다.”

건물의 기능과 관련한 프로그램의 요구사항은 비교적 단순했다. 교회는 예배홀과 3개의 부속 채플들, 순례시기에 야외예배를 위해 사용할 옥외 성소 그리고 파괴된 옛 건물에서 건져낸 ‘성모 마리아와 아기’의 17세기 조각을 위한 집을 필요로 했다. 마지막으로 언덕 꼭대기의 물 공급 부족에 대해 물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따라서 롱샹은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롱샹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의 경관 속에 하나의 작은 오브제로서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 장소가 가진 역사의 기념비이었으며 인간의 새로운 역사의 흔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샹이 건축일 수 있음은 그 형태가 기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롱샹은 하나의 사다리꼴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이를 곡선화하고, 기능과 형태에 따라 적절히 부가되고 분절되면서 비대칭적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롱샹은 곡면을 이루며 깊은 처마를 가진 지붕과 그 지붕을 받치는 두껍고 경사지고 곡면을 이루는 벽체. 그리고 수직의 탑 등 3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지붕은 교회당 뒤로부터 앞쪽으로 벽과 함께 상승하여 교회의 전면 모서리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건물 전면의 오른쪽 끝의 주 출입구 옆에 세운 큰 탑과, 건물 후면의 입구 양쪽에 서 있는 보다 작은 2개의 탑 등 3개의 탑은 이 건물의 수직적 요소로서, 벽과 함께 육중한 지붕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이처럼 상승하는 지붕의 곡면과 벽체의 곡면은 그 내부의 예배 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3개의 탑들은 내부에서 예배홀에 부가된 크고 작은 기도실로 만들어져, 형태와 내부의 공간을 일치시켰다.  

조개껍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지붕은 두개의 쉘(shell) 형태로 만들어졌고 곡면으로 길게 들어올려진 처마로 인해 대단히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평면상으로도 곡선인 벽은 위로 오르면서 안으로 경사지고 지붕을 따라 상승한다. 따라서 지붕과 벽은 서로 하나로 통합된다.

벽의 두께와 경사는 상승하는 육중한 지붕의 무게감에 대해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지붕과 벽의 곡면은 언덕이라는 지형적 특성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조각적인 형태들은 신석기 시대의 돌맨(dolman)의 강력한 힘과 필연성을 연상시켜 건축의 근원적 뿌리로부터 솟아 나온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그가 젊었을 때 방문하였던 비잔틴 미술과 희랍의 아크로폴리스의 영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면도, 내부투상도

이러한 형태의 구성은 근대건축의 원동력의 하나가 되었던 콘크리트라는 구조재료의 덕택이다. 액상(液狀)의 콘크리트를 부어넣을 형틀만 만들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는 콘크리트의 가소성(可塑性)은 롱샹만이 아니라 근대 이후의 대부분의 건축물을 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샹의 성과는 이 건축가가 재료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지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벽은 그의 말대로, “불합리하게, 그러나 실용적으로 두꺼운” 벽으로 어떤 곳에서는 3m가 넘는다. 그 깊이는 내부의 기둥들을  감춘다. 지붕은 벽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벽과 지붕 사이에 좁고 가느다란 틈을 만들었다. 벽 속에는 이전의 교회에서 수집한 깨진 기와조각들로 채워졌고, 벽의 표면은 콘크리트로 안팎을 뿜칠하여 거칠고 우둘투둘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롱샹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보는 장소마다 다양한 이미지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수목 사이로 난 좁은 언덕길을 따라 교회를 향해 올라가면, 그 길 끝에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까이서 처음 드러난다. 여기서 본 롱샹의 모습을 담은 히렐 쇼켄의 여러 장의 이미지 스케치들은 수녀의 모자나 배 또는 기도하는 손, 어린 아이를 감싸 앉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롱샹의 형태에 대한 경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롱샹은 매우 원형적이고 정체를 알 수 없어서(enigmatic) 그것은 과거와 환경과 신앙 등 모든 영향들을 흡수하여 전혀 새로운 그 무엇으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복합적인 건축적 경험이다.

그래서 외부와 내부, 지붕과 벽과 탑들, 앞과 뒤와 양 옆 모습들의 상호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그 건물의 주위와 안을 통하여 돌아다니며 시각적 체험의 여행을 하여야 한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순례교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순례자는 교회당을 오른쪽으로 돌아 북측의 입구를 향해 걸으면서, 끝없이 흐르고, 변화하며, 발전해 가는 교회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롱샹의 우수성은 다양한 요소들의 스케일의 연출과 모듈러에도 있다.

24.7m x 12.8m의 아주 작은 내부공간을 포함하는 이 기념비적인 건축은 그 구성 요소들에 따라 다양한 스케일로 구사되었다. 그는 그중에서 예배홀에 부가된 아주 작은 채플들과 창들 그리고 지붕 같은 몇 개의 요소들을 압도적으로 크게 만듦으로써 절묘한 공간적 긴장감을 부여했다.

"나는 방문자가 건물의 다른 부분들의 스케일을 쉽게 예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고 말했듯이 그는 공간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샹의 모든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건물의 모든 요소들의 크기가 인체의 스케일과 황금비에 기초하여 만든 그의 모듈러에 의해서 구성된 비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실 상부
내부 공간은 약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홀과 예배홀의 좌측과 후면에 부가된 성물실 및 3개의 작은 기도실로 이루어져 있다. 예배홀은 성소 측으로 갈수록 폭이 더 넓어지는 사다리꼴 평면이고, 천장도 성소 쪽으로 부드럽게 들어올려져 있어 회중석과 성소가 더 가까이 그리고 개방적으로 느껴진다. 더욱이, 성소와 회중석의 구별을 없애고 ‘하나의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교회의 본질인 통일성과 예배의 민주화를 공간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곡면을 이루어 볼륨감을 가진데다 거친 표면으로 인하여 더욱 육중해 보이는 어두운 천장과 거칠은 텍스츄어로 마감된 두꺼운 벽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예배홀을 마치 로마시대의 카타쿰을 연상시키는 동굴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홀은 빛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천장을 벽에서 살짝 띄워 벽을 따라 길게 난 수평의 틈을 통해 빛을 유입시킴으로써 육중한 천장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두꺼운 남측 벽에 자유롭게 뚫린 작고, 깊고, 여러 가지 색깔로 채색된 수 많은 창을 통해 내부로 발산되는 빛들은 예배 공간에 신비한 빛의 효과를 연출한다.

▲다양한 이미지 스케치
예배홀에 열린 알코브 형식으로 되어 예배홀을 공간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해 주는 크고 작은 3개의 기도실은 높이 솟아있는 수직의 공간으로, 상부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빛이 거칠게 마감된 곡면의 흰 벽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기도실을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 저절로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한다.

채플의 가구들도 꼬르비제에 의해 모듈러를 기초로 하여 디자인 되었는데, 지붕과 벽, 바닥의 동적인 선들과는 달리 엄격하게 기하학적이어서 현저하게 대조적이다. 제단은 석재로 만든 단순한 정방형이다. 걸상들은 콘크리트와 목재로 만들었다. 주철제 성찬난간은 교통 차단기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가벼운 시각적 조크인 듯하고, 바닥은 격자 패턴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작은 색 조각들은 단색조의 내부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깨끗한 색 유리는 무늬진 정방형의 빛을 떨어뜨린다. 벽 속에 상자처럼 만들어진 몇 개의 창들에는 건축가의 그림과 손으로 능숙하게 휘갈겨 쓴 경의의 단어들이 새겨져 있다.

남측의 폭 3m의 정방형 철제 출입문은 그 중심에서 피봇트 힌지로 움직이는데 그 양면에 꼬르비제의 자연의 추상적 모습(별, 구름, 강, open hand)들이 밝은 색깔의 에나멜로 그려져 있다.

이 교회에 특별히 디자인된 또 하나의 공간은 외부에 있다. 이 공간은 매년 2번씩 축제일에 모이는 수천명의 순례자들을 위해 예배당 동측에 넓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야외예배 공간이다. 야외예배를 위한 성소는 동측으로 길게 내 뻗은 예배당 지붕의 처마 밑에 내부 성소의 외벽을 배경으로 설치되었다. 여기에 제단과 성소 낭독대 그리고 지붕을 받치는 또 하나의 반 원통형 벽에 매달린 설교단이 성소를 구성하고 있다. 내부 성소와는 작은 문을 통해 연결된다. 내부의 제단 벽 상부에 사각형 구멍을 뚫어 설치된 성모상은 이 야외 예배당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외부에 설치된 또 하나의 오브제는 서측 후원에 설치된 목제 종탑인데 낮으막한 높이에 3개의 종이 달려 있어 중세의 높이 솟은 종탑과는 대조적이다.  

롱샹의 건설은 3년의 격렬한 반대 끝에 1953년 가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어지기도 전에 교회의 차고(車庫), 핵 대피호 또는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모욕적인 비난이 있었고  따라서 완성되었을 때 많은 소란이 예견되었다.

롱샹이 완성되었을 때 많은 건축가들은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과거 40년 동안 선도해왔던 근대주의 건축이념의 모든 것에 모순되어 보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당시의 건축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어떤 이는 롱샹의 이런 비이성적인 형태와 정직하지 못한 구조를 근대주의 운동에 의해 신봉된 엄밀한 기능주의를 배신한 것으로 비웃었다. 그 지도적인 건축가인 꼬르비제가 스스로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라고 선언한 일이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은 롱샹을 근대주의의 엄격한 형태에 의해 너무 오랫동안 질식된 건축을 위한 자유의 찬가라고 찬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비난과 찬양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 롱샹 교회당이 20세기 전반의 교회건축들이 중세 고딕양식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신학자들과 건축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수많은 시도들의 결정체로서, 현대 교회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또한, 롱샹은 현대건축의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지금도 신앙의 순례자 이상으로 수많은 건축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훌륭한 작품은 결코, 시대의 유행을 타지 않고 영원히 아름답게 존재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