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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정말로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을까?
<왜 성철 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를 읽고
  • 이성하 (goodsamaritan2@hanmail.co.kr)
  • 승인 2010.06.06 19:24

오늘 기독교방송에서 서울의 유명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께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시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분은 성철 스님의 고백을 존중한다고 하셨다. 그 고백은 다름 아닌 그렇게 수양을 많이 하고도 유언으로 남긴 말씀에서 자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속였다는 자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책이 1998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로 이 책의 내용은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아마 수도 없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내가 들은 것만도 수차례이고, 요즘도 아주 가끔씩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난감했다. "그게 아닌데..."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게 사실일까? 정말로 성철 스님이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나셨을까? 저자인 류범상 목사님은 성철 스님의 다음과 같은 말을 문제 삼고 있다.

"내 말에 속지 말라,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여!" (1983년 하안거 결제에서의 말씀)

"한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다.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 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성철 스님의 열반송)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부처님입니다!"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

류범상 목사님은 이 말들을 근거로 성철 스님이 사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했느니, 죽어 가면서 결국 천추의 한을 안고 지옥으로 갔느니 하는 말을 서슴지 않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그건 류범상 목사님이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학승이요 선승이셨던 성철 스님이 그런 의도로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불가의 가르침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어도 그런 막무가내 해석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대단한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학승이시면서도 선승(禪僧)이셨다. 당대의 선불교 학자들과 나란히 토론하시면서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대해서 설파하실 정도로 탄탄한 이론적 바탕을 이루신 분이셨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장좌불와, 면벽 수도 등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수행의 고난으로 다듬으신 분이셨다. 성철 스님의 이러한 모습들은 그분의 시봉 스님이 저술하신 성철 스님 시봉기에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성철 스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불가의 가르침 중에는 '분별지'(分別智)를 넘어서라는 가르침이 있다. 분별지란 너와 나의 다름, 이것과 저것의 다름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을 말한다. 불가에서는 이 분별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참다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의 법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 연기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없으며, 서로 간에 무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다 이 연기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기법에 비추어 볼 때 남과 나의 다름이 아무것도 아니며,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결국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물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타인에게도 무한한 자비심을 느낄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나의 업보와 타인의 업보가 만나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만들어 내고, 내 전생과 타인의 전생이 얽히고 얽혀서 현세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누가 누구를 탓하고,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서로서로 자신의 업을 감당하고, 그 악업을 끊기 위해서 노력하고, 참다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인 것이다.

심지어 불가에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부처를 미워하고 저주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무엇이든 집착하는 것은 다 미망이고 허상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실체,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어떤 절대적인 가르침이나 권위가 되었든, 그것에 붙들리는 순간, 허상에 빠진다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

부처마저 넘어서야 하고, 부처마저 집착의 대상이 아닌데, 성철 스님이 자신의 가르침인들 소중하게 생각했겠는가? 자신을 거짓말장이로 표현하고, 자기의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다고 한 그 말, 한 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다는 그 말은 자신의 말과 가르침을 심지어는 성철이라는 인간 자체를 존경할 것도, 절대화할 것도 없다는 철저한 자기 비움의 말씀인 것이다. 그분은 살아생전에 생불이라는 존경을 받았지만, 그걸 그분이 기뻐하고 즐겼겠는가?

성철 스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 중에 누구든지 성철 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3천 배인지 1천 배인지 절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했다. 왜 그랬겠는가? 숭배를 받고 싶어서? 아무나 만나 주지 않기 위해서? 아닐 것이다. 성철이라는 유명세를 타는 스님을 찾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3천 배든 1천 배를 하면서 성철을 만나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자기 속에 있는 부처를 스스로 만나서 깨우치라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도 자신의 모든 저술을 다 불태우라고 유언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를 절판하라고도 하셨다. 법정 스님의 이러한 유언도 성철 스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것 가지고 스스로가 회개했다느니, 사탄을 숭배했다느니 하는 것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말미에 있는 신문 기사 스크랩을 보면 성철 스님이 사탄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 좀 더 자세하게 실려 있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탄과 부처는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 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이 법어에서도 성철 스님은 분별지의 허망함을 설파하고 계신다. 부연하자면, 결국 이 말씀은 '무엇이 사탄인가? 무엇이 부처인가? 무엇이 악한 생각인가? 무엇이 선한 생각인가? 그것도 다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아닌가? 이 사람이 볼 때는 악한 행위가 저 사람이 볼 때는 선한 행위가 되기도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나누겠는가?'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불가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불가의 맥락에서 보고 이해를 해야지,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성경 말씀 중에 어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하신 선생님이여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선하신 이는 한 분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하셨는데(눅 18:18), 불가의 누군가가 이 말을 트집 잡아서 예수님은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하셨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건 성경의 문맥에 맞지 않고, 당시의 어법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의 말씀들도 불가의 맥락에서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배타성은 남들보다 더 철저하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진리를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가장 뛰어난 사랑의 실천. 가장 탁월한 진리 사랑. 그 배타성을 나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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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1
  • 구름바람 2010-06-12 13:15:30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런 식의, 사실에서 어긋난 사항을 바탕으로 하는 호교론적 주장은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전술적으로도 매우 잘못됐습니다. 그리고 비신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하려면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성 아우구스티노도 '자유의지론'에서 마니교를 겨냥해서 논지를 전개할 때, 비그리스도교인들과 대등한 상태로 논증하고자 최대한 객관적으로, 비그리스도교인 철학자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려고 썼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자들 정신교육밖에 안 되어요. 외부에 선교함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삭제

    • 이상덕 2010-06-12 09:46:06

      본 글을 불교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앞에서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자는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들 모두도 하나님안에서 품고 기도하고 사랑해야 영혼이기에 본 글의 저자의 마음과 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러한 마음으로 그들 입장에서 이렇게도 해석하면서 그들 모두를 성경의 참된 진리로 온전히 인도하고자 복음의 뜨거운 열정이 있다면 타종교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날때에는 그들을 향한 열린 마음의 표현으로는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제가 염려하는 것은 하지만님께서 염려하는 바와 같이 뉴스엔죠이와 여기의 필자들은 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고 성도의 말과 글은 언제나 하나님자녀다워야지 하나님의 자녀의 말과 글이 반그리스도의 정서를 대변하려는 궤변을 계속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뉴스엔죠이와도 정 반대의 주장으로 생각됩니다. 제발.....   삭제

      • 섬과바다 2010-06-11 17:02:43

        기독교는 타력종교지만 불교는 자력종교로 구원관과 별도로 얘기한다면 선승들이 목사님들 보다 우아하고 존경스럽다고봅니다. 기독교는 자기변화는 안하면서 무조건 믿어라 개떡같이 살면서 값싼구원론을 남발하지요.오직 예수로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지만 목사님들 보다 정직하게 선하게 산 스님들이 있다면 그분들이 무조건 지옥간다고 주장한다해도 불교는 존재하고 세계에서 한몫을 차지하니 다원주의문제를 고민해 보지 않을수없네요. 선승들의 구사하는 용어를 불교적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지요 아전인수격으로 하면 무식한 소치입니다.   삭제

        • 구름바람 2010-06-11 15:26:37

          손용현// 별로 안 비슷한데요. 도대체 어딜 봐서 비슷하단 말이 나옵니까.

          하지만, 이상덕// 이 기사 본문에서 언급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라는 말이 선불교계에 전해지죠. 어느 중국 스님은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리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스님이 '난 부처를 죽이겠다'라든가, '난 지옥에 가 마땅한 죄인'이라고 생각했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그 말을 한 스님의 일생을 보면 스스로가 저주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에요. 불교에 나오는 지장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는데도 거부하고 지옥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제도할 때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지요. 불교에서 지장보살을 저주받은 존재로 생각할까요?

          즉, 다른 종교를 깔 때는 다른 종교의 논리에 따른 주장을 제대로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깔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리스도교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올바른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방어했지요.

          성철 스님에 대해서 개신교권은 악의적으로 왜곡한 여러 가지 일을 들먹였습니다. 성철 스님이 사탄을 숭배한다 어쩐다 했다고 말하면서 인용한 기사도 기사 본문을 읽어보면, 성철 스님이 정말로 '난 악이 옳다고 믿으며 악령을 숭배한다'라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닙니다. 그냥 전형적인 불교식 사상인 '이원론적 구별을 부정하는' 상징으로 부처와 악마를 대입시켜 말했을 뿐임이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거 하나도 안 따지고 성철 스님이 악마를 숭배한다고 인정했네, 자기가 죽어 지옥에 갈 게 확실하다고 직감했네 이런단 말이지요. 이것은 명백한 사실왜곡입니다.   삭제

          • 필 하모닉 2010-06-11 13:30:50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인간의 구원을 얘기하며, 불교는 자기비움과 성찰로 말미암은 깨달음과 이를 통한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력수도에 의한 해탈을 가르친다. 즉, 구원의 의미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와 같은 타종교에도 일차적 은혜 즉, 일반 은총의 영역에 있음을 인정하나, 그리스도교는 성경의 언약에 근거한 특별은총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단자라도 상종하지 말라고 하셨거늘 타종교랴. 그러나 일부러 그들을 차별할 필요는 없다. 그들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거늘...   삭제

            • 손용현 2010-06-11 10:30:24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 6:5

              "한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다.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 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성철 스님의 열반송)

              이사야 선지자의 하나님 경험과 성철 스님의 죽음을 앞둔 고백이 비슷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삭제

              • 마가복음 2010-06-11 09:58:34

                예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 교포 딸과 어머니가 산에 있는 별장으로 놀러 갔다가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별장에 불이 나서 딸이 그만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불을 진화하러 왔던 미국인 소방관이 한국인 어머니가 "내가 죽였다"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이는 것을 보고(영어로), 경찰에 고발해서 그 어머니가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방송에서도 보도된 내용인데요, 말이나 글의 맥락을 떠나서 이해하면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재판정에서도 판사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이 딸을 죽였다는 말을 했습니까?" 어머니는 "예"라고 대답했고요. 소방관은 그 말에 증인으로 참석했고, 배심원들은 경악했고요. 방송에서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해주는 변호인이 없어서 유죄판결이 났다는 교포들의 말을 전하더군요. 마찬가지 입니다. 불교의 어법과 기독교의 어법이 다른데, 불교의 말을 기독교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삭제

                • 가람 2010-06-11 08:03:38

                  글의 내용이 구구절절히 바른 지적으로 생각됩니다.
                  되도록 타종교를 비방하는 것도 삼가야되지만....

                  타종교인의 글을 문제삼을 때는 그 종교에 대한 가르침과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 비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주 많은 경우 목사님들이 이런 실수를 자주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죠~   삭제

                  • 이상덕 2010-06-10 20:53:32

                    본 글쓴이가 하나님으로 난 사람인지? 반그리스도인인지? 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수는 없지만 글의 주장만으로 볼 때에는 교회적으로 볼 때에 여러가지로 이해안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류목사님과 당시에 중앙지기자들이 성철스님이 안한 말을 했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언론과 불교계와 국민들에 공개된 내용을 가지고 말한 내용 그대로를 가지고 성경적인 신앙안에서 성철스님의 말한 내용들을 재조명하고 불신영혼이나 타종교인들에 대한 영혼구원열정과 교회와 성도들이 가진 복음과 진리를 깨우기 위한 좋은 자료로서 책도 출간하고 설교중에 인용도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와 불신자들과 모두를 위해서 너무나 좋은 의도인 것이 확실한데 왜? 어떤 뜻으로 본 글의 기자는 교회와 류목사님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그토록 반대를 하고 싶어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본인께서 성철스님과 대면하여 그 속마음의 뜻을 마치 들은 것도 아닐텐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성철스님의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아니한 내면의 깊은 뜻을 자신만은 깊이 마치 깨달아서 알고 있는 양 미화하고 또 미화한다면.....이것은 뭔가 많이 다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 기자가 불교인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많은 내용들을 다시한번 복음과 진리안에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있는 그대로를 해석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과 성도앞에서 당연한 도리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삭제

                    • 와사등 2010-06-10 19:59:18

                      이런 분이 계시는한 개신교에도 희망이 있네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 잘 읽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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