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에 마음 졸이며 저하된 면역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는 20대 중반을 넘어설 준비 중에 있는 정체 모를 음대생입니다.

저는 이제 막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면서 그저 음악으로 삶을 달래고 있는 졸업생입니다. 우연히, 대학 입시 교육에서만 접했던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보고자 재미 삼아 근현대사를 공부하던 중 5·18의 광주라는 역사 앞에 시선이 고정돼 처참했던 과거의 현장에 마주서게 되었습니다.

근현대사 공부를 붙들면서 강의에만 의존되어 제 나름의 밑거름이 된 공부를 하진 못했지만, 1970년대와 80년대의 광주만큼은 한 사건이라도 기억 속에 심고 싶었습니다. 한 나라의 주인을 잃게 했던 그 날에 대한 당혹과 울분을 잊을 수 없었기에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광주가 왜 역사에 중요한 거점이 되는지에 대해 무지했고, 지역감정이라고 하는 편중된 시각으로 왜곡되게 그 도시를 바라보며 내가 살아가는 인생과는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저는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했던 광주였습니다.

그런데 광주에 가기 며칠 전 한홍구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 사실적인 5·18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민주화 운동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한 나라에서 시민을 무고하게 학살했던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5·18 광주로 떠나는 날, 처음 가 보는 기행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용기 내어 선택한 광주의 땅이 저에게 '어떤 진실을 말해 주려 할까?' 하는 사실과, 광주로 이끌린 사람들과의 만남에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역사 앞에 감흥 없이 살아가던 시간에 대한 회심이 필요했고 광주에서의 만남은 또 다른 생각으로 저를 움트게 했습니다.

광주로 들어서서 여러 만남들을 갖게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상무대라 하는 민주 세력 수용소에서의 체험은 상상 밖의 고통과 엄숙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5·18의 죽음 앞에서 놓여 난 살아 있는 5·18의 사람들과의 만남, 당시 고문당했던 장소와 가족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감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광주를 기억하는 그들의 증언과 외침은 산 자의 얼굴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 5·18 자유공원에서 영창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 제공 기독청년아카데미
낮에는 외부로 나가 몸으로 광주를 만났고 해진 저녁에는 언어와 소리로 그려지는 광주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리인 광주의 5·18은 말러의 교향곡 2번 중 5악장의 <부활>로 살아나와 저의 온몸을 선율로 꽤뚫고 집어삼킬 듯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작곡가이며 지휘자였던 말러는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남겨져 있는데, 그 말러가 5월 18일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과 그의 교향곡 2번의 한 악장, 한 악장이 광주의 죽음과 부활에 같은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역사와 음악의 공존이 다른 시대를 살다 간 말러와 광주 사이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말러의 <부활>이란 곡은 김상봉 교수님의 노랫말을 엮어 만들어 냈는데 노랫말과 음악이, 그리고 음악과 광주의 정신이 깃들여져 죽음이 부활이 되는 웅장함과 행진 속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주의 시민들이 눈앞에 되살아 나오는 듯한 감동을 전해 주었습니다.

음악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무겁고 힘든 일이지만, 이번 광주 기행은 역사를 배우게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으로 소통되는 정신과 울림이 저의 삶에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장벽을 광주의 부활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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