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은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아직도 내 귀에는 518명의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장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살기위해 죽으리라. 네가 꿈꾸던 세상 이제 내가 이루리라..."

망월동 5·18 민주 묘지에 묻힌 수많은 열사들은 "우리들을 기억하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듯하다.

나는 지금 울고 있다. 그리고 나는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수없이 죽어 간 영령들에 대해, 그리고 볼 눈과 들을 귀를 마음으로 막고 살았던 나의 삶에 대해...

내 나이 불혹까지도 아무런 역사의식이 없었고, 오직 개인의 안락을 위해 삶을 살았던 극히 사적인 존재가 오월의 양심이 자리한 광주를 만나러 떠났다. 광주를 만난다는 것은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자 나의 삶을 뒤돌아보는 행위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었다. 너무 늦게 인격으로 만나는 광주였다.

그리고 역사의 씨앗을 심어 주려 사랑하는 두 아이와 함께 떠났다. 너무 어린 나이에 국가의 절대 폭력과 힘없고 순수한 민중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을 알게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는 수많은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아이들이 지닌 내면의 힘을 믿으며 함께 길을 나섰다.

5·18을 직접 몸으로 막아 낸 역사의 증인이신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며, 계엄군에게 상무대로 끌려가 참혹한 고문을 당하신 분들의 증언 속에서, 여러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김상봉 교수님의 '5·18을 생각함'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아이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어느 하나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하고 함께 보고 함께 느낄 뿐이었다. 아이들이 듣기에는 어렵고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묵묵히 함께 해 준 딸과 아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도 작은 씨앗 하나가 움트고 있다는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는 사람들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솟네'라는 노래를 부른다.

▲ 5·18 광주의 그날을 돌아보며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도 역사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록 어리지만, 그들이 지닌 내면의 힘으로 역사의 어두움을 이겨 나가리라 확신한다.  
1980년 5·18 광주 민주 항쟁이 있은 지 30년이 지난 오늘, 광주는 여느 도시보다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5·18의 정신을 잘 간직하고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나도 이미 굳어진 내 몸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진정 신앙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리라.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과제들이 있는데 그저 눈 감고 귀 닫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돌아보는 작업을 해야겠다.

새롭게 체감되고 실감하는 역사가 나와 나의 자녀들의 양심 깊은 곳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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