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특별한 곳이 아닙니다. 광주는 민주화 성지가 아닙니다."

5월 14일부터 16일 2박 3일간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간 광주 5·18 역사 기행 중에 함께 안내해 주셨던 곽영걸 장로님께서 하셨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지금껏 광주에 갈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전라도의 다른 지역은 가 보았지만, 유독 광주만은 갈 일이 없었습니다. 광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가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지 못했던 것이죠.

광주 5·18이 올해로 30년을 맞이했습니다. 흔히,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고 합니다. 30년을 지나는 지금, 광주 5·18로 자신의 삶을 바꿨던 광주 세대가 시대에 대한 자신의 책무에 종언을 고하고 다음을 살아갈 세대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시대 앞에 서 있다는 깨달음 속에 이번에는 꼭 광주를 가야만 했습니다. '광주 5·18 세대 이후의 세대로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화두를 붙잡고 광주로 나섰습니다.

첫 걸음은 망월동 5·18 구 묘역에서 시작했습니다. 광주 5·18때 희생되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묘 또한 함께 있었습니다. 억압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어난 삶과 운동은 그때 당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광주 망월동 5.18 구 묘역에서 당시 민주 항쟁에 함께하셨던 김상집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계엄군 진압 이후 생포된 시민들이 조사받았던 광주 상무대 영창이 보전되어 있는 5·18 자유공원에서는 당시를 재현하는 체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피해를 입었던 5·18 구속부상자회 회원들께서 직접 군복을 입고 계엄군의 역할을 해 주셨고, 방문객들은 붙잡힌 시민군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리걸음을 걷고, 진압 충정봉의 위협을 느끼고, 영창 내부와 재판장을 보며 30년 전을 느껴 보았습니다. 함께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체험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오는 중 "아, 살았다!"라며 외쳤던 한마디는 우리의 심정을 함축해 주었습니다.

저녁에는 광주 5·18때 직접 참여하셨던 김상집 선생님과, 부산 출신이지만 광주 5·18의 빚을 따라 살아오시고, 광주 5·18을 철학적으로 해석해 가고 계신 김상봉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상집 선생님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30년 후의 청년들 앞에서 우리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았다고 증언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김상봉 교수님으로부터 '피'로 대표되는 타인의 아픔에 함께한 응답, '총·수류탄'으로 상징할 수 있는 세상의 악에 맞선 싸움, '주먹밥'으로 말할 수 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약탈 없는 치안을 유지하였던 광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현대사 속에서 5·18이 가지는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잘못 없는 시민을 죽였던 국가 권력의 횡포는 30년 전 광주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국가가 자신의 욕구 달성을 위해 시민을 죽일 수 있는 폭압적 주체가 된 30년 전의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폭압적 주체는 자본을 등에 업고,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 모두를 낙오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갈릴리 시골 출신인 예수는 폭압적 권력 제국인 로마의 최전성기에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려고, 제국 권력에 저항하며 십자가에서 자신의 삶을 산화했습니다. 30년 전의 광주 시민들은 폭압적 국가 권력의 압제 앞에 자유를 부르짖고, 함께함으로 저항하며, 10일이 되는 마지막 날 광주 도청에서 각자의 삶을 산화했습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 이후, 도망쳤던 제자들은 그 빚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자신들의 삶을 예수의 삶을 따라 산화했습니다. 광주 5·18 이후, 80년을 살았던 학생·시민들은 광주의 빚을 마음에 간직하며, 역시 자신들의 삶을 산화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은 예수 사건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곳만의 특별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만이 하나님나라 운동의 성지가 아닌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광주는 그 사건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광주만의 특별함으로 그치는 사건이 아닙니다. 광주 도청이 민주화의 성지가 아닙니다. 그곳만이 생명과 평화의 삶이 있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호흡하는 이곳, 이 순간이 하나님나라로 살아가야 하는 장소와 때이며, 30년 전의 광주로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2010년이 지나는 한국을 사는 지금, 이후 세대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답은 광주 5·18을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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