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기 전 우리가 목회했던 태인중앙교회는 아주 높은 곳에 있었다. 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간 후 또 몇 십 미터 걸어가면 사택 대문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태인중앙교회로 부임하기 전 황산중앙교회에서 목회 할 때 구입했던 오토바이가 한 대 있었다. 이 오토바이는 우리의 자가용이었다. 그런데 태인중앙교회의 사택에서 살게 되면서부터는 이 오토바이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출입구라고는 수십 개 되는 긴 계단뿐인데 탈 때마다 그 오토바이를 무슨 수로 끌고 오르락 내리락 하겠는가. 남편은 궁리 끝에 이 오토바이를 누구든지 소용되는 사람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유동열 집사라는 분이 있었다. 이분은 부모도 없이 고아와 마찬가지로 눈물겹게 자라나 갖은 고생 다하면서 인생을 살아오던 중, 어쩌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자신의 삶의 목표가 하늘의 소망으로 바꿔진 분이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성실하게 농사 열심히 지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남편을 감동시켰다.

이 분들이 사는 곳은 교회에서 차를 운행해야만 오고 갈 수 있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성칠리라는 마을이었다. 새벽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싶어도 새벽까지 교회차를 운행할 수는 없었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남편은 유동열 집사님께 오토바이를 드렸다. 유 집사님의 기쁨은 아주 컸다. 제대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집사님은 이제 버스를 타느라고 시간 맞춰 먼 길 걸어 나갈것도 없이 집 마당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못 가는데 없이, 자기 부인까지 싣고 깃발 날리며 다니셨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다보니까 그 편리함을 알게 되어 차가 있으면 정말 좋겠네,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유 집사님은 운전면허를 따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그건 이분에게 있어서 높디 높은 산이었다. 이분은 본래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이 없는 분이다. 나는 이 분이 적어놓은 감사헌금 봉투를 어떻게 하다가 한번 본 적이 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이 읽는다면 뭔소리? 하고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아주 서투른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감삼금'

유 집사님은 무조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운전에 관한 책이나 문제집, 또는 녹음테이프까지 완벽하게 갖춰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글씨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정말 이론이 문제였다. 훗날 부인되는 최 집사님께 들은 얘기다.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만 쑥 빠져나가 문제집을 쳐들고 둘이 앉아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하는 식으로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는 것이다. 고시공부가 따로 없었다. 그토록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합격이었다. 하도 떨어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수입인지를 붙일 곳이 없게 될 정도였다.

그러나 <한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말도 있고 <열심한테는 못 당한다>는 말도 있잖는가. 칠전팔기가 아니라 십 몇전 십 몇기를 한 후 유집사님은 드디어 이 필답고시(?)에 합격했다. 경사가 난 것이다. 그 다음 실기는 쉽게 합격이 되었다. 유집사님은 농사철만 되면 경운기, 트렉터를 타고 그 동네 논바닥을 누비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교회도 들썩하고 온 동네방네 야단이 났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다. 길에서 유동열 집사님을 만나면 붙잡고 '자네, 돈 얼마 써서 면허증 땄는가?' 했다는 것이다.

이제 자신은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유 집사님의 마음 속에 넘쳐났다. 안 그러겠는가.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 라고 생각하면 되었을 지난날 유 집사님의 실력이 이제는 공식적으로 놀랄만하게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평상시에도 이 분은 늘 웃는 낯인데 이 무렵에는 더 웃고 다녔었다.

유 집사님은 차도 샀다. 순전히 그 동네 사는 교인들을 위해서였다. 뒤에 사람이 많이 탈수 있는 그런 형태의 차를 구입해서 사람들이 모두 앉을 수 있도록 개조했다. 교회에서 차를 운행해야만 오고가고 할 수밖에 없었던 10가정이 넘는 이 동네 교인들은 이제 유동열 집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예배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아무것도 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동열 집사님은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주님 섬기는 것을 나는 똑똑하게 보았다. 유 집사님의 마음속에 예수의 진리가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연필잡고 공부라고는 해 본 적 없었던 이 분이 '나도 하면 될 것이다'라는 각오를 할 수 있었던 그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었을까? 내가 비록 부족하고 미련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면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바로 이 분을 일으켜 세운 비결이었을거라 여겨진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적극적인 생각.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광주 산월교회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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