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대추나무를 보면 지난겨울 혹시 죽어버린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납니다. 옆에선 앵두나무나 복숭아나무는 봄이 왔다고 꽃을 피운 지가 언젠데 대추나무만 게으름뱅이처럼 서 있습니다.

가지가 반들반들 물이 올라 푸른빛이 돌거나 꽃눈이 툭 불어나거나 그 어떤 표시도 안낸 채 삭정이처럼 그대로 있어 톡 꺾어 보고 싶지만 기다립니다.

이 곳에 오던 첫 해에 대추나무 다섯 그루를 심었습니다. 너무 어린 걸 심었는지 가지가 꺾여 죽어버리기도 하고 여기 저기 옮겨 심다가 뿌리를 제대로 못 내려 죽어버린 것도 있어 끝내 살아남은 건 한 그루뿐입니다.

이제는 열세 살, 제법 커서 한 여름엔 창가에 햇볕을 막아 그늘도 만들어 주고 작년 가을엔 대추도 한 바구니나 열렸습니다. 어릴 적 뛰어 놀다 대추나무 가시가 눈동자에 박혀 눈이 멀 뻔했던 기억 때문인지 나무보다 가시가 먼저 눈에 띄어 혹시나 누군가 다칠지 모른다고 아예 대추나무의 자리는 마당 앞이 아닌 집 뒤 언덕바지에 심었습니다.

몇십 년을 좋아하지 않던 나무에게 관심이 가는 건 나이가 든다는 표시인가 봅니다. 언제부턴지 대추나무나 밤나무처럼 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조용히 열매 맺어 여물어 가는 이런 나무들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고운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날 때도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5월이나 돼야 가지마다 연두 빛 싹이 트고 잎이 돋아나지만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찬바람에도 열매를 줄줄이 달고 마지막 단물까지 꽉 채우고야 잎새를 떨구는 끈질긴 생명력엔 이른 봄 화려했던 나무들이 저절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나무입니다.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꿈쩍 않는 대추나무에게서 무성한 여름과 탐스런 가을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모습이 때론 너무 늦게 가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질 때 너무 뒤쳐져서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집 뒤 언덕바지에 선 대추나무를 바라봅니다.

바보같이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부지런히 뿌리를 뻗어 땅속에서부터 일을 시작하는 대추나무처럼 참고 참았다가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 찬바람을 이겨낸 달고 맛난 열매를 한 아름 그 분께만 몽땅 쏟아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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