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축제이다. 축제는 즐거워야 한다.모든 성도들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지난 한 주일간도 풍성한 은혜로 인도해 주셨음을 감사하며 모든 영광, 모든 가치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의 요소로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고 말씀이 있고 응답이 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이다.말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는 없다. 특별한 소명과 훈련을 받은 목회자들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목사는 기능상의 한 직능이지 그것은 계급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목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교회의 목사는 마치 큰 회사의 회장행세를 하려 든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는 지방에 집회 마치고 돌아올 때, 새벽 2시라도 부목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열하여 맞이하지 않으면 벼락이 떨어진다고 한다.

담임목사의 오만과 독단은 주일날 강단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많은 부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1- 5부, 혹은 그 이상의 예배 설교를 독점한다. 사명감에서 한다고 하지만 자기만이 능력이 있고 성별되었다는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떤 대형교회목사들(순복음, 광림등)은 본교회에 만족하지 않고 여기 저기 체인점(?)을 만들어 놓고 위성으로 담임목사의 설교를 중계, 시청하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하게 한다. 미친 짓이다. 그렇다면 부목을 비롯한 사역자들은 무엇때문에 두는가? 신학교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사회나 보고 헌금이나 정리하고 청소나 하려면 막 일꾼을 써도 좋지 않겠는가?

강단을 독점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자기 도취때문이기도 하지만 강단 상실은 곧 권력상실로 이어진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믿음 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불신앙때문인 것이다.

설교의 독점은 아울러 설교의 부실을 가져 온다. 사람의 육체는 지탱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매 주일, 수십번 설교를 계속하다 보면 '탈진'하게 된다. 들어가는 것(in put)은 없고 쏟아내기만(out put)하니 결과는 뻔한 일이다. 목회자의 격무는 결국 자신을 망치고 교회에서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게 하고 교회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모든 목사는 주일에 한 번만, 그리고 모두(부목들)에게 말씀 선포의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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