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김 목사의 몇 줄의 글이 한국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30년 동안 금란교회를 감리교 최대의 교회로 부흥시키고, 자신의 존재가 이 만큼 알려졌으면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지도자의 모범을 보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그를 존경하며 본받을 것이다. 아직까지 무엇이 부족하여 탐욕과 교만으로 자신의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어지럽게 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 김 목사의 잘못된 신학과 신앙을 집어보고자 한다.

1. "핍박받는 대형교회"란 말의 부정적 의미

"핍박받는 대형교회"란 말에서 무엇이 대형교회인가? 흔히 사용하는 대형교회니 소형교회니 하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보편적 교회가 있으면 그 아래 흩어져 있는 모든 개 교회들은 지역교회들이다. 모든 지역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보편적 교회를 떠받치는 작은 가지들에 불과하다. 기이한 것은 한국교회 안에는 기형적인 대형 가지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무의 원기둥이 바칠 수 없이 커진 가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가지들이 한번 흔들릴 때마다 나무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교회 성장이니 교회 부흥이니 하는 말은 최근에 생겨난 말들이다. 교회 성장이란 말은 교회 성장학의 창시자 맥가브런에 의해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풀러신학교 교회성장학 교수 피터 와거너와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에 의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학문의 발달과 함께 교회의 성장이론도 학문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유능한 경영인이 되기 위해서 MBA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교회성장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교회 안에 일고 있는 인본주의 사상과 함께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또한 인정받은 시대가 되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대교회에서 성도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오늘의 교회성장과 부흥으로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에 나오는 교회에서 수가 늘어나는 것은 시대적으로 복음이 전무한 곳에서 구원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말한다. 오늘날처럼 어느 교회가 부흥했다 어느 교회가 성장했다는 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구원 받은 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보편적 교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어느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성장했다 너희 교회가 부흥했다는 말은 그것 자체가 모순이다.

교회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수가 늘었다고 말하려면 복음이 전혀 접해보지 않는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유동적인 사회구조로 전혀 복음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전도자 한 사람을 통해서 구원 얻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여러 사람과 여러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70년대 80년대 도시 교회들이 대형교회로 주로 성장하였다.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교회를 같이 다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도시교회 교인이 되어 중직들을 맡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한사람 늘어나면 교회가 부흥(성장)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적합한 표현인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는 부르죠아 즉 재산계급으로 보기 때문에 무산대중 즉 프롤레타리아의 적으로 선전하면서 공격과 파괴의 적으로 삼고 있다. 그런 연고로 좌경사상을 가진 언론인들이 불건전한 Mass Media를 통하여 대형교회를 무차별 공격하며 파괴하려고 든다. 특별히 가슴 아픈 사실은 열악한 환경에서 목회하며 가난과 싸우는 젊은 목회자들을 자극하고 선동하여 대형교회를 무참하게 혹평하며 공격하게 만든다."

위의 말이 김 목사 자신의 말인가 아니면 누구의 말을 인용한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한 사회구조처럼 불의한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김 목사 자신이다. 김 목사는 분명히 자신과 같이 대형교회와 목회자를 부르죠아(재산계급)으로 열악한 환경의 소형교회와 목회자들을 프롤레타리아(무산대중)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형교회와 목회자들로부터 대형교회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이 어느 정치가의 사상인가 기업주의 생각인가 아니면 금란교회 김 홍도 목사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공의와 공평이 강 같이 흐르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사의 신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메시아의 왕국이 좌파적 집단인가? 이러한 궤변을 통해서 자신의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감리교와 한국교회 전체를 기롱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목회하며 가난과 싸우는 젊은 목회자들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것은 바로 김 홍도 목사 자신이며, 부도덕한 대형교회 목사들이다.

"핍박받는 대형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과 대형교회가 핍박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자신의 교인들과 그를 추앙하는 자들에게 동정을 사려는 것처럼 보인다.

2. 금란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지혜자는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잠 30:21-23)고 하였다. 김 목사는 금란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자신의 능력과 수고의 결과로 여기고 있다. 자신이 충분한 자격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대형교회를 맡겼다는 주장이다.

"옛날에는 교회를 부흥시키면 "수고했다"고 "어쩌면 그 교회를 그렇게 부흥시켰느냐?"고 칭찬해주는 말을 들었으며, 그 지방이나 연회나 교단의 자랑거리로 여김을 받아 왔다. 그러나 근래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많은 목사와 교회의 비난과 혹평을 받으며 죄인 취급을 받는다."

"사실 큰 교회 목회자일수록 남이 편히 잠잘 때 밤을 새우며 기도했고, 남들이 놀러 다닐 때 극기 절제하며 살아왔고, 남들이 배불리 먹으며 즐기고 있을 때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한 사람들이며, 남들이 저금통장을 불려갈 때 내핍 생활과 무저축 생활로 헌신과 희생의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도 사람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도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고난과 희생의 생활은 보지 못하고 화려해 보이는 현재의 모습만 보고 가혹한 비판을 하며 데미지를 입히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대형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그만한 그릇으로 수련을 쌓고 준비되어야 하나님이 큰 교회로 맡겨 주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맡겨줘도 감당하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과 수고와 노력에 대한 자기 자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고 하셨다.

세상의 기업주들이 죽을 고생을 해서 사업을 일으키고는 자신이 그 모든 열매를 거두어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이 큰 그룻이 되어 대형교회를 맡았으니 이제 좀 누려보려고 하는데 무엇이 잘못이냐 라는 식이다.

김 목사는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목적이 연회나 교단의 자랑거리로 창찬을 받기를 원해서 인가 물어보고 싶다. 근래에 대형교회의 악습을 인하여 칭찬을 듣지 못하게 되니까 가장 기분상한 것은 바로 자신이다. 누가 무조건 대형교회를 나쁘다고 비난하겠는가. 큰 교회는 사회적 윤리적 책임이 그만큼 크다. 현실적으로 대형교회들의 하는 작태는 비상식적이고 기복적이고 혼합주의 신앙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큰 교회들 중에서도 칭찬 받을 만한 교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위의 글이 감리교의 감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교만하고 독선적이다. 교단의 전체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이 서신의 격식이나 예의를 찾아 볼 수 없다.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자신의 할 말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성회를 모독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소아시아에 많은 교회를 개척하여 주의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을 하였음에도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를 데려다가 임금 삼으려 하여도 그들을 피하셨다. 교회의 머리로 군림하려는 행위는 분명히 스스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종들은 자신의 고난과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다.

아마 교회성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목회자들이 대부분 김홍도 목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고난을 과장하여 신화화하여 무지한 신도들이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한다. 나는 대형교회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구원 얻은 백성이 많이 모이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대형교회들이 행하는 작태를 인하여 분노하는 것이다. 대형교회 장로들은 목사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어 있다.

기득권을 가진 장로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결코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목사를 추앙하고 그 자녀들을 그곳에 앉히려고 한다. 그들은 중세에 타락한 주교들처럼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무리들이다.

여느 다른 대형교회처럼 금란교회의 재정도 길을 잃고 헛되이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엄청난 재정을 무용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모든 헌금은 성도들의 고귀한 믿음의 헌물들이다. 헌금은 그 용도가 최소한의 교회유지를 위해서 사용되고, 대부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탄은 어떤 조직체나 건물보다도 교회를 미워하고..."에서 교회 건물도 사탄의 대상인가 궁금하다.

날짜나 건물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성회가 거룩하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건물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이것 또한 율법적인 생각이다. 이전에 술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회가 모이면 그곳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월요일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회가 모이게 되면 월요일이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회가 모이지 아니하면 거룩할 수 없다. 일요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회가 모이지 않는 교회 건물이 어떻게 거룩하겠는가. 이러한 자들이 안식일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큰 건물을 짓는 것 자체를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교인수에 적당하게 최소의 비용으로 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솔로몬 성전도 헤롯의 성전도 유럽의 웅장한 교회들도 건물이 성도를 거룩하게 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타락을 재촉하였을 뿐이다. 서구 사회에 교인 없는 웅장한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 사람들의 구경거리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헌금이 헛되이 사용되는 동안 우리의 이웃과 우리의 동족인 북한의 생명들과 지구상에 수 십억의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금란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3. 교회를 이탈하려는 자

자신의 요구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교단을 탈퇴하겠다는 엄포는 또 무엇인가? 신학교와 감리교를 자신의 주장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김홍도 목사의 생각은 성령의 역사에 도전하는 것이다. 보편적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된 교회이다. 그런데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단을 분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대중보자의 기도를 통해서 교회의 하나됨과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0-21).

그동안 한국교회의 가장 비극적인 일은 교단과 교파의 분열이다. 몇몇 교만한 무리들이 자신의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찢어진 상처와 고통과 모욕으로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다. 이 사람이 거짓 선지자인가 거짓 그리스도인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능욕하려 하고 있다.

대형교회들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성회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가. 그 중에서 더러는 이미 이단의 무리로 전락하였다. 마치 역사적으로 Donatists와 Anabaptists들처럼 자신의 신앙의 고결함을 자랑하며 보편적 교회로부터 이탈하였다가 결국 이단으로 정죄된 무리들과 같은 길을 가려는가.

한국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신학 부재이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 기적과 신비적 지식이다. 자신들은 보통 목사들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듣는다는 식으로 신비주의를 추앙하고 있다. 가련한 신도들은 감언이설에 속아서 맹종하는 신도들이 되어간다. 그리고 자신들이 제일 믿음 좋은 것처럼 착각을 한다.

나는 개척교회 목사로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관대하고 고귀한 인품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김 목사의 글을 읽고 실망이라기보다 절망적이다. 교만함, 특권의식, 무례함, 탐욕과 권위의식이 글귀마다 배어 있는 것을 보고 종이 임금이 된 것을 참아 볼 수 없어 이렇게 몇 마디 적어 보았다.

교회 하나됨을 위한 연구모임 청지기
김진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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