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로 기억된다. 신문사 식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주로 선배 기자가 공격을 하고, 나는 방어를 하는 모양이었다. 중심 화제는 ‘병역거부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넌 왜 병역거부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병역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선배 기자의 질문에 별 다른 생각 없이 ‘동의’한다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행동’하지 않는 동의가 진정한 동의냐는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즐거운 점심 시간을 갖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약간은 무겁게 만든 그 날의 대화는 “행동 없는 동의는 똥폼이 되기 쉽다”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내가 양지건이라는 호적상의 이름을 버리고 양정지건을 쓴 것은 작년 초부터이다. 한 선교 단체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조그만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양정지건이라는 새 이름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호주제 폐지에 동의하기도 하거니와, 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예전부터 공감하고 있던터라, 이런 결정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내려졌다. 그러나 부모님의 성을 같이 쓰기로 한 결정의 이면에는 이런 당위적인 이유 외에도 왠지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풍기고 싶은 속물 근성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폼 나잖아(?)"

뉴스앤조이에서 일하는 것이 확정된 후, 나는 하루라도 빨리 명함을 갖고 싶었다. 이전의 양정지건이 다른 사람은 별로 불러 주지 않는 나만의 자부심이었다면, 공식적인 명함에 내 이름을 양정지건이라고 써넣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명함이 나왔고, 나는 취재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나의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열이면 열 한번씩은 물어본다. “부모님 성을 같이 쓰시나 보죠? 의식 있는 분이시네요” 우쭐해지는 어깨. “아, 참 폼 난다.”

명함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부흥사로 이름 높은 목사님인데, 이분의 명함을 받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크기가 일반 명함보다 훨씬 크다. 명함 꽂이에도 안 들어 갈만한 크기이다. 이 분은 명함판 사진을 찍을 때는 일반규격보다 더 크게 특별주문을 해서 뽑나보다….

그 큰 명함을 꽉 채운 화려한 직함도 볼만하다. 무슨 하는 일이 그렇게 많은지…. 전부 회장 아니면 총재다. 한글은 한 자도 보이지 않는다. 앞면은 모두 한자이고, 뒷면은 전부 영어다. 참 폼 난다.

난 94년에 입대했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부대였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가. 구타! 물론 있었다.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 마음이 약해서 주먹으로 사람을 치지는 못했지만, 독한 말로 후임들의 마음을 후벼 판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격! 수 없이 했다. 처음 북한 군인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한 표적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때에는 마음이 켕기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러다가 오태양 씨를 만났고, 병역거부로 오래 동안 고통 당한 여호와의 증인들을 만났다. 난 금방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되었고, 평화주의에 적극 찬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예비군 훈련에서 방아쇠를 당길 허약한 사람이다.

“동의한다면 행동하라”

벌써 몇 달째 나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두이다. 양정지건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병역거부를 옹호한다면 예비군 훈련에서라도 총을 버려야 할 노릇이다. 삶은 명함에 박힌 화려한 문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똥폼을 거두고 몸으로 살아낼 때,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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