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오후 2시,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명칭 변경을 요구하는
기도회 및 가두행진에 참여한 교인들이 100주년 기념관을 출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균

월드컵 응원단 ‘붉은악마’의 이름을 바꾸자는 교계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명칭을 고수하자는 입장도 만만치 않아, 자칫하면 월드컵 개최를 불과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국민 화합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4월1일 오후 2시,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는 ‘붉은악마’ 응원단 명칭 변경을 요구하는 기도회 및 가두 행진이 열렸다. 이 모임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김기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총무 김동완)는 물론, 월드컵 관련 선교단체인 △2002월드컵선교단(대표총재 신현균) △GOAL2002전국위원회(대표회장 최성규) △2002월드컵기독시민운동협의회(기민협·대표회장 김준곤)가 주최로 나섰고, <국민일보>·기독교텔레비전·기독교방송(CBS)·극동방송도 협찬으로 대회를 도왔다. 교계는 이 날 성명서를 통해 “전국민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명칭으로 응원단의 명칭을 변경하라”고 촉구하고, “부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악마보다는 ‘붉은 호랑이’가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15일 명성교회에서 개명문제에 한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신현균 목사가 붉은악마
명칭변경의 당의성을 역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4월15일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조찬기도회와 발표회 역시 ‘붉은악마’ 개명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2부 발표회에 나선 월드컵 선교단체 대표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응원단 명칭 개정을 위해 한국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붉은악마 응원단 명칭변경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길자연 목사)는 홈페이지(www.wcm21.net)를 통해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4월18일 현재 5천명 가량의 사람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명칭 변경을 위한 대회는 4월22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열린다. 응원단 명칭 변경과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한 이 날 모임에는 교계와 정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준 의원과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이 격려사를 맡을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정 의원과 김 의원은 각각 소망교회(곽선희 목사)와 사랑의교회(옥한흠 목사) 신자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여서 이들이 이 날 모임에서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대회 관계자는 이 날 모임이 끝난 후, 청와대 앞에서 명칭 변경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명칭 변경을 위한 각종 대회와는 별도로 방송사와 광고주를 상대로 ‘붉은악마’ 명칭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김용근 목사(명칭변경추진위원회 사무총장)는 “현재 방송 3사를 대상으로 ‘붉은악마’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을 부탁하는 공문을 보낸 상태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1200만 개신교인이 나서서 시청 거부 운동을 벌이겠다”라고 말했다. 부흥사협회 역시 각 집회마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여 한국 교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문제의 당사자인 ‘붉은악마’ 회원들은 대부분 명칭 개정에 심한 반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붉은악마’ 홈페이지(www.reddevil.or.kr)에는 명칭 개정을 요구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에 대한 비난의 글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아이디 ruledis를 쓰는 한 회원은 '‘붉은악마’는 국민의 힘을 빌어 국가를 위해 응원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붉은악마' 이름이 정 싫다면 나가십시오. 어느 누구도 ‘붉은악마’ 이름이 싫은 분에게 ‘붉은악마’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백의천사에 가입하시든지, 아리랑에 가입하시든지, KTF에 가입하시든지, 777에 가입하시든지…'라고 꼬집었다.

▲응원하고 있는 붉은 악마 회원들(붉은악마 홈페이지에서)

붉은악마 사무국장 황태혁씨(26)는 “‘붉은악마’를 종교적으로 보면 ‘악마’일지 모르지만 축구 용어로는 대표팀에게 힘을 주고, 상대팀에게 위압감을 주는 단어이다. 축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종교 언어로 이를 해석해서 매도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붉은악마 사무실에는 명칭 개정을 요구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30통 가까이 오는데, 이 중에는 다짜고짜 호통을 치거나 욕을 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황 국장은 “‘붉은악마’ 8만 회원 중 다수가 원한다면 이름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응원단 개명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개신교인이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전화해서 개명을 요구하는 일은 한 차례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붉은악마’의 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신교인이라는 황 씨의 주장은 명칭변경추진위원회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동안 개명을 요구하는 개신교 단체들은 ‘붉은악마’라는 명칭을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싫어한다고 말해왔으나, 실제 개명운동에 적극 나서는 것은 개신교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계는 지난 2월18일 서울 역삼동성당에서 열린 공청회를 근거로 개명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 9명 가운데 개명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6명은 유보 내지는 반대 입장이었다. 또한 이들은 각 종교의 대표 자격으로 공청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나왔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제로 개신교를 제외한 다른 주요 종교계에는 명칭 개정의 움직임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개신교의 이러한 움직임에 조심스럽게 반대하는 모습이다.
▲2월 18일 서울역삼동성당에서 열린 공청회 모습. 9명의 참석자 가운데 6명이 유보
내지 반대한다고 말했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일반 언론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특히 지난 4월3일, 일부 기독교 단체들의 벨기에 응원단‘레드 데빌(Red Devils·붉은 악마)’ 명칭 개정 요구에 대한 벨기에축구협회의 답변 내용은 여러 신문에 가십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벨기에축구협회는 “우리는 ‘레드 데빌’애칭을 70년간 써왔고 그동안 아무도 이름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의 최화경 논설위원도 지난 4월4일자 논설에서 “‘붉은악마’를 뜨거운 응원의 상징이라고 좋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제 월드컵이 코앞이다. 응원단 이름을 놓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한마음으로 응원하느냐를 놓고 머리를 맞댈 때다”라며 명칭 개정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교계에서도 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강영안, 김인수)의 강영안 교수는 “‘붉은악마’ 응원단이 ‘악마’를 종교적인 의미의 ‘사탄’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의 활동이 반종교적·반기독교적인 색채를 띤다면 모를까, 교계가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개명운동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가 하나의 유사종교(類似宗敎)처럼 되는 것을 주목하고 여가 선용, 건강 증진과 같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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