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 입구에는 접시꽃이 활짝 폈다. 방울토마토·오이·옥수수 등 각종 채소가 곳곳에서 자랐다. 주민 70여 명이 거주하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 그러나 마을 한편은 빛바랜 현수막·벽화들로 가득한 살풍경을 이뤘다. 아스팔트 도로에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출입 금지'라는 커다란 팻말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낮은 담벼락에는 '한반도 평화', '삶의 터전 건들지 마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탁 트인 도로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수십 개의 현수막에는 '공사 강행 중단하고 불법 사드 철거하라', '성능 개량 중단하고 사드 빼'라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진밭교로 통하는 2차선 도로에는 경찰 버스 수십 대가 배치돼 차량들이 중앙선을 침범해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대화 경찰' 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거리를 오가며 주민들을 주시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7월 1일 오전 6시, 소성리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국방부의 사드 기지 공사 차량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18번째 오전 평화 행동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소성리 담벼락 곳곳엔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소성리 담벼락 곳곳엔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소성리 주민·연대자들은 5월 14일부터 매주 화·목요일 오전 6시 마을 회관 앞에서 사드 기지 공사 장비·자재 차량 진입을 저지하는 평화 행동을 연다. 집회가 해산한 후 참석자들이 진입하는 차량들을 향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소성리 주민·연대자들은 5월 14일부터 매주 화·목요일 오전 6시 마을회관 앞에서 사드 기지 공사 장비·자재 차량 진입을 저지하는 평화 행동을 연다. 집회 해산 후 참석자들이 진입하는 차량들을 향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국방부, 5월부터 주 2회
공사 자재·장비 차량 진입 정례화
주민들 "경찰 동원한 진압은 주민 힘 빼기"

소성리는 사드가 배치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투쟁 중이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2017년 4월 27일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 발사대 2기를 배치했다. 이후 '촛불 시위'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 왔지만, 같은 해 9월 7일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들여왔다.

현재 32만 8779㎡ 규모의 소성리 사드 기지 내에는 미사일 발사대 6기와 레이더·발전기 등을 포함한 사드 1개 포대가 작동 중이다. 기지 내에는 이를 관리·운용하는 한미 장병 400여 명이 주둔해 있다.

사드 1개 포대가 배치된 소성리 사드 기지 앞. 뉴스앤조이 나수진
사드 1개 포대가 배치된 소성리 사드 기지 앞. 뉴스앤조이 나수진

국방부는 2017년 사드 1개 포대 배치 완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지 공사 자재·장비 반입을 시도해 왔다. 2020년 5월 29일에는 사드 노후 장비를 교체하고 성능을 개량할 목적으로 추정되는 발전기와 전자 장비, 미사일 반입을 강행했다. 그동안 '임시 배치' 단계였지만 사실상 정식 배치를 위한 수순을 밟아 온 것이다. 주민들은 "국방부의 기지 공사는 불법"이라며 반발했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주민과 국방부 간의 갈등은, 군 당국이 올해 5월 14일부터 주 2회 기지 공사 자재·장비 차량 진입을 정례화하면서 다시 잦아졌다. 주민들은 화·목요일마다 기지 공사 차량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아침 6시 마을회관 앞 도로에서 평화 행동을 벌이고 있다. 그때마다 군 당국은 공권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저지했다.

사드 반대 운동에 나서는 소성리 주민 대다수는 고령이다. 이날 평화 행동에서도 80대 이상의 할머니들이 맨 앞줄을 지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사드 반대 운동에 나서는 소성리 주민 대다수는 고령이다. 이날 평화 행동에서도 80대 이상의 할머니들이 맨 앞줄을 지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자가 소성리 현장을 직접 찾은 7월 1일 새벽에도 전운이 감돌았다. 경찰 수백 명은 평화 행동이 열리는 마을회관 주변을 포위하듯 에워쌌다. 이날 평화 행동에는 소성리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연대자 60여 명이 모였다. 집회가 열리고 1시간 정도 지나자, 경찰은 강제해산 절차에 들어갔다. 폭력적인 끌어내기가 벌어졌고 곳곳에서 "꼬집지 마라", "아이고 사람 죽네", "다친다"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사드 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를 운영하는 강형구 장로는 "이렇게 대대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사드를 영구 배치하는 기반을 조성해 온 한미 당국이 올해부터는 사드를 공식화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성리 이석주 이장(67)은 "평소와 다르게 더 들어가는 것도 없는데 경찰을 동원해 일주일에 두 번씩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 힘을 빼려고 그러는 것 같다. 정부가 경찰력으로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불편하게 만들어 빨리 손들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화 행동 참석자가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이끌려 나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평화 행동 참석자가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이끌려 나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수년째 주민들과 연대해 오고 있는 원불교 김선명 교무는 "불법 사드 자체를 반대하는데 공사 차량이 지나가는 것에 어느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주민들이 잠도 못 자고 고통 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정부는 주민들 앞에 나와 사드가 왜 필요한지 단 한마디도 설득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찰 병력을 동원해 주민들의 평화 행동을 무마시키고, 폭력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식 배치 판가름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 시작도 못 해
"현 정권, 사드 배치 묵인하고 책임 전가"

소성리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일까. 이들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사드 무용론'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했다고 밝혔지만, 사드 반대 측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는데 실효성이 낮고, 성주에 배치할 경우 방어 범위가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무용하다는 것이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진짜 이유는 미국의 중국 견제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김선명 교무는 "사드를 배치한다고 했을 때 북한보다 러시아와 중국이 더 반발했다. 사드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사드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게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 긴장이 촉발됐다. 사드가 한반도 평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원불교성지수호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선명 교무는 수년째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해 오고 있다. 소성리 내에는 원불교 성지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원불교성지수호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선명 교무는 수년째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해 오고 있다. 소성리 내에는 원불교 성지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주민들이 '사드 배치 저지 운동'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드가 '임시 배치'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사드를 임시 배치하고 (환경) 영향 평가는 평가대로 진행하면서 영향 평가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한번 최종적인 배치 여부에 대한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 평가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기관장, 지역 주민 대표,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회를 구성해 평가 항목을 작성하고 협의하는 과정이다. 6개월이 걸리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와 달리 평균 1년 넘게 걸린다. 정부는 주민들과의 협의 없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을 거친 다음 사드를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강형구 장로는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5년째 사드 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를 운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강형구 장로는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5년째 사드 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를 운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석주 이장은 정부가 사드 배치를 묵인하고, 또다시 다음 정권으로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원칙대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면 (사드 배치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사드는 내륙이 아닌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나 바닷가에 배치한다. 미 육군 사드 운용 교범에 따르면 1.5km 반경 내에는 사람의 출입도 통제된다. 하지만 현재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는 내륙지역인데다가 1.5km 반경 내에 사람이 살고 있는 상황이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계속 미루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사드 배치 철회'와 '평화' 두 가지 뿐이다. 사드 배치 절차가 불법적인 이상, 어떠한 공사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임순분 부녀회장(68)은 "투쟁에 나서는 할머니들은 참혹한 6·25전쟁을 겪었다. 할머니들은 혹여라도 사드 때문에 과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묻혀 있는 이 땅,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이곳에서 내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싶다. 진짜 평화는 사드 배치 철회로 이어져야 한다. 내 손자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주 이장은 소성리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잦은 투쟁에 거리로 나오다 보니 농사는 잘 안될 때가 많다. 이 이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오늘도 참외 밭에서 일하다 평화 행동에 나왔다. 이제 다시 밭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석주 이장은 소성리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며 살아 간다. 잦은 투쟁에 거리로 나오다 보니 농사는 잘 안될 때가 많다. 이 이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오늘도 참외 밭에서 일하다 평화 행동에 나왔다. 이제 다시 밭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석주 이장은 "투쟁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각오를 갖고 있다. 이 땅의 평화와 자식들을 위해, 손자·손녀를 위해서라도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이도 있다. 일상에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전국에서 연대하는 분들이 마을을 찾아 주고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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