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요. 얼른 드셔 보세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완성된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를 앞에 두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강성희 씨가 채근했다. 미안하단 의미의 손짓을 보내고 얼른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폭신한 치아바타 사이로, 간이 딱 맞게 밴 돼지고기와 직접 절여 만든 아삭한 무·당근 피클, 새콤달콤한 느억맘 소스와 고소한 땅콩 소스가 어우러져 근사한 맛을 냈다. (아, 호불호가 강한 허브 '고수'가 들어가니 싫어하는 사람은 미리 빼 달라고 얘기해야 한다!)

엄마의앞치마에서는 '반미'를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저렴하다고 해서 맛도 그저 그럴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엄마의앞치마에서는 '반미'를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저렴하다고 해서 맛도 그저 그럴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렇게 맛있는 반미 샌드위치는 단돈 5000원. 베트남 출신 강성희 씨가 일하는 '엄마의앞치마'에서는 반미 외에도 분짜, 반쎄오, 껌승, 월남쌈 등 베트남 음식을 꽤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엄마의앞치마는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인근 번동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낡은 건물 1층에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고, 아직 배달은 안 하고 있다. 이렇게 장사하면 남는 게 있을까. 사회적협동조합 더누림 대표 정종원 목사가 웃으며 말했다.

"일하시는 분들이 다 엄마라서 아이들을 학교 보낸 뒤에 출근하고, 퇴근해서는 저녁을 챙겨 줘야 해요. 늦게까지 할 수가 없어요. 영업시간이 긴 편은 아니지만, 한 번 드셔 본 고객들은 또 오세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중심으로 입소문도 나고 있고요. 지난달에는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월세·인건비·재료비까지 가게 매출로만 충당했네요. 자주 주문해 주시는 분은 제가 아예 전화번호를 저장해 놨어요."

마침 정 목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음식 주문 전화였다. 정 목사가 들뜬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고기 하나, 새우 하나, 반미 하나. 12시 10분까지요."

이국땅에서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들
방치된 아이 돌보며 함께해
기댈 수 있는 정서적 기반, '울타리' 꿈꿔

엄마의앞치마는 사회적협동조합 더누림이 운영한다. 정종원 목사가 대표로 있는 더누림은 서울 성북구 월곡동 한 빌딩 지하 공간에서 수경 재배로 새싹삼을 생산한다. 여기서 무농약으로 생산한 새싹삼·대추·생강 등을 섞어, 달달한 청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각종 견과류로 만든 건강 간식 등도 주력 상품이다. 더누림은 '이주 여성'과 '다문화 청년'을 직원으로 채용해 고용 창출 효과를 누리고, 이들의 사회적·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 인근에 있는 엄마의앞치마. 각종 음료와 간단한 베트남 음식을 주로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 인근에 있는 엄마의앞치마. 각종 음료와 간단한 베트남 음식을 주로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처음에는 소셜커머스를 통해 판매를 시작했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오프라인 매장 엄마의앞치마를 열었다. 마침 강성희 씨의 음식 솜씨가 좋아 베트남 가정식을 팔아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고객의 반응을 살펴 가며 메뉴를 하나씩 늘려 왔다.

정종원·김성은 부부와 '베트남 엄마' 강성희 씨의 인연은 2009년 시작했다. 총신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부부는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했다. 김성은 씨는 기관에서 만난 다문화 여성들, 특히 이혼·사별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이국땅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주 여성에게 마음이 갔다. 주말마다 한 가정씩 만나 교류를 시작했고,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십여 년 동안 그들 곁을 지켰다. 김성은 씨는 기자와 만나기로 한 날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가느라 아쉽게도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다.

사회적협동조합 더누림에서 수경 재배하는 새싹삼들. 여기서 수확한 새싹삼과 대추, 생강을 섞어 달달한 청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사진 제공 더누림 
사회적협동조합 더누림에서 수경 재배하는 새싹삼들. 여기서 수확한 새싹삼과 대추, 생강을 섞어 달달한 청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사진 제공 더누림 

처음에는 그저 친구가 되고 싶어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이들을 돕고 싶었다. 부부는 각자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16년 비영리단체 '프래밀리(Framily)'를 세웠다. 영단어 프렌드(friend)와 패밀리(family)를 합쳐 만든 단어다. 이듬해 법인을 만들어 단체의 안정화를 꾀했다. 프래밀리가 큰 우산이 되어 가족들을 엮고, 더누림은 이들의 자립을 돕고, 더누림에서 만든 물건은 엄마의앞치마에서 판매해 또 다른 고용을 창출하는 '삼각 편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주 여성의 '프래밀리'가 돼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자연스럽게 그 자녀들에게도 눈길이 갔다. 한국말에 능숙하지 않은 이주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박봉인데다가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방치돼 있었다. 활동적인 정종원 목사가 일단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만나면 그냥 놀았어요. 처음에는 외부 단체 지원을 받아 치료 프로그램 같은 걸 했는데요. 이게 진행이 잘 안 되더라고요. 참여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뭐가 하고 싶은지 물어봤어요. 놀이동산에 못 가 봤다고 해서 함께 1박 2일로 놀러 갔는데 저도 그렇게 간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정말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진짜 좋아하더라고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가지는 못하지만, 날씨 좋으면 자전거 타고, 옥상에서 텃밭 농사도 짓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려 해요. 그게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토요일마다 운영해 온 '위캔스쿨'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 때문에 열 명씩 두 조로 나눠 격주로 모인다. 처음에는 정 목사 부부가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대학생 자원봉사자 두 명이 함께한다. 어렸을 때부터 정 목사 부부와 교류해 온 다문화 청년이다. 정 목사는 "꼬맹이 때부터 봤는데 지금은 커서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돌볼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 엄마' 강성희 씨(왼쪽)와 '몽골 엄마' XXX 씨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베트남 엄마' 강성희 씨(왼쪽)와 '몽골 엄마' 이수진 씨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엄마의앞치마에서 판매하고 있는 더누림의 상품들. 달달한 청, 견과류 간식 등이 주요 상품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엄마의앞치마에서 판매하고 있는 더누림의 상품들. 달달한 청, 견과류 간식 등이 주요 상품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프래밀리는 후원금 전달, 한국어 교육, 음식 교육 등 이미 정부가 하고 있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정부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한부모 이주 가정이나 미등록 아동을 찾아 지원한다. 정종원 목사는 일회성으로 후원금을 직접 전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대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정서적 지지 기반, 즉 '울타리'가 되고자 한다.

"아이가 커 가면서 엄마와 갈등이 시작되기도 해요. 같은 아시아권이라고 해도 성장한 배경과 문화가 다르잖아요. 아내(김성은 씨)가 엄마들과 관계를 쌓아 가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요. 저는 때로는 쓴소리도 하고 칭찬도 하는 '좋은 어른'이 돼 주려고 해요.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보고 배울 좋은 어른이 곁에 잘 없거든요. 금전적으로 필요한 부분 채워 주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곁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주중엔 '선생님' 일요일엔 '목사'
예배 참석, 개종 강요 안 해
"이주민 사역 관심 있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하길"

주중에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정종원 목사는 일요일이 되면 '목사'가 된다. 위캔스쿨이 열리는 '힐링하우스'에서 아이들 십여 명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린다. 정 목사는 구약성경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9월을 끝으로 잠깐 멈췄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교류하는 엄마, 자녀들이 전부 모여 예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몇 명 안 됐는데 예배에 참석해 본 엄마들이 '친구'를 데리고 왔다. 시작할 때만 해도 40명 정도 했는데, 나중에는 150명까지 늘었다. 출신 국가와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그야말로 '다문화'다.

정종원·김성은 부부는 십여 년 동안 한부모 이주 가정, 미등록 아동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고 있다. 사진 제공 프래밀리
정종원·김성은 부부는 십여 년 동안 한부모 이주 가정, 미등록 아동의 친구이자 가족이 돼 주고 있다. 사진 제공 프래밀리

몇 년 전, 열 가정과 함께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엄마들에게 자녀들의 눈을 보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 달라고 했다. 엄마들은 이때가 여행 중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한다.

"혼자서 매일을 살아 내기도 힘든 엄마들이니까 평소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잘 없었나 봐요. 아이 눈을 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너무 좋았대요. 예배도 좋았다고 하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예배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죠. 코로나19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예배하고, 먹고 나누고 교류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하려면 꼭 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거나,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죠."

정종원·김성은 부부는 "나그네를 돌보고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라"는 말씀에 이끌려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프래밀리가 하는 일을 접하고 찾아와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목사들도 있다. 그럴 때면 정 목사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재정이 풍부한 교회에서 이주민 사역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기도 해요. 코로나로 해외 선교를 못 가잖아요. 많은 교회가 올해 여름 '아웃 리치'로 이주민 선교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교회는 땅과 건물을 알아보고 있다고도 하시고. (이주민 사역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에요. 저희는 그만큼 돈도 없는 걸요. 작은 것부터, 아이들과 관계 맺는 일부터 시작하시면 좋겠어요. 교회는 장소도 있으니까, 일단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게 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엄마의앞치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성희 씨(사진 왼쪽), 이수진 씨, 정종원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엄마의앞치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성희 씨(사진 왼쪽), 이수진 씨, 정종원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독자들에게도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땅에 살아가는 이주 여성과 아이들이 차별·배제를 당하고 있다면서, 그들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한 번은 물어볼 수 있어요. '왜 얼굴색이 다르냐고'요. 그런데 부모가 그러면 안 되거든요. 나라는 다르지만 '괜찮다'고 가르쳐야 해요. 엄마의앞치마를 운영하는데 직원이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저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는데도 굳이 '외국인이 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외국인인 게 무슨 상관인가요. 학교 현장에서도 여전히 다문화 아이들을 향한 차별 발언들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당연히 힘들어 할 수밖에 없어요."

프래밀리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건 '행복한 가정'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주 여성인 엄마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 사이에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아이들은 자꾸 엄마를 무시하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엄마는 아이를 때리고, 맞은 아이는 자꾸 밖으로 돌게 되는 악순환. 안전한 일자리 창출과 돌봄, 미등록 아동 긴급 지원, 정서적 지지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엄마가 일을 해도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을 늘리고요. 조금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이사하면서 작은 만족감을 주고, 정서적으로도 기댈 곳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실제로 지금 그런 가정들이 생겨나고 있고요. 그렇게 하려면 저희가 더 매출을 늘려서 더 많은 엄마들을 고용하는 데까지 이어져야겠죠."

*엄마의앞치마
주소: 서울 강북구 오현로32길 28 1층
전화번호: 0507-1330-6121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