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에는 한 달 가까이 파란 천막이 자리하고 있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 온 개신교인들과 우파 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수립한 학생인권종합계획의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 중이다.

이들은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전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피켓을 들고 릴레이 시위·기자회견 등을 해 왔다.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들어간 몇몇 단어를 문제 삼으며 조 교육감이 아이들에게 동성애·성전환 옹호, 좌파 사상을 교육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국면에서 허위·왜곡 정보를 끈질기게 내세워 온 것과 비슷한 수법이다.

아무리 허위·왜곡 정보라고 해도 계속 방치해 두면 사람들이 '진짜'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조희연 교육감을 5월 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나 '만들어진 논란'에 대한 해명을 들었다. 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의 계속된 압박 속에도 학생인권종합계획에 '성소수자 학생 보호'를 명문화하게 된 이유와 지금의 논란을 보면서 느끼는 심정 등을 물었다.

조희연 교육감이 개신교와 맺은 인연 등 그간 잘 듣지 못했던 신앙 관련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조 교육감은 본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소개했다. 지금은 제도권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한때는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의 일문일답.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개신교가 소수자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개신교가 소수자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반동성애 개신교 진영 및 보수 교육 단체의 끈질긴 공격을 받았고 이는 지금도 지속 중이다.

그분들이 나쁜 의미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우려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오해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분들 주장을 들어 보면 결론적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종합계획은 학생 인권 보호라는 프리즘을 통해 '모든 학생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구현한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 보호와 인권 증진이 목표인데, 성소수자 학생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혐오와 차별의 위험에 노출된 소수자 학생의 안전한 학교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놓고, 동성애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왜곡·폄하·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차별 금지 조항을 놓고 '동성애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단계, 즉 성소수자를 차별·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동성애 조장'으로 오해하는 단계를 넘어서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이는 세계시민 교육과도 맥락이 통한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10위 안에 드는 경제 선진국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역량 또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 의식이 투영된 작품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경계를 넘어설 수 없다. 세계인들에게 보편적 울림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조금 더 개방적인 사회·문화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열린 마음 또한 그 일부로서 필요한 것 같다.

- 과거와 다르게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일간지에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학생인권종합계획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못해 오해가 깊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수없이 많은 인권의 내용에 대해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다양성은 민주주의 제도가 가지는 강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 존엄성은 다양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다. 인권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개신교가 가지는 사랑의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약하고 소수인 사람들을 성별·인종·나이·성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것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을 구현하는 일 아닐까. 그런 면에서 학생인권종합계획이 내포하고 있는 '혐오·차별 없는 사회'가 더 개신교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명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치원 아이들에게까지 동성애를 하라고 가르치거나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중·고등학생 중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이 학생들을 존중하면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보호하자는 취지다. 성적 지향은 다르지만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자는 것이지, 동성애를 하라거나 동성애자가 되라고 '가르친다'는 건 완벽한 오해다.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 있는 파란 천막.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 온 이들은 천막에 상주하며 학생인권종합계획 반대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 있는 파란 천막.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 온 이들은 천막에 상주하며 학생인권종합계획 반대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계속되는 문제 제기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고 최종 계획에 남겨 뒀다. 교육청 앞에서 연일 시위가 이어지는 등 반대가 거세지는 것을 보며 재고할 생각은 없었는가.

서울특별시 학생 인권조례는 2012년 주민 발의를 통해 제정됐다. 조례 제28조에는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이라는 조항이 있으며 여기에 소수자 학생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조례에서는 빈곤 학생, 장애 학생, 한부모 가정 학생, 다문화 가정 학생, 외국인 학생, 운동선수, 성소수자, 일하는 학생 등을 '소수자 학생'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신체적·문화적 특성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불평등한 처우를 받거나 차별당하는 이들을 소수자라고 정의한다. 소수자의 배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인권 제도에서 각 소수자들의 '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소수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인권의 '알파와 오메가'라고도 할 수 있다. 소수자를 그들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일이 중요하다. 반대 의견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특정 소수자 학생을 인권 보장에서 빼라는 것은 인권의 원칙상 불가능하다. 그 존재 자체를 사회적 공간에서부터 배제하고 추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존중하는 일을 그렇지 않은 이들을 향한 위협으로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 교육감도 선출직 공무원이다. 차기 교육감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인데, 어떤 생각으로 끝까지 진행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 지향과 맞다면, 이런 문제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도 이 시대 공직자가 감내해야 할 책무가 아닌가 싶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신분이나 성 정체성 등 그 어떠한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인권은 어떤 이의 유불리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더 견결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아니 소수자이기에 더욱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유불리를 따져 대상 학생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변화·발전하는 단계인 것 같다.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분들도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보면서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 사안을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헌법이 보장한 성소수자 차별 금지"

- 반동성애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학생인권종합계획이 개신교 신앙을 지닌 교사들의 학생 지도 권한을 위축시킬 우려는 없는가.

모든 교사에게는 종교의자유와 사상의자유가 있다. 또 개신교 신앙과 상관없이 교사에게는 정당한 학생 지도 권한이 있고 이는 지켜져야 한다. 초반에는 학생 인권을 많이 강조했는데 최근에는 학생 인권과 교권의 병행 보장 혹은 공존 및 조화를 강조하는 추세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인권종합계획으로 위축되는 학생 지도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교사가 '소수자 학생'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언어나 행동 등으로 표현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차별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장하라는 건 좀 과도한 것 같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자'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서 차별과 혐오를 배제하고 신뢰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신앙적인 원리를 학생에게 이야기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단지 자신이 지닌 편견 혹은 혐오의 신념을 근거로 학생을 지도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권을 이야기할 때, 나의 권리 행사가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 즉 나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건 인권이나 민주주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다. 또한 교사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 누구나 차별·혐오 표현을 예방할 수 있도록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 올바른 표현이 사용되도록 해야 하고, 앞으로 이를 꾸준히 노력해 갈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반동성애 진영과 일부 교계의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학생인권종합계획에 '성소수자'를 명문화했다.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시교육청은 반동성애 진영과 일부 교계의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학생인권종합계획에 '성소수자'를 명문화했다. 인터뷰 도중 잠시 생각에 잠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앤조이 이은혜

- 헌법재판소의 서울시 학생 인권조례 합헌 결정도 계획 수립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렇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서울특별시 학생 인권조례 제5조 제3항'은 위헌이 아니라는 재판관 전원 일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학교 구성원이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적 언사와 행동, 혐오적 표현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헌재는 "아동은 신분, 의견, 신념 등을 이유로 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이나 처벌로부터 보호되고 학생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도록 규정한다"는 이 조항의 정당성을 판단했다. 이렇듯 학생 인권조례는 민주주의 근간인 헌법적 가치에도 부합한다. 일부 반대하시는 분들이 "헌법 위에 있는 '학생 인권조례'"라고 주장하시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 지금도 교육청 앞에는 반대 진영에서 만든 천막과 이들의 화환이 늘어서 있다. 이 사안 때문에 교육청 직원들도 피로감을 호소할 것도 같은데, 내부 반응은 어떤가.

오가면서 보면 (시위)하시는 분들도 어려울 수 있겠구나 싶다. 종교적 신념이라는 게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감내하게 만드는,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지 않나. 우리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분들도 나름의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활동한다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교육청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인접 지역 주민들이 소음 등으로 불편함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권리다. 다만 교육청 인근에 거주하시는 일반 시민이나 학생들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자제를 부탁드리고 싶다.

- 학생인권종합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해서 교육 현장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학생 인권조례를 2012년에 제정했지만 제도적으로 불완전한 부분이 있어 계속 수정해 왔다. 인권옹호조사관을 임명하고 적극적으로 학생 인권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인권 지표와 민주주의를 결합해 학교의 인권 상황을 체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학생인권종합계획이 수립됐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것들이 막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부터 해 왔던 것들을 이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원칙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학생인권종합계획만으로 교육 현장의 혐오와 차별이 모두 사라지고 안전한 학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의 인권만 보장되면 무슨 일을 하든 갈등이 해소되고 폭력도 없어지고 학생과 학생 간의 평화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 학교와 사회는 훨씬 복잡하다. 결국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서로를 존중하고 노력해야 가능한 일 아닐까. 서울시교육청은 인권 친화적인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학생인권종합계획 또한 그 노력 중 하나다.

서울시교육청 앞 도로에는 조희연 교육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다. 교육청 바로 앞은 아파트 단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서울시교육청 앞 도로에는 조희연 교육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다. 교육청 바로 앞은 아파트 단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혐오와 차별 없는 학교'는 학생인권종합계획의 첫 번째 목표다.

최근 코로나19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혐오·차별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에서 동양인을 상대로 한 혐오 범죄 뉴스를 접하면서 학교 현장에서도 예방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수인 우리도 다른 세계에서는 맥락에 따라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당할 수 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에서 보듯, 내가 다수이기 때문에 소수의 문제에 눈감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향할 것이다.

학교는 가장 약한 자부터 배려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교육받을 수 있을까. 가장 안전한 환경에서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회 주체가 학교교육이나 교육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바탕에는 학생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주체의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에 공교육은 가장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또한 각 학생의 안전한 교육 환경을 우선하여 고려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반대하시는 일부 개신교인들에게도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서울시교육청은 여러분이 반대하시는 우려 지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이를 추진하겠다. 과격한 반대보다는 한번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만약 학교 현장에 우려 지점이 생긴다면 서울시교육청은 열린 마음으로 이를 보완해 나가겠다.

"역사의 선구자였던 개신교,
성소수자 이슈에서는 일부 퇴행적 모습"

- 한때 누구보다 열성적인 신앙인으로 살았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교회와 학교만 오갔을 정도로 신앙에 심취해 살았던 적이 있다. 중학교 때는 전주 동부교회라는 곳에서 중등부 생활을 했다. '신앙적으로 살아야 한다, 모범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때였는데, '주일에 입시 공부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가 제일 큰 고민거리일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학교 도서관 가는 길에 철길 따라 걸으면서 계속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중등부 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님이 성도들 심방하는 것처럼 지난 주일에 결석했던 학생들 점검하러 자전거로 집집마다 체크하러 다니기도 했다.(웃음) 지난주에 결석했으니까 이번 주에는 꼭 교회 나오라고 얘기하러 다녔다. 동창들 만나면 가끔 그때 나에게 시달렸던 이야기를 하더라.

고등학생 때는 서울로 올라와서 중앙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기독학생회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 것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말인 것 같다. 이후에는 총신대 앞에서 하숙을 하게 됐는데, 당시 총신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겨자씨모임'이라는 데 참여하게 됐다. 박철수·강경민 목사 등 복음주의 개혁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신교적인 마인드를 품게 됐다.

이후 유신 시대 긴급조치 때도 함석헌·손봉호 등 개신교 개혁 그룹의 리더들을 찾아다니며 그분들 언저리에서 활동했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새한교회·동인교회·경동교회·새문안교회 등을 다녔다. 반유신, 반독재 의식이 강했던 때였는데, 그때는 교회가 이들의 우산 역할을 했다. 이후 반유신 활동으로 제적되고 감옥에도 가고 하면서 더 이상 교회를 이전처럼 열심히 나가지는 않게 됐다.

- 교회 출석은 하는지.

더 이상 제도권 교회에 정규적으로 출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 절기 때만 찾아가며 스스로를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정체화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개신교적 사고의 경향이나 습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형님 두 분이 목사님이신데, 만나면 동성애를 조심하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런데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학생인권종합계획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이지 동성애를 부추긴다거나 동성애를 하라고 권면하는 건 아니다.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데 따른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학생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좀 보듬고 차별 없이 살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다.

개신교도 그렇고 종교라는 게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 아닌가. 그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 개신교 정신에 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개신교와 한 발 떨어진 입장에서 볼 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미래 지향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이 시작되고 식민지 백성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갈 때 민중의 고통을 보듬는 종교로서 개신교가 있었다. 1970년대 무렵에는 교회가 독재 탄압 속에서 스러지는 많은 이의 피난처이자 병풍 같은 역할을 했다. 당시 '저항하는 개신교'는 권위주의나 독재를 넘어서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그것을 엄호하는 강력한 종교 역할을 했다.

이처럼 개신교는 한국 근현대 약 100년의 역사에서 근대성을 상징해 왔는데,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부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은 우리 사회 변화를 막고, 발전을 발목 잡는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신교가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여전히 개신교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고 개신교의 발전을 바라는 입장에서 볼 때, 개신교가 시대 문화적 특성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1970년대 독재 시대에 만난 개신교처럼, 지금의 개신교가 소수자들이 피난처가 없을 때 그들의 최후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 인터뷰를 마치며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경에서 학생인권종합계획의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찾은 구절이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For we are God's workmanship"이다. 이 'workmanship'이라는 단어는 (장인의) 솜씨, 각고의 작품, 즉 '걸작품'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성경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인권종합계획도 우리 학생 한 명 한 명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런 점을 개신교인들이 잘 헤아려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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