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코로나 기세가 무서운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지난 1년간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교회들을 많이 취재했는데요. 집단감염은 꼭 방역 수칙을 보란 듯이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교회에서 많이 발생하더라고요. 방역을 철저히 하고 아쉬워도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면 한두 명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교회 전체로 번지지는 않으니까요. 집단감염이 터질 때마다 일렁이는 사회적 비판을 보면서 저도 '저런 곳은 욕먹어도 싸다', '저런 교회는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기사를 쓸 때면 한편으로는 '나는 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자신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미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요즘 사회 화두 중 하나가 '내로남불'이잖아요. 비단 이런 얘기가 <뉴스앤조이> 기자라서 특별히 더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도 떠오르고요…. 교회 내 여러 부조리들을 다루니까, 이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숙명인가 싶기도 해요. 존 웨슬리가 말한 '성화'가 이렇게나 어렵다는 걸 느끼며 오늘도 아슬아슬 긴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빨리 코로나19가 끝나서 이런 걱정을 그만하면 좋겠네요.

그리고 오늘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 7주기네요. 속 시원히 드러나지 않은 참사 원인, 그리고 더딘 진상 규명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기도 하고요. 정부와 국회가 진상 규명에 책임 있게 나서서, 가족들의 억울함이 풀어지고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by 승현

처치독 리포트

매 수업 간증하는 담임쌤

때는 1990년대 중반.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학기를 시작한 ㅅ중학교 1학년 4반 학생들에게 김 아무개 담임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내가 정말 이 학교 오기 싫었어. '하나님, 내가 왜 저 볼품없는 학교에 가야 합니까? 집도 먼데. 제발 저 좀 안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거든. 그런데 결국 오게 됐네. 와서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 학교에 보내신 이유가 있더라고. 너희들 전도하라고."

그 순간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심지어 미션스쿨도 아니었어요. 이제 막 개교한 공립 중학교였는데요. 재적 50여 명 중에 교회 다니는 학생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만난 첫날 스스럼없이 자신의 종교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담임선생님은 가정 과목을 담당했는데요. 수업 시간마다 본인의 간증이 이어졌습니다. 

수업 시간 50분 중 마지막 10분은 항상 교회 이야기를 하셨어요. "예수님 믿으니 인생이 너무 즐겁다", "예수님 믿었더니 선생이 돼 너희를 전도할 수 있게 되었다" 등등 간증 거리도 무궁무진했지요. 그러면서 항상 교회를 가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셨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어요. 학생들은 늘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밖에요.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일방적 표현이 문제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선생님 행동이 어떤가요. 

공립 중학교 교사면 교육공무원입니다. 교육기본법 제6조 '교육의 중립성' 2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어요. 선생님은 자신이 믿는 종교를 전파하는 데,

- 1) 수업 시간을 쓰고
- 2) 선생님의 권위를 활용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는 명확한 위계 구도가 존재하니까요.

만약 이런 행위를 두고 다른 종교 학생이 불편함을 느껴 문제 제기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 그러면 선생님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건가요,
- 아니면 종교적 신념을 '표현'해서 문제가 된 건가요?

물론 교육기본법은 '기본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에 위배되는 행동을 해도 어떤 처벌을 받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비기독교인 학생들이 더 이상 그런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선생님에게 요청할 수 있는 근거는 됩니다.

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무조건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약간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과 
- "기독교 신앙을 표현해서 처벌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어떤 한 종교가 절대적이지 않은 보시기에 이 선생님 행동이 어떤가요. 


소셜미디어에서 들은 그 이야기,
신앙 때문에 처벌받은 게 아니에요

저희가 계속 팩트체크 하고 있는 영국 사례들을 살펴볼까요. 

리처드 페이지는 아동의 입양 여부를 결정하는 치안판사였어요. 그는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입양 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혀서 문제가 됐습니다. 영국은 동성 커플의 입양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판사가 법 조항이 아니라 자의에 따라 판결하겠다니, 자기 마음대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페이지는 사법 당국의 주의에도 이 같은 사실을 반복해서 언론에 밝혀 왔습니다.

징계를 받은 페이지는 유럽인권조약 10조가 보장하는 표현의자유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해요. 하지만 영국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요.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겠다고 '표현한' 행위는 표현의자유가 침해받는 게 아니라고 했지요.

중요한 건 '공적 영역'이에요. 리처드 페이지는 시민을 상대하는 치안판사이니까요. 본인의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차별 의지를 '표현'한 게 문제가 된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인데 종교적 신념에 의한 표현의자유를 인정받은 경우도 있어요.

펠릭스 은골레는 영국 쉐필드대학교 사회복지학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동성애는 죄"라는 글을 올렸지요. 이를 알게 된 학교는 그가 사회복지사가 될 자격이 없다며 퇴학시킵니다. 은골레는 종교의자유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개인 소셜미디어에 표현한 것뿐인데 퇴학은 과하다며 소송을 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첫 재판에서 법원은 학교 승소 판결을 내려요. 사회복지사는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하는데, 이러한 신념은 분명 그의 일에 영향을 줄 거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은골레의 손을 들어 주었어요. 종교적 신념을 개인 공간에 표현한 행동만으로 앞으로 그가 어떤 사회복지사가 될 것인지 예단하고, 퇴학까지 이르게 하는 건 과한 처사라고 말이죠.

리처드 페이지와 펠릭스 은골레 두 사례의 차이를 아시겠죠?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공적 영역'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입니다.

유럽인권조약도 마찬가지예요. 종교의자유나 표현의자유가 무조건 아무 때나 보장받는 건 아니죠. 둘 다 민주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들입니다.

- 유럽인권조약 10조 2항에는 "사법부의 권위와 공정성의 유지를 위하여 민주 사회에서 필요한 형식, 조건, 제약 또는 형벌에 따르게 할 수 있다"고 나와 있거든요.
- 페이지의 경우 '공정성의 유지를 위하여' 표현의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셈이 되겠죠.


내게 신앙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차별은 사실 조금 복잡한 문제입니다. 사람의 감정이 연결돼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결사반대하는 반동성애 활동가들에게 이 같은 사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여요.

모든 사안을 퉁쳐서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받는 시대가 온다"고 여론을 호도하거든요. 

복잡해 보이는 문제인데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답을 제시하면 선동하기 쉬워집니다. 그들의 맹활약으로 한국교회는 이미 우리 사회 차별의 선두 주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혹시나 계속해서 '종교의자유'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요. 
지금 위의 사례를 전부 이슬람으로 바꿔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우리 사회에는 기독교인만 살지 않잖아요. 어쩔 수 없이 불교·가톨릭·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 혹은 무종교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당연히 타인의 권리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교를 믿는 선생님이 절에 가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수업 시간에 반야심경을 외운다면,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 상황을 보고만 있을까요.

by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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