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 소속 ㅎ교회 김 아무개 목사(44)가 다수의 여성 청년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ㅎ교회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었으나, 지난해 6월 같은 노회 ㅅ교회와 합병하면서 서울 구로구로 이전했다.

ㅎ교회는 김 목사의 아버지가 1987년 개척한 곳으로 교인 100여 명이 출석한다. 아들 김 목사는 ㅎ교회 청년부 리더를 시작으로 간사·전도사·강도사·부목사를 거치며 목회 경력을 쌓았다. 아버지와 다르게 젊은 감각으로 설교하고, 청년들과 잘 어울리는 김 목사를 많은 이가 따랐다. ㅎ교회 청년부는 장년부 교인 수와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2015년 ㅎ교회 2대 담임목사로 임명됐다.

아들 김 목사의 성폭력 의혹은 지난해 11월 초 불거졌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총 7명. 그중에는 여전히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 상황을 견디는 이도 있고, 반복되는 성폭력을 못 이겨 교회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뉴스앤조이>는 2월 28일 피해자 두 명을 직접 만나 피해 사실을 들었다.

김 목사는 아버지가 개척한 ㅎ교회에서 목회 경력을 쌓았다. ㅎ교회에 김 목사 외에 다른 부교역자는 없없다. 네이버 지도 로드뷰 갈무리
김 목사는 아버지가 개척한 ㅎ교회에서 목회 경력을 쌓았다. ㅎ교회에 김 목사 외에 다른 부교역자는 없없다. 네이버 지도 로드뷰 갈무리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겠구나"
피해자가 직접 조사 나선 끝에
성추행·성폭행 등 피해자 7명 발견

A는 수년 전부터 김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 제일 먼저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그는 기자에게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성추행이) 끝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받다가 몇 번 발작할 정도로 힘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이유 없이 교회를 떠난 자매들이 생각났고, 피해자가 나 혼자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청년들과 접촉했다. 이 중에는 몇 년 전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었고, A가 수소문할 당시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A는 "성폭력 사실을 털어놓은 피해자만 총 7명이나 됐다. 청년들은 김 목사에게 강간, 유사 강간, 강제 추행 등을 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B는 김 목사의 반복적인 성폭력을 피하기 위해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김 목사를 보며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목사는 평소 청년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상황을 자주 만들었다. 특히 소수 정예로 운영하는 '제자반'을 빌미로 매일같이 청년들을 교회로 불렀다고 했다. 매일 저녁 교회와 떨어져 있는 집무실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도 했다. 그게 김 목사만의 '제자 훈련' 방식이었다고 했다.

B는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 목사 집무실에는 전문 방음 설비가 돼 있는 방이 있다.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고, 소리도 질러 봤지만 늘 힘으로 제압당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집요하게 요청했다. '네가 내게 힘을 줘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고 말했다.

개인 상담 통해 파악한 약점 이용
신앙 훈련 빌미로 내부 일 유출 금지
공개 칭찬·정죄로 청년들 쥐락펴락

피해자가 7명이나 됐지만,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김 목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해 청년들을 길들이며 사건을 은폐해 왔다. 피해자들은 김 목사가 일대일 상담을 통해 파악한 자신들의 약점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순종적인 사람에게는 목사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고, 관계 중심적인 이에게는 타인과의 관계 단절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그루밍'했다는 것이다.

제자 훈련을 받은 B는 "김 목사가 제자반에서 발생하는 일, 나눈 이야기 등은 모두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된다고 통제했고, 제자반 시작하기 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약서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들과의 활동을 제자반 외부인에게 알린 이에게는 벌금을 내게 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런 게 큰일이 된다. 주의하라"고 이야기했고 청년들은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 B는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게 다 신앙적인 훈련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길들이는 데는 '폭언'도 한몫했다. 김 목사는 평소 자신의 맘에 안 들면 청년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했다. 관계가 친밀할수록 수위는 더 강했다. 그는 제자반 청년들과 대화에서 "꺼져", "입 닥쳐", "노답 싸이코충", "미친것들" 같은 표현을 스스럼없이 썼다.

피해자들은 김 목사에게 영적 권위가 있는 줄 알고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26일 <뉴스앤조이>와 만난 ㅎ교회 청년들은 "평소 김 목사는 공개적인 칭찬과 정죄, 표적 설교를 통해 사람을 조종했다. 특히 교회나 목사에 대한 불만·의심 등을 김 목사가 없는 자리에서 언급했다가 걸리면 온갖 폭언을 듣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김 목사는 교회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떠난 이를 향해 신천지라고 하거나 이성 때문에 떠난 거라고 폄훼했다. 평소에 떠난 이가 우리를 욕하고 다녔다고 하면서 신뢰를 무너뜨렸다. 교회를 나가고 싶다가도 나갈 경우 모든 관계가 단절될까 두려워 못 나간 것도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 목사는 피해자 측에 전화를 걸어 "자녀들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 목사는 피해자 측에 전화를 걸어 "자녀들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한편, 김 목사가 교회를 떠난 피해자들을 회유한 정황도 있었다. 김 목사는 B에게 "지금 우리 다 마귀에게 지는 것", "제자반을 깨뜨리지 말고 지키자", "네가 맡은 사명과 양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B는 "교회 인근에 살던 내가 그를 피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지 않자, 내가 언제 집에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청년을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피해자 가족을 설득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A의 남편에게 연락해 "한 번만 봐 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나는 목사로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 목사에게 말씀드리고 징계를 받겠다. 자녀들을 봐서 한 번만 봐 달라. (고소까지 가지 않게) 한 번만 도와 달라"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다고 했다.

공론화 후, 아버지 목사 역시 A의 남편에게 연락해 교회를 떠나지 말고 자기를 도와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A는 "교회에서 더 오래 신앙생활 하면서 간사까지 하던 남편을 사건 후 갑자기 '전도사'로 임명했다. 남편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고, 믿고 따랐던 김 목사 부자가 힘들어하는 걸 보며 마음이 복잡한 것 같았다. 피해자인 내가 오히려 남편을 힘들게 한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괴로웠고, 괜히 시작했나 하는 내적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이 사실을 ㅎ교회가 속한 예장백석 ㄱ노회에도 알렸다. ㄱ노회는 지난해 11월 18일, 김 목사를 강간, 유사 강간, 폭행 등의 죄목으로 기소하고 헌법 총칙 1장 7조 2항에 따라 제명했다. 김 목사는 노회가 그를 기소한 무렵인 11월 중순, 교회를 떠났다.

김 목사는 현재 연락 두절 상태다. 아버지 김 목사는 3월 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미 지난 11월에 아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끝난 일이다. 아버지로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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