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리기도 지쳤다! 해도 너무 한다!"

이런 탄식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습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공통된 인식을 단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교회 외부의 이런 비판적 시각에 매우 무감각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소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이제 재벌들의 세습을 흉내 내며 2세대 경영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느낌이다.

경제인이나 정치인들의 부의 세습과 권력의 세습도 그 도덕적 결함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비판을 따갑게 받고 있는데, 하물며 순결해야 할 교회마저 지극히 세속적인 세습을 무리하게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세상을 밝히고, 지역 사회를 섬겨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의 화살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교회사 책들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지구본을 이리저리 몇 바퀴 돌리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상 유례가 없는 교회 세습이 오늘날 오직 한국 땅에서만 무더기로 당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교회들이 정도를 벗어나 얼마나 심하게 변절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눈치라도 좀 보는 듯하더니, 요즘은 아예 노골적이다. 그런데 외부의 비판에 대해 이들이 항변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당신들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것이 없으니 참견하지 말라고 한다. 또는 자신들의 교회 문제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게다가 세습 기법도 갈수록 발전하여, '부자 세습'은 기본이고 서로 교회를 맞바꾸는 '교차 세습'이 있는가 하면, 아예 미리 교회나 법인체를 하나 따로 떼어 주는 '증여 세습'도 추가로 개발되었다. 물론 꼭 아들에게만 세습하는 것은 아니다. 딸이나 사위 그리고 기타 혈족에게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세습을 하고 있다.

교회의 기업화와 경영권 세습

어쨌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오랫동안 '개혁 교회'이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애용해 오던 한국교회(주)가 드디어 허울을 벗고 자신의 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십일조 장사를 아주 잘해서 영업 실적도 눈이 부실 정도이고, 건물을 크게 지어 사업이 잘 확장되어서 직원들도 많이 늘어났고, 그 덕분에 회사 재산이나 자금 사정 역시 매우 탄탄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자식에게 적당히 모양을 갖추어 합법적으로 경영권만 슬쩍 넘겨주면 된다고 속으로 웃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를 기업에 비교하니 반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필자만의 시각이 아니다. 아래에 인용된 글처럼 이미 다른 많은 분들도 한국교회의 기업화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형 교회는 이미 기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회에 경영적 개념과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모아진 헌금으로 투자를 하는 경우조차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로 인해 성취된 재물과 권력의 기득권을 대주주의 혈통으로 보존하려는 욕망이 그 안에 자라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즉 교회가 성장하고 이권이 너무 커지다 보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유혹을 이기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다는 실제적인 지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통 사람의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자격 목회자들은 세습의 유혹을 이기기가 아주 어렵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국 많은 신도들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던 상당수 유명 목회자들의 뚜껑을 열어 보니, 유감스럽게도 그들 역시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 사람의 수준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니 여기서 목회자의 자질 문제가 또 다시 거론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말이나 잘하지 말지. 언제나 입만 열면 주를 위해 헌신하자고 소리 높이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자고 호소하고, 그리고 해외 선교를 하자고 열을 내시던 분들 중의 상당수가 이들 세습 목회자들이었다.

그런데 이권이 걸려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니 얼굴을 바꾸고 자기 욕심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과거의 위선된 행동들은 그저 교회의 크기를 키우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하나의 눈속임에 불과했었음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교회) 세습은 세습이 아니다. 세습은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므로 위로해 줘야 한다"라고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대단하신 목사님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리저리 둘러대는 데는 거의 예술적인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만일 그들에게 이 '충성된 세습의 길'을 '자비량 목회'로 가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갈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아마 거의 다 도망을 칠 것은 아닌지. 그들은 늘 말로써 교인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돈과 이권에 눈이 멀어 강행하는 교회 세습을 말 몇 마디로 치장하며 미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런 행태를 "세습이 남들이 다 가지 않으려는 곳에 가는 것이라면, 그 아들이 계승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교회 목사의 아들이 그 교회에 다시 부임한다는 것은 손봉호 장로님의 지적처럼 '욕심의 대물림'일 뿐입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몇몇 대형 교회들이 앞장서서 세습을 선도하더니, 현재는 중소형 교회에까지 일반화해 아예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자세한 통계마저 공개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연줄이 없고 인맥이 없는 신참 목회자들이 담임목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 예정 목사님들에게 돈을 한 보따리 미리 건네주면 한자리 가능하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 목사라는 직함의 거룩하신 분들이 성직 매매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교회 상당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썩어 터진 교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회의 사유화와 계급화

많은 세습 교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들 교회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거의 사조직화해 있고, 또한 교회의 직제와 운영이 매우 계급화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최대한의 교권과 이권을 누리기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다른 곳으로 보내고, 말을 잘 듣는 사람들로 인의 장막을 치고 자신의 왕조를 구축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담임목사는 교회 내에서 사실상 거의 왕 같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들은 대부분 재정의 불투명한 처리가 교회 사유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거가 될 경우가 많다. 예산과 결산을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도들은 자신들의 담임목사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얼마나 많은 교회 돈을 챙겨 가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아울러 동역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말뿐이고, 교역자들 간에도 담임목사를 총수로 하여 수직적으로 계급화해 있다. 감히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하루아침에 옷을 벗어야 한다. 조직의 경직성이 어느 재벌 주식회사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겉으로는 '평신도를 동역자로 세우는 교회'라고 멋진 선전을 하면서, 실제로는 평신도는커녕 교역자들 간에서조차 대등한 동역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며 자매인 개혁 교회의 정신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기만이 가득 찬 독재 정권처럼 위선으로 치장된 경건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

그런데 이렇게 교회 세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담임목사가 대를 이어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욕심이 그 뿌리가 될 것이다. 이만열 교수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 목회자 대상의 어느 한 설문 조사에서 무려 65%가 목사직 세습이 가능하다는 한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현재 대다수 목사들의 의식 구조와 그 수준을 잘 보여 준다. 기회만 있으면 자기도 세습을 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모두가 전국의 수많은 신학교들에서 자격 미달의 목회자들을 무분별하게 양산해 준 덕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더 큰 문제가 있다. 교회 세습을 단지 목회자들의 책임만으로 돌리는 것은 아직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한 단견이 되기 때문이다. 즉 목회자들의 잘못 못지않게, 오히려 이들 목사들에게 무조건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절대 다수의 신도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신도들의 특징은 목사가 무슨 말을 해도 맹종한다. 목사를 '주의 종'으로 모시고, 목사의 말이 하늘에서 보낸 천사의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종한다.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맹신의 문제점은 모두가 잘 아실 것이다. 즉 올바른 목회자가 사역할 때는 별 일이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사심을 가진 목회자가 이들을 이용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교회 역사가 잘 보여 주듯이 맹신도들은 담임목사가 무슨 일을 해도, 무조건 믿고 따르며 좋게 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목사가 교회 공금을 억 단위로 횡령해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이들은 '뭐 선한 일에 급히 쓰셨겠지' 하며 좋게 생각한다. 또한 목사가 간통하다 걸려도, "또 이단들이 모함을 하는군" 하고 넘어간다. 담임목사가 교단 선거에서 더러운 돈을 물 쓰듯이 뿌린다는 소문 정도는 "설마" 하고 아예 믿지를 않는다. 이러니 교회 세습 정도야 간단하게 "대를 이어 헌신하시는 귀한 분들이시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들 교회 공동의회에서 대다수의 신도들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한다면, 어찌 교회 세습이 가능하겠는가. 마치 예레미야 시대가 오늘날 또다시 재연되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라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이다.

물론 이런 맹신도들을 키운 사람들은 귀족 목사들이다. 이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보다는 먼저 '목사의 제자'로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세습 교회들은 모두 다 병든 교회인가?" 하며 항변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단 몇 교회들이라도 예외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의 눈에 비친 대부분의 세습 교회들은 '개혁 교회'라는 간판을 크게 부끄럽게 하는 교회들로 보인다.

개혁을 거부하는 한국의 개혁 교회들

즉 상당수의 교회들은 개혁 교회라는 명함은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개혁을 늘 거부하고 있는 교회들이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의 편에 서서 교회 개혁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인사들이 언제나 말하는 궤변이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서로 헐뜯지 말자는 것이다. 또한 일부의 잘못을 가지고, 전체 목사나 전체 교회들의 잘못으로 확대하여 비방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거룩한 교회를 무너뜨리는 이적 행위라는 것이다.

1415년 프라하 대학 총장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개혁자 요한 후스는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성직 매매'를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결국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간단히 줄여 말하면, 괘심 죄에 걸린 것이다. 이처럼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나 바른 말을 하는 신자들을 교권으로 누르고 핍박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없이 교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죄성이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권주의자들도 방법만 다를 뿐이지 교활한 명분과 변명을 늘어놓으며, 비슷한 비행을 계속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욕에 눈이 어두워져 온갖 잘못은 자신들이 다 저질러 놓고서, 오히려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상투적인 수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들은 교회론 그 자체부터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조직이나 예배당 건물이 아니고, 우리 신자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사나 신자들 자신이 상습적으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는 교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이고, 당연히 이를 지적하고 시정하여 바른길로 가도록 서로 권면해야 함이 마땅한 일인 것이다.

이들의 배부른 논리를 따르자면 루터와 칼뱅이 교황을 반대하고, 나단이 다윗의 범죄를 지적하고,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당시 교회 지도자들인 바리새인을 향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 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중세 가톨릭에 그대로 남아 있지, 왜 뛰쳐나와서 개혁 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면에서, "끊임없이 세속화와 변질의 유혹을 받는 교회는, 계속적으로 복음을 수호하고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반복적인 자체 개혁과 원상회복을 필요로 한다"라고 정확하게 개혁의 핵심을 지적한 이정석 교수의 발언을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 세습과 부정부패

교회 세습은 교회 부패와 직결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유지되는 교권이 과연 얼마나 청렴할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은 구태여 큰 노력이 없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 중대형 교회들에서 그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잠시만 둘러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세습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한 교회에서 수십 년간 사역한 담임목사들 중에 과연 부정과 부패 문제를 안 일으킨 중대형 교회 목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 거꾸로 묻고 싶다. 오죽 그 도가 지나쳤으면, 세상의 법정에까지 서서 심판을 받고 있는가. 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세습은 유형 교회가 몰락으로 가는 넓은 길이다. 과거에 면죄부를 팔아서 이권을 챙기던 중세 가톨릭이 크게 몰락했듯이, 교회 사유화에 앞장선 교회들은 그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 세습이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로 소득'이란 점에 있다. 특별한 노력 없이 단지 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후보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직책과 기득권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적인 공평성의 원리마저 거스르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 세습은 어떤 경우에든 결코 면죄부를 줄 수가 없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은 물론, 보편적인 상식과 도덕에도 어긋나는 몰염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비루한 명분과 핑계를 대더라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교회 세습이 한 번이라도 용인된다면

만일 아직도 교회 세습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반대로 세습이 정당시 되고 일반화했을 경우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아무런 간섭 없이 자식이나 혈족에게 교회를 쉽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특히 교회 재산과 이권이 큰 중대형 교회들은 특정 목회자의 자식들이 뿌리를 박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 왕족같이 군림하게 될 것이 뻔하다. 즉 큰 교회마다 왕조가 하나씩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일단 한번 세습이 허용되면 계속해서 막을 명분도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중세 교황도 부럽지 않는 막강한 세습 왕조들이 큰 교회마다 하나씩 들어선다고 상상을 해 보시라. 현재도 목회자들의 부정과 부패로 한국교회가 고통을 받고 신음하고 있는데, 더욱 강력한 교권을 지닌 세습 왕조가 들어서면 오죽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마 이들은 일부 부패한 사학 재단들의 교직 매매처럼, 성직 매매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 있더라도,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 있고 상식이 있는 법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무슨 주식회사인가, 대를 이어 경영하겠다니. 한국교회 세습은 그저 중세 성직 매매의 또 다른 아류일 뿐이다. 돈으로 직분을 사는 것과 혈연으로 직분을 물려주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일부 목회자들은 혈연으로 안 되니, 할 수 없이 돈을 주고라도 부당하게 직분을 사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누구라도 이런 세습 교회에 출석하여, 세습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것이 과연 신자다운 일인지 스스로 진지하게 반문해 보시기 바란다. 이계선 목사님이 "대형 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주장을 하셨다고 한다. 필자도 역시 이를 적극 지지하며, 여기에 다음의 한마디를 더 추가하고 싶다. "세습 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그러나 다행히 모든 목회자들이 교회 세습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동광교회 김인호 목사님처럼 20여 년 동안 사역한 교회를 떠나며, 퇴직금마저 헌납하고 자비량 농어촌 사역에 나서시는 훌륭한 분들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수많은 귀족 목사님들이 과소유의 욕심을 부리며 교회를 어지럽혀도,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전심으로 수고하시는 이런 귀한 목사님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나마 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습 목사와 '주의 종'

만일 교회 세습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생각하는 세습 목사가 단 한 분이라도 있으시다면, 말로만 떳떳하다고 주장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현재의 교회를 사임하고 즉시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로 가서 그 교회를 자식과 함께 대를 이어 섬겨 보시라. 그리하면 필자는 그대의 진심을 믿어 줄 것이며, 그대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존경할 것이다.

아울러 이미 부끄러운 세습을 받은 목회자들께 묻고 싶다.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이 양보하고 물러설 수는 없는지. 주일마다 입술에 꿀을 발라 설교만 달콤하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경의 가르침을 직접 손과 발로 실천할 수는 없는가.

그대들은 자신들이 구약의 세습직이던 레위인 제사장이라도 되는 줄로 아는가. 몇 마디 위선적인 말로 세습을 미화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마음을 비우고 이 땅의 더러운 우상이 된 '목사교'를 무너뜨리고, 함께 손을 잡고 온전한 '예수교'를 세워 나갈 수는 없는 것인지.

결론은 명확하다. 교회 세습, 어떤 이유로든 앞으로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낙심하여 포기하고 침묵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말리다 지쳐서도 안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 침묵한다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처음 오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증거하는 사역을 하였다면,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앞으로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고 증거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삶과 현재 한국 목회자들의 삶을 한번 비교해 보자. 단순히 부유한가 가난한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사역자로서 주님을 향한 삶의 자세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습에 이미 안주하고 있거나 세습을 꿈꾸는 목회자들은 물론 나머지 모든 목회자들에게도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적어도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처럼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비우고 살 마음의 자세가 없다면, 함부로 자신이 '주의 종'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마시라.

아울러 그가 스스로 메뚜기와 석청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순교당하기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이 단순한 가르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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