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한 줌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변방 운동으로 등장한 오순절 및 은사주의 계열 기독교(Pentecostal & Charismatic Christianity)는 20세기가 끝날 무렵, 세계에서 가장 성장이 빠르고 강한 영향력을 가진 주류 기독교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2010년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오순절 및 은사주의 계열 기독교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구가 최소 6억 명에 이르며, 이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약 1/4을 차지한다. 이 통계에는 오순절 계열이 아닌 기존 전통 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성령세례나 은사 등의 지속성과 유효성을 인정하는 은사주의 기독교인 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오순절/은사주의 운동에 다양한 유형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자신을 그런 이름으로 호칭하지 않는 이들의 수치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까지 더한다면, 어쩌면 가톨릭과 정교회, 여러 신흥 종파를 포함해서, 세계 기독교인의 약 절반이 오순절 및 은사주의 운동의 영향하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20년에는 오순절/은사주의 신자가 1억 140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나,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44%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통계도 있다. 이 통계가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규모와 영향력이 이 정도라면, 오순절 운동을 기독교 내부의 갱신 운동 혹은 한 교파 운동이라고 보는 일반적인 평가 수준을 넘어서, 개신교 탄생의 모체인 16세기 종교개혁을 잇는 제2의 종교개혁으로 보고, 아예 오순절 기독교를 정교회/가톨릭 및 개신교와 구별되는 제3의 기독교로 보는 해석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1)

오순절 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한 세기가 지났기 때문에, 이 운동의 세계적인 성장을 이끈 20세기 대표 인물들 이름도 여럿 언급할 수 있다. 미국 오순절 운동의 개척자 찰스 파럼(Charles F. Parham)과 흑인 성결 운동가 윌리엄 시모어(William J. Seymour), (4중)복음교회 설립자이자 여성 지도자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 같은 교단 지도자로 길위의교회(Church on the Way) 목사이자 대중 부흥사였던 잭 헤이퍼드(Jack Hayford), 1960년대 히피족 등 미국 청년의 세속화에 대응하는 예수의 사람 운동(Jesus People Movement)을 이끈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Chuck Smith), 기독교방송네트워크(CBN)를 이끈 대표적인 오순절계 TV전도자(televangelist)이자 극우 정치 운동가 팻 로벗슨(Pat Robertson), 신유 부흥사의 대표 주자 여성 캐스린 쿨만(Kathryn Kuhlman)과 남성 베니 힌(Benny Hinn), 성결 운동계 부흥사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구호로 유명한 '믿음 운동'의 주창자 캐네스 해긴(Kenneth Hagin)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 글의 주인공인 피터 와그너(Charles Peter Wagner, 1930~2016)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빈야드(Vineyard) 운동 지도자 존 윔버(John Wimber), 예언을 강조하는 새로운 운동을 이끈 마이클 비클(Michael Bickle)과 '캔자스시티 예언자들'(Kansas City Prophets)도 널리 알려졌다. 오순절/은사주의 기독교가 이전에 존재한 어떤 유형의 기독교보다도 유색인종과 여성, 제3세계, 하류층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널리 수용된 만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도 비서양 오순절계 지도자를 대표하는 이름이다.2)

이들 각각은 자기 소속 교단, 운동, 공동체, 지역 등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했고, 오순절 운동 발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떠맡았다. 특히 여성이거나, 제3세계 인물이거나, 지금은 주류가 된 교단의 창시자이거나, 내부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거나 했던 점에서, 각각 이 운동의 일면을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 이상으로 다양성과 변칙성이 큰 운동이므로, 가톨릭의 교황이나 개신교의 루터나 칼뱅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대표 인물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 세기 정도 지난 오순절 운동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고, 지지자들을 모아 하나의 강력한 운동을 형성하고, 자기 이름을 내세운 여러 조직을 만든 몇 인물이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역사를 만든 인물로 피터 와그너를 꼽아도 좋을 것이다. 학자가 된 이후 와그너는 정체성과 성향이 극적으로 변하는 세 차례 전환을 겪었다. 이 전환을 대표하는 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교회성장학 △제3의 물결 △신사도 개혁.

교회성장학 전문가이자 오순절·신사도 운동의 대부로 이름을 알린 피터 와그너.
교회성장학 전문가이자 오순절·신사도 운동의 대부로 이름을 알린 피터 와그너.
1. 교회성장학

1930년에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나 자란 피터 와그너는 이웃한 뉴저지주에 위치한 럿거스대학에서 공부한 후 캘리포니아 풀러신학교에 들어가 1955년에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풀러를 졸업한 해에 보수기독교회중교회대회(The Conservative Christian Congregational Conference, CCCC)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CCCC는 청교도들 후손인 회중교회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적 입장을 수용하자, 회중교회 내부 보수주의자들이 1945년에 결성한 교단이었다. 안수를 받고 이듬해부터 해외 선교에 헌신한 와그너는 안데스복음주의선교회(Andes Evangelical Mission, 현재 SIM International) 소속으로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남아메리카선교회(SAM)와도 1956년부터 1971년까지 동역했다.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기에 볼리비아 코차밤바(Cochabamba)에 세워진 조지앨런신학교(George Alle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수로 가르치면서 안데스복음주의선교회 부책임자(1964~1971)로 활약하기도 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 선교사였던 만큼, 와그너는 추가 공부를 통해 교수 자격증을 보완하는 과정을 계속 밟았다.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석사(Th.M) 학위를 1962년에 받았다. 이어서 모교 풀러신학교 세계선교대학원(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s)에 들어가 선교학 석사과정(M.A)을 밟고 1968년에 학위를 취득했다.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대학(The University of California)에서 사회윤리를 공부하여 1977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풀러에서 선교학 석사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던 시기부터 와그너는 교회성장학 및 선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1년에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교회성장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자 전문가였던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Anderson McGavran, 1897~1990)의 조교가 되었다. 맥가브란의 영향하에서 1971년부터 1998년까지 풀러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찰스풀러전도및교회성장연구소(Charles E. Fuller Institute) 부소장(1971~1991)으로 재직하던 중, 1984년에는 은퇴한 스승의 이름을 딴 도널드맥가브란교회성장학석좌교수가 되었다. 주로 교회성장학으로 유명했지만, 풀러신학교에서 거의 30년간 재직하면서 다양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한 덕에, 와그너가 다룬 주제는 △교회 성장 △실천신학 △타 문화 선교 등 선교학과 실천신학 전 분야에 걸쳐 있었다.

1974년부터 1989년까지는 복음주의 운동과 해외 선교의 이정표가 된 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Lausanne Committee on World Evangelization)의 주요 기획자 및 참여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로잔 대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20세기 말 세계 선교계를 뜨겁게 달군 '미전도 종족'(the Unreached People)이라는 주제를 전문 연구하는 로잔전략작업그룹(Lausanne Strategy Working Group)의 초대 회장이었다. 이 작업을 토대로 에드워드 데이턴(Edward R. Dayton)과 함께 이 분야를 대표하는 연감 문헌인 <미전도 종족들 Unreached Peoples>을 발간하는 업적을 남겼다. 1985년에 창립된 북미교회성장학회(The North American Society for Church Growth) 초대 회장으로 와그너가 선출되었는데, 이는 스승 맥가브란과 함께 교회성장학계에서 그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3)

2. 제3의 물결

1970년대~1980년대 초반에 교회성장학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와그너의 관심사는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원래 맥가브란이 체계를 만든 교회성장학은 교회 성장을 가능케 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사회학·인류학의 틀로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와그너는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을 영적인 것,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인 기적과 역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 풀러에서 동역했던 빈야드 은사주의 운동 지도자 존 윔버(1934~1997)와 함께 1984년 이후 풀러에서 △이적과 기사 △영적 전쟁 같은 과목을 가르친 것이었다.

초기에 와그너는 자신을 1단계 고전적 오순절 운동에 이어 제2단계에서 탄생한 은사주의자(Charismatics)로 인식했다. 얼마 후부터 그는 자신과 윔버의 입장을 3단계인 '성령의 제3의 물결'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는 성령세례 및 이적과 기사 같은 사건을 기존 교회들이 고전적 오순절 운동 시대와 은사주의 시대에 비해 훨씬 보편적으로 수용하게 된 상황을 지칭한다. 성령세례를 중생과 분리된 제2의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1세대 오순절 운동 교리를 수정하고, 은사와 이적, 기사, 신유의 보편성과 일상성을 강조한 와그너와 윔버의 운동은 더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로 퍼져 나갔다.4)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 운동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피터 와그너는 오순절 운동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3. 신사도 개혁

1992년부터 와그너는 기존의 은사주의 운동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면서, '오순절 - 은사주의 - 이적과 기사 - 신사도 개혁'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테드 해거드(Ted Haggard) 목사, 조지 오티스 주니어(George Otis, Jr.) 등과 함께 콜로라도스프링스(Colorado Springs)에 세계기도센터(World Prayer Center)를 설립했다. 자신의 사역 본부를 미국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의 새로운 '메카'로 주목받은 콜로라도스프링스로 옮겨, 사도적이고 예언적인 사역 확산, 영적 전쟁 수행을 위한 조직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 예언 사역자로 유명한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 빌리 조 도허티(Billy Joe Daugherty), 빌 해먼드(Bill Hammond) 같은 지도자들과도 연결되었다. 풀러에서 2001년 은퇴하기 직전인 1998년에는 와그너지도력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라는 이름의 비전통적인 학교를 설립했다.5) 현재 와그너대학(Wagner University)으로 이름을 바꾼 이 학교에는 유명한 신사도 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이 교수로 포진하고 있다. 체 안, 신디 제이콥스, 빌리 존슨, 숀 볼츠, 브라이언 시몬스, 크리스 밸러턴 등이 대표적이다.6)

1990년대 중반 이후 오순절/은사주의/제3의 물결이라는 오순절 운동 계보에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 더해졌다. 이는 와그너가 1990년대에 창립하거나 참여한 단체의 목록에서 확인된다. 1990년부터 전략기도네트워크(Strategic Prayer Network)의 국제사도(International Apostle), 1992년부터 세계추수선교회(Global Harvest Ministries) 대표, 1998년부터 와그너리더십연구회(Wagner Leadership Institute) 수장, 1998년부터 교육책임사도협의회(Apostolic Council of Educational Accountability) 사도, 1999년부터 예언장로사도협의회(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1999년부터 국제사도협회(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책임사도, 2000년부터 축사사도선교회(the Apostolic Roundtable of Deliverance Ministries) 사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체들 이름에 '사도'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간다.

와그너가 참여한 단체들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사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평생 와그너는 책을 70여 권 쓰거나 편집했는데, 1998년 이전에 그가 다룬 주제는 △라틴아메리카 신학 △볼리비아 개신교 △선교 정책 입안자들의 전기 △교회와 선교의 관계 △오순절 운동 △교회 성장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이적과 기사 △치유 사역 △영적 전쟁 △기도 △부흥 등이었다. 교회 성장과 오순절 운동에 치우쳐 있기는 했지만, 관심의 폭이 넓은 선교학자가 다룰 만한 다양한 주제를 취급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98년 이후에 그가 쓴 책은 대부분 사도직, 신사도 교회 등, '사도'와 관련된 한 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다룬다. 1998년에 출간한 <신사도 교회들을 배우라 The New Apostolic Churches7)가 시작이었다. 처음에 온건하게 사도 시대에 보편적이었던 은사를 실천하는 교회들의 사례를 수집해서 소개하던 그는 2000년 이후 '사도' 직분의 부활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역사상 대부분의 주류 교회들이 사도 시대 이후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종결되었다고 본 것에 반대하고, 오늘날에도 다시 1세기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선지자와 사도가 세워질 수 있고, 실제로 세워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표적인 구절을 인용해 보자.

"여러 가지 면에서 2001년은 중요한 해였다. 그중에서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일은 그해가 제2의 사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해였다는 점이다. (중략) 이 운동을 가리켜 내가 붙인 이름은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내가 '개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운동의 전반적인 영향력이 개신교 종교개혁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또 '사도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 변화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이 바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도의 은사와 직임이 다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그 교단의 공식적인 명칭에 사용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새로운 교회의 특징이 아닌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고수하는 많은 교단들과 현재의 이 운동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8)

2004년에 영어로 발간되고 한국에서는 2006년에 번역된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Changing Church>에 담긴 이 주장은 2006년에 영어로 나오고 2008년에 한국어로 번역된 <오늘날의 사도 Apostles Today>에서도 거의 똑같이 반복된다. 특히 이 책에는 부록으로 1999년에 창립되어 2006년 당시 500명이 넘은 사도가 가입되어 있다는 국제사도협회(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의장사도 피터 와그너가 2006년에 작성한 '사도란?'이라는 제목의 예비 문서가 실려 있다. 여기서 와그너는 하나님이 세우는 사도의 자격으로 △특출한 인격 △겸손 △지도력 △권위 △고결함 △지혜 △기도를 든다. 모든 사도가 행하는 사역에는 △계시받음 △비전 제시 △태동시킴 △풀어 주기 △세워 나감 △질서 부여 △가르침 △파송 △완성 △전투 △세대를 연결 △준비시킴이 있다. 일부 사도들이 행하는 것에는 △예수님을 봄 △표적과 이사를 행함 △이설을 드러냄 △교회 개척 △교회 훈육 △교류 문화적 사역 △적에게 빼앗긴 지역을 하나님나라로 돌이키는 일이 포함된다.9)

와그너는 여러 차례 자신의 정체성과 성향을 극적으로 전환했던 인물로, 오순절 운동 특유의 변칙성과 유동성을 대변하는 인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와그너는 여러 차례 자신의 정체성과 성향을 극적으로 전환했던 인물로, 오순절 운동 특유의 변칙성과 유동성을 대변하는 인사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피터 와그너는 86세이던 2016년 10월 21일에 지병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미국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 Christianity Today> 편집자 중 하나로 휘턴칼리지 선교 및 전도학 교수이기도 한 에드 스테처(Ed Stetzer)는 와그너 사망 다음 날에 다음과 같이 와그너를 회고했다.

"당신이 피터 와그너를 알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자주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피터 와그너요?' 그가 두 얼굴의 사나이라서가 아니라, 견해를 아주 많이 바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당신이 1980년대에 그를 만났다면, 아주 다른 (그러니까 예컨대, 은사주의자가 아닌) 피터 와그너, 즉 교회 성장 운동을 이끈 와그너를 만났을 것이다. 새 밀레니엄이 된 후에는 그는 신사도 개혁이라 불리는 운동으로 유명해졌다."10)

여든 인생에서 여러 차례 변신한 인물 와그너에 대한 인상이 사람들에게 그만큼 다채롭다는 사실을 에드 스테처의 회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및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피터 와그너는 그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사람들, 특히 그를 21세기에 새로 부활한 사도 중 최고 사도로 인식한 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전통 주류 교회, 특히 개혁파 장로교회는 성령세례를 중생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방언·신유·축사·통변·예언 등의 성령의 은사가 사도 시대에 종결되었다고 가르치며 모든 종류의 오순절 및 은사주의 운동을 경계해 왔다. 따라서 성령세례와 은사의 지속성 논란을 넘어, 21세기에 사도가 새로이 기름 부음 받아 부활했다고까지 과감하게 주장한 와그너가 이단 시비에서 자유로울 리 없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2007년)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2009년)은 '참여 금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2015년)은 '엄히 경계', 심지어 한국기독교장로회(2014년)마저도 '교류 금지'를 결의할 만큼, 와그너와 신사도 개혁 운동은 한국 주류 개신교회에서도 경계 대상으로 지목되어 있다.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나면서 주류 기독교 중 하나로 부상한 오순절 운동은 역사와 지리, 배경, 교리, 신학, 조직, 특징, 인적 구성이 셀 수 없을만치 다채로워졌다. 처음부터 교리와 직제, 제도, 문서, 계층 기반이라는 고정적 규범이 아니라, 자율성과 유동성, 역동성, 변칙성이 특징이었던 만큼, 오순절 운동이 어떤 얼굴로 변할지는 앞으로도 예측하기 힘들다. 피터 와그너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잇는 시점에 오순절 운동 특유의 그런 변칙성과 유동성을 대변한 대표 인사 중 하나였다.

1) 알랜 H. 앤더슨, 『땅끝까지: 21세기 오순절 개론』, 유근재, 조규형 역 (인천: 주안대학원대학교출판부, 2019), 27-50. 이 책은 현재 가장 권위 있는 오순절 운동 연구자인 영국 버밍엄대학의 알랜 앤더슨(Allan H. Anderson)이 2004년에 처음 출간한 An Introduction to Pentecostalism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2019년 제2판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같은 한국어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같은 저자의 『땅끝까지: 오순절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변화』, 손승진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9)는 2013년에 영어로 출간된 To the Ends of the Earth: Pentecostalism and the Transformation of World Christianity (Oxford, UK: Oxford University Press, 2013)의 번역판이다. 전자는 오순절 운동의 역사와 신학, 분포 전반을 다루는 교과서 유형의 개론서이며, 후자는 더 깊은 분석을 담은 연구서다. 오순절 운동의 전반적인 역사와 복음주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재근,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서울: 복있는사람, 2015)의 제6장을 보라.
2) 앤더슨, 『땅끝까지: 21세기 오순절 개론』, 87-135, 247-251.
3) D. Hedges, "찰스 피터 와그너," in 티모시 라슨 편, 『복음주의 인명사전』, 이재근, 송훈 역 (서울: CLC, 2018), 923-926.
4) 피터 와그너, 『제3의 바람: 당신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신유의 은사를 행하는 방법』 (인천: 나눔터, 1990), 15-66.
5) Hedges, "찰스 피터 와그너," 923-925.
6) https://wagner.university/about-us/.
7) 피터 와그너 편, 『신사도 교회들을 배우라』, 홍용표 역 (서울: 서로사랑, 1999).
8) 피터 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역 (서울: 쉐키나, 2006), 7, 9-10.
9) 피터 와그너, 『오늘날의 사도』, 박선규 역 (서울: 쉐키나, 2008), 229-233.
10) Ed Stetzer, "C. Peter Wagner (1930-2016), Some Thoughts on His Life and Passing: Missiologist, missionary, writer, teacher, and Church Growth specialist," Christianity Today (Oct. 22, 2016). https://www.christianitytoday.com/edstetzer/2016/october/in-memory-of-c-peter-wagn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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