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가 운영하는 영훈국제중학교가 일반중으로 전환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열화·특권화 등의 문제를 들어 국제중 지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오륜교회가 운영하는 영훈국제중학교가 일반중으로 전환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열화·특권화 등의 문제를 들어 국제중 지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국내 대표적인 사립학교로 꼽히는 영훈국제중학교의 국제중 지정이 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조희연 교육감)은 6월 10일 운영 성과 평가 결과를 심의해,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에 대한 지정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처분이 확정되면 영훈국제중은 '국제' 간판을 떼고 일반 중학교로 전환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운영상 문제 △교육과정 운영에서 학사 관련 법령 및 지침을 위반해 감사 처분을 받은 점 △국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노력 부족 △교육 격차 해소 노력 부족 등이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중학생 1인당 연평균 학비가 1000만 원 이상인데도 '학생 1인당 기본 교육 활동비'와 '사회 통합 전형 대상자 1인당 재정 지원 정도'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아, 학생들에 대한 재정 지원 노력이 적다고 봤다.

조희연 교육감은 "중학교 의무교육 단계에서, 국제 중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외고·국제고가 일반고의 교육과정 다양화로 대체되고 있다. 중학교 의무교육 단계에서 소위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하여 특성화된 학교 체제가 필요한지 수없이 자문해 봤지만, 필요성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국제중의 존재는 지정 목적과 달리 일반 학교 위에 서열화한 학교 체제로 인식되어 이를 위한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유아 대상 영어 학원(소위 '영어 유치원')-사립초-특목고로 가는 과정 중 중학교 단계 목표가 되었다"며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리베이트 의혹받으면서까지
영훈학원 인수한 오륜교회
"귀족 학교 아니다"
거금을 들여 학교를 인수한 오륜교회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김은호 목사는 학교법인이 법적 대응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거금을 들여 학교를 인수한 오륜교회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김은호 목사는 학교법인이 법적 대응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번 결정으로 2015년 거액을 들여 영훈학원을 인수한 오륜교회(김은호 목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설립자 김하주 전 이사장 비리로 얼룩진 영훈학원은 2015년 교육부가 파송한 임시이사 체제를 끝내고 새 인수자를 찾았는데, 오륜교회가 여기 뛰어들었다. 200억 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뒷돈까지 쓴다는 의혹을 받아 가며 법인을 인수했다. 영훈학원에는 영훈국제중 외에도 영훈초·영훈고등학교가 있지만, 단연 핵심은 국제 중학교다. 당시 오륜교회가 인수에 성공하자 대형 교회가 뒷돈을 써 가면서까지 교육 불평등을 심화하는 귀족 학교를 운영한다며 비판이 잇따랐다.

영훈국제중학교는 2008년 설립 초기부터 큰 관심을 받았지만, 대중에 깊이 각인된 계기는 2013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녀 입학이다. 이 부회장이 자녀를 영훈국제중에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고, 관련자들이 대거 처벌받았다. 김하주 전 이사장은 구속됐고 학교에는 임시이사가 파송됐다. 학교는 엉망진창이 되었을지 몰라도 세간에는 국내 최고 대기업 그룹 자녀가 다니고 싶어 했던 '특권 학교' 이미지를 더 굳혔다.

영훈국제중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처분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학교는 국제중 지정 취소 발표 직후인 6월 11일 '정치적 논리로 왜곡된 교육 현장, 국제중 지정 취소는 부당'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다.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정치적 논리 속에 국제중 취소를 위한 방안만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훈국제중은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운영 성과 평가 지표 및 기본 방향'을 2019년 12월에야 제시했고, 이 지표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통과 커트라인이 60점에서 70점으로 상향됐고, 학교 구성원 만족도 배점은 15점에서 9점으로 감소했으며, 감사 지적 사항은 5점 감점에서 10점 감점으로 늘어나는 등 국제중 재지정을 취소하겠다는 교육감 의도가 반영됐다고 했다. 영훈국제중은 청문 과정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 대응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도 6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서울시교육청 평가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목사는 "(국제 중학교 지정 취소로) 원어민 교사 재계약 문제나, 신입생과 재학생 간 차이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만만치 않다. 우리는 다음 세대 때문에 이 학교를 섬기는 거고, 학교 때문에 도움받는 것 하나도 없는데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다. 일단 교육청 청문 절차에 응하고, 행정소송 및 가처분 신청 등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호 목사는 교회가 '귀족 학교'를 운영한다는 비판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교육은 백년대계 문제다. 획일화한 교육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훈국제중을 귀족 학교라 하지만,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20%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학교가 없다면) 아이들이 조기 유학을 떠나게 된다. 설립자가 조기 유학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학교를 세웠다고도 들었다. 우리는 이 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야망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비전을 갖고 학창 시절을 보내게 하자는 의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아동 학교 부지에는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국제중(맨 오른쪽 건물)과 달리 나머지 둘은 일반 학교다. 교육 단체들은 영훈국제중도 일반중으로 전환해, 일부 특권층이 아닌 모두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며 환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미아동 학교 부지에는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국제중(맨 오른쪽 건물)과 달리 나머지 둘은 일반 학교다. 교육 단체들은 영훈국제중도 일반중으로 전환해, 일부 특권층이 아닌 모두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며 환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교육 단체들 "국제중 지정 취소 결정 환영
이번 기회에 입법 보완으로
특권 학교 문제 종지부 찍어야"

특권 학교 폐지를 외쳐 온 교육 단체들은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정지현·홍민정)은 6월 11일 논평에서 "영훈국제중의 경우는 과거 2013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녀 등 부유층에 해당하는 특정 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800명의 성적을 조작해 '귀족 학교', '뒷돈 입학'이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후에도 회계 비리와 채용 비리에 연루돼 있는 학교에 여전히 면죄부를 준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일이다"고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를 규정한 '교육기본법'은 국제 교육을 모든 국민이 받아야 할 보편적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중학교에서 국제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별도로 특권 트랙을 만드는 것은 교육기본법 규정을 퇴색시키는 처사"라며 국제중은 폐지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좋은교사운동(공동대표 김영식·김정태)도 6월 12일 "서울시교육청의 2개 특성화 중학교 운영 성과 발표 및 지정 취소 절차 진행 결정은 교육 정상화를 위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는 논평을 냈다. 좋은교사운동은 "국제중과 같은 조기 분리 교육은 극히 소수에게만 허용된 교육을 통해 공공성을 약화한다.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사회적 소양을 키울 기회를 빼앗아 비교육적"이라고 했다.

김영식 공동대표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권 학교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입법 보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자사고 문제도 그렇고, 사학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의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고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행규칙을 정비하고 법령을 개선해 공정성 논란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오륜교회 내부에서도 교육청 결과를 반기는 사람이 있었다. 한 교회 관계자는 "영훈학원 인수는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됐다. 귀족 학교를 인수한다는 거 자체가 명예욕·과시욕 아닌가. 게다가 교인들 헌금이 엄청나게 투입되었는데도 떳떳하게 밝히지 않았고, 리베이트 의혹까지 있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당당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가 결국 이런 일을 맞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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