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후행동 회원들이 3월 13일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서 제출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 위기를 방관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 회원들이 3월 13일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서 제출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 위기를 방관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나섰다.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은 3월 13일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녹색성장법)과 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대통령·국회를 상대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지구온난화를 불러일으키는 온실가스 문제는 청소년 생존을 위협하는 기본권 문제라며,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요청한 것이다.

청소년들은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전혀 이행하지 않아 국민, 특히 청소년의 환경권·생명권·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기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시아 최초다.

학생들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했다. 정부는 2009년 녹색성장법 제정을 앞두고 '2020년 온실가스 목표 배출량'을 5억 4300만 톤으로 잡았다. 그런데 2016년 5월 녹색성장법 시행령을 슬그머니 개정해 이를 '2030년'으로 미뤘다. 시행령 25조 1항은 "202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한다"였지만, 이를 "2030년까지 100분의 37"로 개정한 것이다.

이후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는커녕 늘려 왔다.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 2017년 7억 톤을 상회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시행령을 한 번 더 개정해 "2030년까지 2017년 총배출량의 24.4%만큼 감축한다"고 했지만, 이 수치는 5억 3600만 톤으로, 법 제정 당시 '2020년 목표량'으로 잡았던 5억 4300만 톤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이 때문에 청소년기후행동은 "대한민국 정부의 숙제를 그저 10년 연기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파리 기후 협정과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보고서에 명시된 '최소한 2도'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서다. '최소한 2도'(well below 2℃)란,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말인데, IPCC는 2017년 인천 송도 회의에서 이를 2도가 아니라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최소한 2도' 기준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5억 3600만 톤보다 27% 더 적은 3억 9100만 톤 이하로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한 대통령령이 국민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고 봤다. 또 대통령에게 이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준 국회 역시 '포괄 위임 금지' 원칙을 어겼다고 했다. 법 제정 후 10년간 이 조항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입법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의 위헌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문제, 어른 세대와 체감 다른 청소년들
피켓 시위하니 "대학 스펙 쌓느냐" 비아냥
"우리의 절박함, 어른들과는 다르다"
울산에 사는 16살 동갑 윤현정 씨(왼쪽)와 윤해영 씨(오른쪽)는 동물권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은 앞으로 10년 후, 과연 자신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울산에 사는 16살 동갑 윤현정 씨(왼쪽)와 윤해영 씨(오른쪽)는 동물권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은 앞으로 10년 후, 과연 자신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은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헌법 소원에서 이들은 '여명 기간'(남은 생의 기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청소년들의 법률 대리를 맡은 윗 세대 변호사들 여명 기간이 20~30년이라고 봤을 때, 현재 10대인 자신들은 여명 기간이 60~70년 이상이라고 했다. 어른들의 무분별한 개발, 반환경적 정책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지구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이라는 지적이다.

헌법 소원에 참여한 학생들도 "기후변화는 나의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번 헌법 소원에 참여한 윤현정·윤해영 씨는 3월 18일 <뉴스앤조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내 미래를 내가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울산에 거주하는 두 사람은 만 16세로,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이다. 동물권과 육식 문제를 다룬 책을 접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고기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 가동되는 축산업 시스템이 기후 위기의 한 축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환경운동에 나섰다.

윤현정 씨는 "어른들은 우리 나이 때 '내가 어른이 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환경적으로 안전할까'라는 걱정은 안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10년 후, 8년 후 기후 위기로 세상이 안전할지 걱정하고 있다. 과연 내가 꿈꿔 온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한다는 차원에서, 어른들과는 고민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해영 씨 역시 "이번 헌법 소원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후 위기가 나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0~20년 후에도 내가 잘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에게는 그 점이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환경문제를 향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박한 심정을 삐딱하게 바라보거나 안일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울산대공원과 시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윤해영 씨는 "많은 사람이 '학생들이 대견하다, 잘한다'고 칭찬해 줬지만, 일부에서는 대학 잘 가려고 스펙 쌓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그런 활동이 대학 가는 데 유리하겠다"며 선의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더 황당하다고 했다.

윤현정 씨는 "시청 앞에서 시위할 때는 공무원들이 칭찬해 주더라. 열심히 한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는데 기분이 묘했다. 사실 공무원들이 앞장서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라고 시청 앞에서 시위한 건데, 마치 파업하는 노조원에게 회사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 4300만 톤 이내로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6년 대통령령 개정으로 이를 슬그머니 2030년으로 미뤘다. 청소년들은 이 피해가 미래 세대인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 4300만 톤 이내로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6년 대통령령 개정으로 이를 슬그머니 2030년으로 미뤘다. 청소년들은 이 피해가 미래 세대인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윤해영 씨는 "학교에서는 도덕·사회 시간 때나 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일회용품을 덜 쓰는 등 개인적 실천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활동을 눈여겨본 학교가 두 사람에게 환경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줬고, 최근 호주 산불로 수많은 야생동물이 떼죽음당하는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돌면서 몇몇 친구가 심각성을 깨닫기도 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제일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 감축 같은 정부 차원의 정책 전환"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윤해영 씨는 "마냥 감축하라고 하면 산업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 일자리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 뉴딜' 같은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앞장선다고 하더라도 미국·중국 등이 동참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느냐"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했다. 윤해영 씨는 "온실가스 배출 랭킹이 미국, 중국, 한국 순이다. 서로 '저 나라보다는 우리가 낫다'고 손가락질하면서 위안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현정 씨는 어른 세대가 기후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나의 문제'라고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씨는 "<파란 하늘 빨간 지구>(동아시아)에 따르면, 러시아에 가뭄이 들면서 밀 수출이 통제됐고 밀을 주식으로 하는 중동 지역 정세 불안정으로 이어져 시리아 내전이 발생했다. 시리아 난민이 발생하고, 크게 보면 이 현상이 브렉시트까지 이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기후 문제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대법원 "온실가스 25% 감축하라"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한국 헌법재판소도
"환경권 침해, 정부가 최소한의 노력 기울여야"
이병주 변호사는 국제적 추세와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등을 볼 때, 이번 헌법 소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이병주 변호사는 국제적 추세와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등을 볼 때, 이번 헌법 소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청소년기후행동

이번 헌법 소원에서 학생들 법률 대리를 맡은 이병주 변호사(S&L파트너스)는 위헌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17일 <뉴스앤조이>와 만나 "현재 온실가스 배출 등 기후 위기 문제는 청소년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UN이나 IPCC 등 국제적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한국 정부도 파리 협정에 참가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로는 기후 파국을 막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법률적으로 '다툼이 없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최근 그레타 툰베리 등 청소년 활동가의 등장,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의 위르헨다(Urgenda) 사건 판결 등 기후 위기 문제는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다. 긴급(Urgent)+어젠다(Agenda)의 합성어인 위르헨다 사건은, 네덜란드 시민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이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0년 말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런 국제적 추세와 더불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환경권 침해에 대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린 점도 이번 헌법 소원에 유리할 것으로 이병주 변호사는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방선거 때 확성기 소음 기준을 정하지 않은 공직선거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취하였는가(과소 보호 금지의 원칙)"를 기준으로 내세워, 국민의 환경권이 침해된 것으로 봤다. 이 결정에 비추어 보면, 정부가 청소년들의 생명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몰두해 오던 어른 세대가 빚은 지구온난화 문제로 청소년들이 피해를 본다. 이들이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제기한 헌법 소원은 상당히 호소력이 있다. 승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기독법률가회(CLF)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병주 변호사는 "이대로 간다면 다음 세대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창세기는 인간이 이 땅을 잘 유지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자연 파괴를 회개해야 할 문제라고 가리킨다.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자연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 세대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민 모두가 관심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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