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코로나19 감염 확진자 총 8320명(3월 17일 10시 기준) 중 6098명이 대구, 1169명이 경북 거주다. 두 수치를 합하면 전체 확진자의 87%에 달한다. 대구·경북 지역민이 체감하는 코로나19 위험성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31번 확진자가 나타난 2월 18일 이후 대구 지역사회는 한 달간 위축된 상태다.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확산세를 누그러뜨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생계 위협으로 다가온다. 학교가 마치면 지역 아동 센터에서 밥을 먹고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저소득층 아이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푸드 뱅크에서 음식을 지급받는 독거노인들, 혼자 몸을 가누기 힘든 중증 장애인 등이 그렇다.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구경북기독인연대(대기연)는 정부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굵직한 사건 때마다 목소리를 내 왔던 대기연은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재출범했다.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대구인권선교위원회, 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성서대구, 생명연대, 영남농목, 느헤미야교회협의회(대구)가 힘을 합쳤다.

대구경북기독인연대는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에 본부를 차리고 이곳에서 물품을 나누고 배달한다. 사진 제공 대구경북기독인연대
대구경북기독인연대는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에 본부를 차리고 이곳에서 물품을 나누고 배달한다. 사진 제공 대구경북기독인연대
대학생 고용해 직접 수요 조사
라면·쌀 대신 딸기·영양제
소아암 환자에게 마스크 공급
후원 물품 적재적소 분배 목표

대기연은 어떤 품목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에 주목했다. 각 교회와 목회자가 시민사회 영역에서 주력하던 사역이 있었다. 위드교회(정민철 목사)는 의료 및 아동, 둥지교회(신경희 목사)는 장애인, 대구이주민선교센터(고경수 목사)는 이주 노동자,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박성용 신부)는 독거노인과 쪽방촌을 돌봤다.

본부 안에는 어떤 물품을 어떻게, 누구에게 배분할지 적어 놓은 현황판이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본부 안에는 어떤 물품을 어떻게, 누구에게 배분할지 적어 놓은 현황판이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목사들은 지금 시점에서 교회의 위치를 고민하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파악헸다. 먼저 이번 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둬 생계가 막막해진 대학생을 고용해 지역 아동 센터, 고아원 등지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사했다. 대부분 라면이나 쌀을 떠올리는데,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과일을 주면 좋겠다는 답이 나왔다.

위드교회 정민철 목사는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받는 입장에서 뭘 달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조사해 보니까 아이들이 과일을 못 먹은 지 한참 됐다고 하더라. 대구 근처에 딸기만 생산하는 협동조합이 있는데 그곳과 연결이 됐다. 마침 그곳도 코로나 때문에 판로가 다 막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위드교회는 딸기 160kg을 구매했다. 집마다 전달할 수 있도록 딸기, 간편식, 김 등을 한 봉투에 담았다. 정민철 목사는 아이들 이름이 적힌 지도를 들고 직접 배달에 나섰다. 정 목사는 "고된 일이지만 그래도 딸기를 받아 든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 감사했다"고 말했다.

대구다온교회는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이들이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빵을 전달했다(위). 위드교회 교인들은 매주 세 차례 지역 아동들에게 전달할 딸기를 정리한다. 사진 제공 대구경북기독인연대
대구다온교회는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이들이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빵을 전달했다(위). 위드교회 교인들은 매주 세 차례 지역 아동들에게 전달할 딸기를 정리한다. 사진 제공 대구경북기독인연대

대기연은 딸기 배달을 대구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후원금으로 딸기 2000kg을 구매해 네 개 교회에서 나누고 배달까지 맡는다. 대기연 실무를 담당하는 박성민 목사(대구교회협)는 "배달하는 게 문제다. 우리가 다 하기 힘들어 지역 몇몇 교회에 부탁했는데, 선뜻 응해 주셨다. 다행히 대구 전 지역 아이들에게 딸기를 배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인이 많은 위드교회가 다시 주목한 이들은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이다. 대구 지역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은 마스크가 절실한 상황이다. 수술과 항암 치료로 면역력이 많이 약해져 평소에도 마스크가 필수품인 아이들에게 '마스크 대란'은 생사를 위협할 정도의 두려움이었다.

정민철 목사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대구경북지회와 협력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것 역시 도움받기 원하는 이들의 수요부터 파악했다. 병력이 있는 아이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까 봐 두려워서 선뜻 자녀의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었다. 위드교회는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아 직접 신청한 사람에 한해 마스크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 지원서 빠진 독거노인 발굴
문 앞에 물건만 놓고 전화로 소통
가장 필요한 건 배달할 '사람'
박용성 신부가 생필품 박스를 문 앞에 놓고, 이를 받는 할머니에게 전화로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박용성 신부가 생필품 박스를 문 앞에 놓고, 이를 받는 할머니에게 전화로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3월 14일 한적한 토요일 오후, 박용성 신부는 검정 승합차에 생필품과 먹거리가 담긴 박스를 가득 실었다. 그의 손에는 물건을 받을 사람들 이름과 전화번호, 사는 곳, 생활 환경이 빼곡하게 적힌 목록이 들려 있었다. 이 목록에 적힌 할머니·할아버지를 찾아 물건을 전달하는 일이 박 신부 임무다. 대면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자 물건을 직접 전달하지는 않는다.

"할머니, 나야 박 신부. 왜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할머니, 야채랑 먹을 거 또 두고 가요. 문 앞에 놓고 갈 테니까 이거 가지고 가서 드셔. 다음에는 잘하면 딸기랑 토마토도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아. 이거 잘 챙겨 먹고 될 수 있으면 많이 돌아다니지 말고. 당분간만 그렇게 계셔요. 평안하세요."

박용성 신부는 교회 인근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각종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지원한다. 교회가 지원하는 독거노인들은 정부의 시스템이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녀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는데도 주소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에서 제외된 노인이 대부분이다. 박 신부는 "정부가 촘촘하게 지원하려 해도 누락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지점을 발굴해서 메꾸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성 신부는, 후원금과 물건은 조금씩 모이는데 적재적소에 전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신천지 때문에 교회를 향해서도 안 좋은 이미지가 생겼고, 혹시라도 목사가 감염되면 교인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 활동을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 신부는 "그래서 대기연 목사와 교인들의 걸음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달품이 담긴 박스에 붙은 안내문. 뉴스앤조이 이은혜
전달품이 담긴 박스에 붙은 안내문.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기연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각 구청에서 파악한 복지 사각지대 명단과 자체적으로 수요 조사한 내용을 비교해 빠지는 곳 없이 모두가 이 시기를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후원금 모금 내역과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목회자들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 기회에 교회가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고 전국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는 상황에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교회들의 연대가 좋은 선례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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