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가 3월 12일, 신분증 있는 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마스크 구매 5부제'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차별적인 정책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최영애 위원장)에 진정을 제기했다. 외노협은 "정부 조치는 결국 방역 사각지대를 발생시킬 뿐이며, 향후 이주민의 감염증 발생 시 외국인 차별과 혐오를 더욱 확산시키리라 우려된다"고 진정 취지를 설명했다.

전국 14개 이주민 인권 단체로 구성된 외노협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 명 가운데 125만 명이 마스크를 살 자격이 없다. 미등록자 39만 명, 단기 비자(C3·B2) 발급자 46만 명, 유학생 10만 명, 방문 동거자 및 방문 취업자 30여 만 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외노협은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없는 6개월 미만 체류 이주민이나 미등록자는 구매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사업자 등록 없이 영농한다는 사실만으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한 업체에 소속된 이주 노동자나 단기 방문자 등도 원천적으로 마스크 구매 자격에서 배제된다"며 "마스크를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에게 공공 마스크 구매 자격을 부여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방역 대책이 없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구매 정보 및 구매 시간 부족 △코로나19 상황이 다국어로 전달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 등으로 지역사회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외노협은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며 취약 계층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없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스크 보급이 원활치 않은데 외국인마저 챙겨야 하느냐"는 일부 국민 정서는 방역 허점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국내 체류 외국인과 관련한 코로나19 대책을 몇 가지 내놓은 바 있다. △1월 28일부터 외국인종합안내센터(1345) 24시간 상시 운영체제 전환 및 영어·중국어·베트남어 등 20개국 언어 지원 △미등록 외국인이 보건소 등에서 검사받을 경우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미등록(불법 체류) 통보 의무 면제 △체류가 곧 만료되는 등록 외국인 13만 6000명의 체류 기한 4월 30일로 연장 등이다. 외노협은 이러한 정책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 방역 시스템에서 국내 체류 외국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발 빠르게 진행돼 왔던 부분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마스크 보급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차별할 경우, 이는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외노협은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백서가 발간될 때, 공공 마스크 보급 과정에서 미등록 외국인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을 배제해 방역에 허점이 생기고 있는 부분을 하루빨리 시정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진정서 전문.

코로나19 마스크 공공 대책, 이주민 차별에 대한 진정

정부는 이주민 건강권을 보장하라!
공평 보급 천명한 정부, 외국인 차별이 웬 말이냐!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주민에게 공공 마스크 구매할 자격을 부여하라!
합리성은 없고 방역 사각지대만 양산하는 외국인 차별 철폐하라!

대한민국은 지난 2월 23일 자로 코로나19가 감염병 위기 경보 '경계' 단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될 정도로 환자가 급증했으나 외신들은 질서 있고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다. 최근 AFP통신에 따르면 한국은 사망률 0.77%로 전 세계 평균인 3.4%인 사망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를 △정보 공개 △대중 참여 △광범위한 검사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대응은 확진자의 사생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검사를 받게끔 도우며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고, 많이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증 총력 대응을 위해 지난 1월 28일(화)부터 영어·중국어·베트남어를 포함한 20개국 언어 지원이 가능하도록 외국인종합안내센터(1345)를 24시간 상시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더불어 코로나19가 아직 경계 단계이던 1월 31일, 법무부는 미등록 외국인이라도 보건소 등 공공 보건 의료 기관에서 코로나19 감염증 의심으로 검진받는 경우, 담당 공무원이 그 외국인의 신상정보를 알게 되더라도 출입국‧외국인관서에 통보할 의무가 면제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에 대한 민원이 신속히 해결되고, 현 사태가 조속히 안정화될 수 있도록 질병관리본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는 가운데 방역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더 나아가 법무부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체류 기간이 곧 만료되는 등록 외국인(외국 국적 동포 거소 신고자 포함) 13만 6000명의 체류 기간을 오는 4월 30일로 일괄 연장하기로 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여 지역사회 확산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민원인의 국내 체류 기간 연장을 위한 공공기관 방문을 최소화하여 감염병 확산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처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 방역 시스템에서 국내 체류 외국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발 빠르게 진행돼 왔던 부분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지역 불문하고 확산되면서 마스크 보급이 원활하지 않자 지난 5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간 꼼꼼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칭찬받던 부분과 달리 차별적인 외국인 정책으로 방역 시스템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급격하게 확산하기 전에는 이주민들이 마치 감염원인 것처럼 선제 대응을 하다가 정작 좀 더 철저한 방역이 필요한 시기에는 이주민을 배제하고 있어 이율배반적이다.

정부는 마스크 보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협력과 배려 속에서 공평한 보급, 보급 확대를 추진하여 마스크 수급을 빠른 시일 내 안정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유통의 전 과정을 사실상 100% 관리하여 '공평 보급'을 약속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1인 주 2매, 요일별 5부제, 중복 구매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마스크 생산 능력과 수요 간 격차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국민들에게는 합리적이고 상호 배려하는 소비를 당부했다. 문제는 정부가 공평 보급을 약속하고 합리적이고 상호 배려하는 소비를 당부했지만, 정작 구매 자격을 부여함에 있어서는 공평함을 찾을 수 없었고, 방역 사각지대를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는 데 있다.

정부가 최초 제시한 구매를 위한 본인 확인 방법에 따르면 내국인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또는 여권을 제시하면 구매가 가능하다. 반면, 외국인은 건강보험증과 외국인 등록증을 함께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비록 정부 발표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일 자로 건강보험증 없이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했으나 '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이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되지 않는 6개월 미만 체류 이주민이나 미등록자는 구매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사업자 등록 없이 영농 사실 확인만으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한 업체 소속 이주 노동자나 단기 방문자 등도 원천적으로 마스크 구매 자격에서 배제된다. 즉, 250만 명의 체류 외국인 중 미등록자 39만 명, 단기 체류자(C3)와 관광 통과(B2) 46만 명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다. 건강보험 의무 가입이 2021년까지 유예되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10만 유학생들 또한 공공 마스크 구매가 불가하다.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있더라도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방문 동거와 방문 취업자 30여만 명을 포함하면 현실적으로 체류 외국인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살 자격조차 없는 상황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선주민과 이주민, 취약 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 없는 대책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구매하러 다닐 시간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 코로나19 상황이 다국어로 전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등은 지역사회 방역에 구멍이 생길 여지를 키우고 있다. 방역 시스템은 한 사람의 동선조차 빠트리지 않고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 '마스크 보급이 원활치 않은데 외국인마저 챙겨야 하느냐'는 국민 정서를 핑계로 이주민을 배제시킨다면 방역에 허점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과도 거리가 멀다.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주민에게 공공 마스크 구매할 자격을 부여하라는 말이다. 차별 없는 공공 마스크 보급 정책이야말로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우리 사회가 인종 혐오와 차별을 없애고 성숙한 세계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체류 자격 혹은 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마스크 보급 대책은 최소 125만이 넘는 이주민을 배제시켜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신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만일 지금처럼 공공 마스크 보급에서 이주민을 차별할 경우, 세계가 한국의 대응을 평가할 때 비록 민주적이고 질서 있게 통제되었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은 인종차별국가라는 오명을 안겨줄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백서가 발간될 때, 공공 마스크 보급 과정에서 미등록 외국인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을 배제하여 방역에 허점이 생기고 있는 부분을 하루빨리 시정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다.

이에 우리 사회 모든 종류의 차별에 항거하며 이주민 인권 증진을 위해 투쟁해 온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공공 마스크 보급에 있어서 이주민 건강권을 도외시한 정부 정책에 엄중 항의하며 차별 시정을 요구한다.

정부는 이주민 건강권을 보장하라!
공공 마스크 보급에서 체류 자격과 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공평 보급 천명한 정부, 외국인 차별이 웬 말이냐!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주민에게 공공 마스크 구매할 자격을 부여하라!
합리성은 없고 방역 사각지대만 양산하는 외국인 차별 철폐하라!

2020년 3월 12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희망의친구들,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성공회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의정부EXODUS, (사)함께 하는 공동체,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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