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모교회는 무리한 건축으로 교인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는 두 집단으로 나뉘었고, 분열의 중심에는 담임목사님이 있었다. 군대에 입대하기 몇 달 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군대에 입대한 후에는 대출이자도 못 갚는 형편이 되어 다른 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신학을 공부하던 나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였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정의 내리기 힘든 문제로 남아 있었다.

처음 미션디모데가 프랑스에 있는 교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겠냐"고 물은 나다나엘처럼, 우리에게 실패의 대명사인 유럽 교회에서 특별한 게 있을까 생각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라고 말한 것처럼, <미션디모데 -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는 나에게 "펴서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션디모데 -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 / 방선기, 신광은 지음 / 두란노 펴냄 / 332쪽 / 1만 7000원
<미션디모데 -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 / 방선기, 신광은 지음 / 두란노 펴냄 / 332쪽 / 1만 7000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션디모데'는 '공동체'다. 공동체가 아닌 교회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미션디모데가 보여 주는 공동체는 우리 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떤 신학이나 교단 정체성보다 '어떻게 공동체로 함께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미션디모데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구조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뤽 목사님의 답변이 잘 말해 준다.

"우리는 친구들이니까요. 친구들끼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250쪽)

미션디모데는 말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가족'이었다. 실제 미션디모데에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많다. 전 교인의 '사돈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션디모데의 친밀함은 단순한 혼인 관계나 혈연관계를 넘어선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아픔과 문제를 털어놓고 그것을 위해 중보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려 노력한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발견한 미션디모데 모습이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무엇을 하는 것인가. 보통 교회가 모이는 이유를 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예배'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미션디모데는 '섬김' 때문에 모이는 것 같다. 그들은 섬김을 위해 모이는 공동체이다. 어쩌면 미션디모데가 쉼터 사역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그네라 불리는 '아꺼이'(accuil)를 돕는 사역과 장애인 자활 학교 같은 사역, 교회 리모델링이나 건축, 수리 같은 일에 교인들 전부가 발 벗고 나선다는 점이 '섬김'이라는 단어를 더욱 부각시킨다.

미션디모데 대표목사 다니엘 이싸르트는 "공동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닙니다. 불우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56쪽)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웃을 섬기고 불우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미션디모데 공동체에 중요한 문제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미션디모데의 대표적 섬김 사역은 아꺼이를 위한 쉼터다. 그들은 마약중독자,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등 나그네를 위한 쉼터를 제공한다. 쉼터 사역에서도 미션디모데 공동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꺼이들을 한곳에 수용하고, 그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한다.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쉼터는 아꺼이들에게 공동체 자체를 선물한다.

아꺼이들은 쉼터에서 미션디모데 교인들과 섞여서 생활한다. 숙소를 공유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예배하며, 식사 준비나 정리 등의 일을 함께한다. 미션디모데 쉼터에서 아꺼이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내는 식구로 대우받는다(56쪽).

공동체로 함께 생활하는 것, 이것을 통해 아꺼이들은 치유된다. 모든 아꺼이들이 변화되고 회복되지는 않지만, 많은 이가 미션디모데 안에서 회복되었으며, 지금도 회복되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미션디모데 자체 신학교 포마시옹 과정을 거쳐 유급 집사, 곧 디아크르로 섬기고 있다.

아꺼이들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데 있다.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미션디모데는 아꺼이들의 실제적 필요를 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쉼터 사역은 식사를 제공하고 끝나는 이벤트성 사역이 아니다. 아꺼이들이 '한 사람'으로 온전히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섬김'만큼 '예배와 친교' 역시 중요하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예배하며, 친교를 나눈다. 그들의 예배는 지극히 단순하다. 찬양과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린 예배를 연상하게 한다. 예배 순서가 이렇게 단순한 이유는 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려 한다.

예배가 끝난 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옆 사람들과 얘기하며 교제를 이어 간다.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식당으로 향하고, 의무적으로 셀 모임을 하는 한국교회와 확연히 다르다. 친교 시간에 서슴없이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공동체에 약점을 노출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약점이나 문제를 나누면 교인들이 진심 어린 기도를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처럼 같은 말씀을 듣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자신들의 공동체성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미션디모데에는 한국교회 수련회와 비슷한 껑(Camp)이 있다. 이때는 프랑스 전역에 있는 미션디모데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한다. 개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친교가 미션디모데 전체와 공유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는 선교 단체에서 하는 연합 수련회에 참석할 때, 수련회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다. 밥 먹고 예배하고, 다시 밥 먹고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을 반복한다. 교회 자체 수련회를 해도 어떤 식으로든 일정이 정해져 있다.

껑의 일정은 이에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이다.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 외에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다. 식사와 친교가 일정의 거의 대부분이다. 말씀과 친교, 이 두 가지가 미션디모데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수련회 친교 시간에 하는 일은 개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뒤 하는 친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련회라고 해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친밀한 교제가 가능할까. 아마도 미션디모데가 하나의 교회,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생각이 교회 제도나 신학과 무관하다는 사실이다(182쪽).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일이 "좋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모여 교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린 시절 명절에 시골로 가서 친척 동생들과 논다는 생각에 설렜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이들도 오랜만에 교인들을 본다는 설렘으로 먼 거리를 이동할 것이다. 껑에서 예배와 친교를 통해 미션디모데는 하나의 교회가 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흩어진 미션디모데로서 예배와 친교를 이어 간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미션디모데는 사도행전 속 초대교회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교회라는 의미를 담은 책 부제는 과장이 아니다. 미션디모데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다. 이것이 그들이 공동체로 모이는 분명한 목적이다.

<미션디모데>는 미션디모데의 겉모습을 따라 하기보다는 영성을 배워 우리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여 주는 공동체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으며 눈길을 끌었던 점은 미션디모데가 지금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과정이다. 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려 놓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말씀에 순종하다 보니 이런 공동체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섬김·예배·친교라는 목적에 맞게 살다 보니 지금 같은 공동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미션디모데를 모방할 만한 하나의 모델로 접근하지 말라는 다니엘 이싸르트 목사 말은 그들이 청사진을 그려 놓고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미션디모데의 역사와 사역은, 그들이 지금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애쓰고 노력한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미션디모데라는 지금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심이 되는 그들의 신앙 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씀을 따르기 위해 모였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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