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놀라다

책을 보고 두 번 놀랐다. 먼저 책을 받아들자마자 표지를 가득 채운 황금색에 놀랐다. 기도로 나아가는 곳, 기도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이 황금색으로 가득 찬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기도와 지성소를 둘러싼 황금색의 절묘한 어울림이 나를 책 속으로 훅 잡아끌었다. 성전을 도배한 듯 황금처럼 빛나는 표지가 '햇빛보다 더 밝은 그분'께로 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평소에 표지 디자인보다는 제목과 차례를 보고 책을 사는 편인데, 아마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다면 표지 때문에 책을 샀을 것 같다.

제목을 보고 두 번째 놀랐다. 지금까지 이토록 절박한 주기도문 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기도와 밥심이라니, 호기심이 확 일었다. 하지만 밥심과 기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는데, 책의 네 번째 간구 부분을 읽고 나서야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 알게 되었다. 한 끼 밥을 먹는 일에는 어마어마한 관계들이 얽혀 있다. 대추 한 알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담겨 있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밥 한 그릇'에 내 삶의 존재가 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고, '밥 한 그릇'에 내 삶의 주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자, 매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실재를 말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곧 밥심이다. 김훈 선생 말처럼 "한 끼를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밥심은 평생 필요하다.

특별히 이 책에는 저자의 이전 책들에서 느꼈던 예언자적 외침뿐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온화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저는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과거에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보는 것 같습니다."(183쪽) 기회가 된다면 나도 대형 마트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고 싶다.

<밥심으로 사는 나라 - 기도와 삶의 부흥을 이끄는 주기도 강해> / 박영돈 지음 / IVP 펴냄 / 304쪽 / 1만 4000원
<밥심으로 사는 나라 - 기도와 삶의 부흥을 이끄는 주기도 강해> / 박영돈 지음 / IVP 펴냄 / 304쪽 / 1만 4000원

하나님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십계명은 우리가 순종할 내용이고, 사도신경은 믿어야 할 내용이고, 주기도문은 우리가 갈망할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영돈 교수는 주기도문으로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갈망할 내용뿐 아니라, 우리가 행할 순종과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여섯 간구를 세 개씩 나누어 첫 번째 간구부터 세 번째 간구까지는 '당신 청원'으로, 네 번째 간구부터 여섯 번째 간구까지는 '우리 청원'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에서 '당신 청원'은 '우리 청원'으로 나타나야 한다. 즉, 기도는 내 소원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 성취다. 또한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노니는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동시에 우리에게 하나님과 교제해서 연합하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을 다스리는 동역자가 되게 한다.

"기도는 그 춤에 끼어들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손잡고 신명 나게 한판 춤을 추며 노는 것입니다."(163쪽)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며 춤추시는 삼위 하나님의 춤판에 끼어든다. "역사 속에 세상의 핍박을 이긴 교회는 많아도 세속적 번영의 유혹을 극복한 교회는 없습니다. (중략) 한국교회가 그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153쪽) 저자가 통탄하듯 우리 또한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통치를 거부하는 사단과 싸우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려는 나 자신의 욕망과 싸워야 한다.

기도의 회심 요구하는
강력한 도전장

저자는 기도에 관한 책이 넘치는데 또 하나의 책을 더하는 일이 필요할지 망설인다. 그러나 기복주의 나부랭이가 날아다니며 한국교회 교인들의 기도를 혼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저자의 망설임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일 뿐이다. 그는 기도의 회심을 요구하는 강력한 폭탄을 던지며 "자아의 왕국이 폭삭 망하길"(276쪽) 바라는 확신으로 담대하게 선언한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우상이다!' 저자는 기도에 관한 책을 하나 더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바로잡고 있다. 이 책은 또 하나의 기도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기도의 내용과 방향이 달라진다. 기도의 불이 꺼진 이들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는 내 욕구로 충만한 간구에 사로잡혀 기도할 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아버지'라는 이름에 사로잡혀 기도하도록 한다. '아버지'가 기도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아버지를 부르는 기도, 계시에 응답하는 기도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기도의 과제'가 아니라 '기도의 교제'로 우리를 이끈다.

사실, 한국교회는 기도와 십일조를 무척이나 강조한다. 저자는 그 강조의 핵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확히 제시한다. 즉, 기도로 무엇인가를 쟁취하고픈 '소유욕'을 씻어 내고, 그 나라에 든든하게 뿌리내린 우리의 '소속감'을 강화시켜 기도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계시하신 '아버지'와 통치 영역인 '하늘'을 구함으로 우리가 하는 기도의 소프트웨어, 즉 내용을 교체하도록 이끈다.

기복신앙 혹은 번영신앙은 기도의 방향과 기도의 대상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하나님나라가 아닌,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기복신앙은 곧 우상숭배라고 질타한다. 나는 오래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던 중, 기도해도 낫지 않음을 일찍 깨닫고 기도를 멈추었다. 내 욕구로 가득 찬 기도에 실망하며 기도를 잃어버렸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기도의 능력'이 아닌 '기도의 내용' 그리고 '삶의 방향'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모호한 기도, 자신도 모르게 늘 자신의 것만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무언가 답답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기도의 부요함을 느끼고, 마음의 시원함을 얻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기도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위로를 준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자체는 정말 보잘것없습니다. 기도하다가도 잡생각에 빠져 졸다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하찮은 기도마저 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는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우리가 그분의 존귀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164~165쪽) 무조건 아멘이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165쪽)라고 묻는 저자에게, '당연히 하나님이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

내 삶에 밥이 되시는 아빠

책을 읽다가, "하나님 그립습니다. 하나님 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고 엎드려 엉엉 울었다. 나 같은 죄인의 말을 듣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빈말 같은 내 기도를 듣고도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니 기도하다가 졸지언정 기도하러 가게 된다.

'밥 한 그릇'에 내 삶의 존재가 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고, '밥 한 그릇'에 내 삶의 주인이 나타나신다. 그분이 내 기도의 대상이자 내용이 되신다. 나는 오늘도 그러한 아빠를 만나러 간다. 아빠와 같이 길을 걷는다.

김병년 / 아내를 지키는 간병인,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 작은 교회의 목사, '공 잘 차는' 아저씨.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며 고통 가운데서도 즐겁게 사는 법을 체득한 그는 "예수 잘 믿는 목사"라는 평생 꿈을 갖고, 공릉동에 있는 다드림교회를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난 당신이 좋아>·<바람 불어도 좋아>(IVP),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비아토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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