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현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수긍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분노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여러 재난으로 오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신명기 28장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불순종할 때 여러 자연 재난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해서 포로로 끌려갈 때 이사야·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 메시지를 보면, 자연재해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형벌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수르 수도 니느웨에 대한 자연재해 심판도 명확합니다. 가장 확실히는 노아의방주 사건도 들 수 있습니다. 죄짓고 회개하지 않는 인류를 향한 심판을 홍수라는 거대한 자연재해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너무 쉽게 다른 사람 행동에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는 것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는 가장 큰 오류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 심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분만이 가장 정확하게 보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사람이 18명이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대가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 13:4)."

다른 사람을 과감하게 정죄하고 혐오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 우리 중 누가 나은지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욥이 재난으로 자식들과 재산을 다 잃고 중병까지 얻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알고 있었고, 사람들도 "거봐, 하나님이 그러신다고 했는데, 그런 걸 보니 넌 죄를 지었어.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이 아닌, 가장 절친한 친구 세 명이었습니다. 신앙이 투철하고 영적 신비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평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옳지 않았다'고 평가하십니다. 욥기에 나타나는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인간들이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늘을 다 아는 체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땅에서의 제대로 된 삶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서로 사랑하라고 할 때 사랑해야 할 대상에는 장차 배신하고 죽게 될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고, 예수님을 저주하며 거부할 베드로도 속해 있었습니다. 온전하고 정결하고 죄 없는 대상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 모두가 서로에게 사랑할 것을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간절히 요청이 나타납니다. 나 자신보다 남에 대한 죄만 보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도 하지 않으신 정죄를 함부로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한탄하셨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자칭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남들을 정죄하기에 바빴던 바리새인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이었고, 대제사장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들이기도 했습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대상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룩하게 '주여, 주여' 하며 꽤 괜찮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섬뜩한 경고를 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너를 모른다…."

우한에서 병이 발생했을 수 있고, 그곳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곳이 포함된 중국이 기독교에 악한 일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곳에 임한 재난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곳,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스템은 기독교를 박해한 것만큼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재난이 임하는 것에 대한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사랑 가운데 진행되는 우리 주변 모든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내 손에 돌 하나 드는 행위를 할 뿐입니다.

만약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경성해야 합니다. 그들을 향한 조소와 나와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우리 사회가 회개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사랑이 부족한 것은 없는지 찾아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실처럼 되지 않도록 겸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19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품으셨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나 자신부터의 처절한 회개가 먼저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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