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흑해 북쪽에 위치한 제노바의 무역 기지 카파에 전염된 흑사병은 불과 4년이 지나지 않아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유럽 인구는 2/3 정도로 줄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 약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흑사병은 새로운 질병이 아니었다. 6세기 유럽에도 기록이 남아 있고, 중국과 몽골에 걸쳐 나타난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14세기 유럽의 경우는 이전과 달랐다. 급속한 도시의 발달로 불어난 도시인구를 감당할 만한 위생 시설이 거의 없었다. 1000년 전 로마에 있었던 상하수도가 유럽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파리에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흑사병이 냄새로 전염된다고 생각했다. 몸속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를 뽑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코를 막고 병자의 살을 찢어 피를 내는 치료법은 병을 더욱 확산시켰고, 시술을 행하는 사람까지 감염되게 했다. 더러운 환경, 잘못된 지식 때문에 전 유럽은 공포에 휩싸여 갔다.

당시 유럽 문명을 주도했던 교회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답을 원했고 그들에겐 지식이 없었다. 결국 내놓은 해답은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 무엇인가 신을 노하게 했고, 그 벌로 역병이 시작된 것이라 말한 것이다. 물론 질병이나 환난을 신이 분노한 결과라고 보는 생각은 구약성서에도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앞으로 닥쳐올 환난이 하나님을 거역한 벌이라 말하곤 했지만, 그들은 환난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중세 교회는 신의 분노를 성서에서 가져왔지만, 예언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알맹이는 빼 버렸다. 그 알맹이에 자신의 죄가 아닌 이교도와 유대인들을 집어넣었다. 바야흐로 신의 분노를 빙자한 혐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유대인과 동성애자, 마녀가 흑사병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병의 고통으로 죽어 가는 자들은 그들을 저주했고, 그 가족들은 분노했다. 병의 원흉을 심판하기 위해 모인 기도회를 통해 병은 다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유럽 인구의 1/3이 죽어 갔다. 흑사병은 잠잠해졌지만 혐오라는 질병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유럽 사회를 휘감았다. 혐오에 물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좀 더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당시 병들었던 교회는 그렇게 또 다른 질병인 혐오를 키움으로 살아남았다.

지금 시대는 14세기 유럽이 아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바이러스로 발생한 질병에 대한 치료가 가능해졌다. 코로나19는 곧 치료법과 백신이 개발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혐오라는 전염병에는 백신이 없다. 한번 전염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이다. 코로나19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수록 여러 대형 교회에서 전파되는 메시지는 현 정권, 중국인과 중국 정부, 그리고 동성애를 향한 혐오로 얼룩질 것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보인다.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코로나19의 진원지와 전염 경로, 치료법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때, 혐오 발언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클릭과 광고에 목마른 언론과 유튜버들은 이를 퍼 나르기 바쁘다. 실로 자본주의사회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바로 혐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혐오를 내버려 두면 관념이 되고 관념을 방치하면 논리가 되고, 논리가 힘을 키우면 역사가 된다. 중세가 만든 혐오의 역사는 십자군 전쟁과 지긋지긋한 신교와 구교 간 전쟁의 뿌리가 되었다. 미국의 이라크전쟁과 테러리즘의 동력이 되어 왔다.

예수와 바울이 살았던 시대, 혐오는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였다. 노예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자유민들은 노예를 혐오했고, 노예들 스스로도 자신을 혐오했다. 노예의 노동력을 중요 동력으로 삼는 사회에서 혐오는 사회 안정을 위한 중요한 사상이다. 여성들과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니 받을 자격이 없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신분이 낮은 자들, 보잘것없는 가문의 자손들은 사회 활동에서 사람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침묵하고 자학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력을 꾸준해 생산했다. 그것을 받은 기득권자들은 더욱 날카로운 논리로 혐오를 퍼트렸다. 그러나 혐오가 지배하는 시대는 미래라는 희망을 상실한다. 종말론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로마의 시대가 끝나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여러 재앙과 질병, 전쟁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언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소재였다. 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종말론이 꽤나 설득력 있게 전파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혐오의 종말론이 강해질수록 사회는 변화를 멈추고 내세적 신앙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예수와 바울이 말한 것이 이러한 혐오의 종말론이었던가? 고통과 멸망 속에 몇몇 선택받은 순결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전했던가?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략)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새번역, 롬 8:19-22)."

바울과 초대 그리스도인들만큼 유대인을 혐오할 이유가 충분했던 사람들도 드물다. 실제로 바울은 옛 동료 유대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고, 결국 그들의 고발로 로마에 압송되어 목이 잘렸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이 유대인의 구원 계획을 확립하셨다고 확신한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롬 11:26)." 그런 바울의 눈에 피조물들이 당하는 고통은 새로운 구원의 날을 위한 해산의 고통이다. 이는 더 이상 희망도 미래도 없다는 혐오의 역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고통에 동참해서 예수가 말한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노예 혐오의 시대에 노예의 모습을 취한 예수(빌 2:7), 여성 혐오의 시대에 자신들을 그 노예의 파트너(그리스도의 신부)라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역사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거할 처소는 하나님나라에 없을 것이다. 혐오와 차별, 제국의 앞잡이 빌라도는 예수에게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요(요 18:33)?" 예수는 대답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요 18:36)." 그렇다. 예수의 나라는 혐오와 차별에 속한 곳이 아니다. 예수는 혐오와 수치의 십자가를 지고, 노예의 몸으로 죄인의 몸으로 처형되었다. 혐오를 혐오로, 폭력을 폭력으로 대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자들이 초대 기독교인들이었다. 우리는 예수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새번역, 요 18:36)."

예수의 나라에 혐오의 역사는 들어올 수 없다. 예수의 부하들이 싸워 물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수현 /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바울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화교회연구소, 기독연구원느헤미야 등에서 복음서와 현대 바울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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