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 / 마르틴 헹엘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192쪽 / 1만 4500원
<십자가 처형> / 마르틴 헹엘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192쪽 / 1만 4500원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과 23절에서 바울은 왜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거리끼거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을까. 초기 유대교와 헬레니즘 시대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독일의 역사신학자 마르틴 헹엘(Martin Hengel, 1926~2009)은 이 책에서 다양한 역사 자료를 근거로 고대의 십자가 처형이란 무엇이었으며, 유대 및 그리스와 로마 세계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치밀하게 추적해 위 질문에 실재적으로 답한다. 저자는 이 책에 펼쳐 놓은 자신의 연구가 "바울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제시하기 위한 '역사적 예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1982년 대한기독교서회가 같은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다.

"(중략) 곧 주전 3세기로부터 '십자가'(crux)는 하류 계층의 저속한 조롱거리로서 노예들과 매춘부들의 입술에서 발견되며, '교수대에 매달 놈'(furcifer), '십자가에 달 놈'(cruciarius)과 심지어 '형틀에 목을 매달 놈'(patibulatus)과도 비견된다. 이는 '양아치'(Galgenvogel), 내지는 '악당 새끼'(Galgenstrick)에 해당할 것이다. (중략) 이 끔찍한 단어는 로마의 귀족 계층 구성원들보다는 관청 노예나 외국인들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그리스 독자들도 '십자가의 말씀'을 좋게 보지는 않았고, 팔레스타인에 세워졌던 로마의 십자가들을 볼 수 있었던 유대인들-이들은 특히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는 저주의 말씀(신 21:23)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로마인이든, 다른 외국인이든, 어느 누구에게라도)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내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아들, 혹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불편하고 어리석은 주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1장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아들의 '어리석음'", 29쪽)

"'노예 형벌'(supplicium sevile)에 관한 이러한 기본적인 주제는 또한 빌립보서 2:6-11의 찬가를 더욱 분명하게 조명해 준다. 바울이 선교 과정에서 세웠던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과 특히 고대 시대의 빌립보서의 독자들은 이 찬가가 낭송될 때에 '자기를 비워 종(노예)의 형체를 가져'라는 어구와 첫 연의 논쟁적인 결말부('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십자가의 죽음이 노예들에 대한 형벌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십자가는 극도의 비천함과 수치와 고통을 상징했다. 따라서 '십자가의 죽음'은 '종(노예)의 형체를 가진 것'의 고통스러운 최후 결과를 뜻하며 찬가 시작부에 나타난바,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선재한 분이라는 신적 본성에 관한 묘사-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탁월한 찬양(하나님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와 가장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노예가 당하는 죽음으로 죽은 자는 만물의 주로 찬양을 받게 되었고 신의 칭호인 '주'(구약의 야훼를 가리키는 칭호 - 역주)를 수여받게 되었다." (8장 '노예 형벌', 129~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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