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27일)에 금식 기도처로 올라가신 목사님은 '내일을 여는 집'의 임승철 목사님이었습니다.

지난번 기장 목회자 워크숍에서 사순절 기간 중에 금식 기도처를 마련해서 함께 하자고 제안한 주인공이지요. 망루라는 표현으로 제안했지만, 그 표현은 용산의 비극을 떠올리게 되어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투쟁이라는 접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하는 신앙인 본래의 모습으로 다가가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기도회의 제목도 '생명의 강을 살리는…'으로 시작한 것이지요.

오후의 햇살을 등에 가득 안고 임 목사님은 기도 처소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맞은 새벽은 21일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아득하게 잊고 있었던 소리가 임 목사님을 깨웠습니다. 그것은 4시 새벽 기도를 알리기 위해 울리는 용진교회의 종소리였습니다.

도시에서 노숙자와 정신없이 씨름하다 달려온 임 목사님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친 그의 영혼을 다시 일깨운 것은 바로 그 새벽 종소리였습니다. 어릴 적 아득히 들려오던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영성을 키워 왔던 그 먼지 쌓인 마음이 다시 살아 왔다고 고백합니다.

임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었습니다. 그의 수필집이자 회고록인 <우리들의 하나님>에서 선생님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특히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 교회의 새벽 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이 없어 석유램프 불만 켜 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성의 뿌리는 바로 춥고 가난했던 시절의 소박한 모습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임 목사님은 바로 그런 깨달음으로 주일 새벽의 기도를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임 목사님이 오후가 되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서 묵상한 성경 구절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9절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이스라엘의 화려한 시절에 던져진 물음이었습니다. 야웨에 대한 신앙을 잊어버리고 물질의 신에 눈이 멀어 버렸던 사람들을 향해 창세기 기자는 묻습니다. '인간들아! 네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임 목사님은 바로 그 창세기의 물음은 오늘 우리들에게 던지는 물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요?' 물질의 신에 눈이 멀어 가고 있는 우리의 시대에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21일) 오후에는 지금교회 박재원 목사님과 신도들이 함께 왔습니다. 지금교회는 오후 예배를 아예 금식 기도 처소로 정하고 함께 온 것입니다.

같은 지역 교회가 아픔을 당할 때, 형제의 사랑으로 달려온 그들의 모습은 처음 교회의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개교회주의로 치달아 가고 있는 요즘, 자매와 형제의 아픔에 대해서 함께 연대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힘들지요. 주일 오후에 그렇게 금식 기도를 하는 목사님들과 지금교회, 그리고 용진교회 교우들이 함께 했습니다. 박재원 목사님이 묵상한 말씀은 갈라디아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갈 6:7-9)

박 목사님은 22일 오후에 기도 처소에서 내려와서 이 말씀을 읽고서 이렇게 말씀을 풀어 증언했습니다.

"땅은 정직합니다. 심은 그것을 그대로 싹을 내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지요. 사람만이 거짓을 심고 진실을 거두길 원하고, 사람만이 욕심을 심고 탐욕을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꽃피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조롱받는 분이 아니시라고, 심은 그것을 그대로 거두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부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너무나 무력감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최후의 수단이 있다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지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맞아서, 기장의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밭에다 심었으니까, 하나님이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로, 이 땅에 공평한 하나님의 세상으로 열매 맺는 그날까지 우리가 서로 지치지 않도록 격려하고 서로 손 맞잡고 맘을 모아서 힘껏 수고한다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선한 열매가 나타나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도록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밤도 북한강가 기도 처소에 세워진 아주 작은 텐트에는 아주 작은 불이 켜져 있습니다. 아주 작은 기도의 불빛이지만 그 불빛은 어둠을 밝혀내는 불길로 살아날 것입니다.

내일 아침(24일) 9시에는 900명의 전투 경찰이 송촌 지역에 온다고 합니다. 여자 경찰 200명에 남자 700명이 강제 측량을 위해서 투입된다고 합니다. 수십 명밖에 되지 않는 농민들은 아침을 대비해서 부산히 움직입니다. 목회자들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텐트에 불을 켜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내일을 맞이합니다.

김선구 / 용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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