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의 한 도시 써리시에 위치해 있는 것이 우리 밀알교회입니다. 정식 명칭은 Vancouver Milal Methodist Church 밴쿠버 밀알 감리교회 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교회입니다. 교인이 어린이들과 성인이 채 20명이 못됩니다. 소위 말하는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지요. 교회는 상가를 렌트하는 한국의 분위기가 아닌 현지 캐나다교회를 렌트해서 쓰고 있습니다. 상가를 렌트하기에는 법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를 빌려쓰고 있지만 그 교회에 지불해야 하는 렌트비도 우리 교회에서는 벅찬 형편입니다. 렌트비며, 관리비며 교회 유지비도 힘이 드는 형편입니다. 가난이라는게 "가난은 다만 조금은 때로 불편할 뿐이다"라는 어느 누군가의 멋진 말도 있지만, 다만 조금은 때때로 불편하기만 한 것만은 아닌 것이 가난인 것 같습니다. 때론 서럽고 때론 가슴에 피멍이 드는 것이 가난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러다 보니 목회를 하면서도 교회가 성장해야 하는데, 부흥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대형교회들은 맨날 문제만 생기고 지탄만 받고 우리 교회가 커지면 정말 하나님 일만 하고 사람들 앞에 칭찬받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몇번을 다짐하고 또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목사인 저와 성도들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교회는 언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될지 막막합니다. 정말 제가 보기에 아주 커보이는 100명이 모이는 다른 교회도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교회를 꾸려나가기도 힘들기에 선교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형편입니다.

그럼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같이 규모가 작은 교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는가? 도시빈민선교도, 불우이웃방문도, 해외선교도 본국선교도 뭐가 있어야 하지? 하는 엉뚱한 생각 말입니다.

정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10명 남짓되는 성인 교인들이지만, 저희 교회에는 좋은 재능을 가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곳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신 성도, 관현악을 전공하신 성도, 피아노를 전공하신 성도, 성악을 전공한 성도,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키는 성도. 교인수에 비해 정말 훌륭한 재능을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그래 이 달란트를 활용하자! 우리가 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못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밀알문화교실을 개설했습니다.

캐나다교회를 렌트해서 쓰는데 렌트시간도 딱 맞추어줘야 합니다. 1시부터 4시까지 그 이상을 쓰면 경고장이 날라오기도 합니다. 교회 사용도 계약대로 써야 합니다. 예배당과 친교실만 쓰기로 되어있기에 교실도 쓸 수가 없습니다.

문화교실은 주일 3시부터 4시까지 성악, 피아노, 성인영어, 학생영어, 어린이 영어, 클라리넷 연주, 이렇게 5반을 개설했는데 장소도 문제이고 시간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개설했습니다. 가르치는 교인들도 정말 열심히 가르치십니다. 장소문제도 지혜롭게 해결되었습니다. 미처 등록을 못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정말 주일에 몇 대의 차가 고작이었던 교회마당에 차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우리도 비록 없지만 이웃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저거 저거~~" 라고 말하지 않고 "좋은 일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슴 뿌듯해 있는데, 한켠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작아서 정말 교회 운영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 문화교실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되어야지 부흥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교실에 참석하는 사람들 보면 다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고 얌체처럼 이 시간만 와서 그냥 배울 것만 배우고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교인될 사람들도 아닌데 너무 고생스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오는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나 교인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괜히 돈 없애고 교인들끼리 친교할 시간까지 뺏겨가며 친교도 못하고 헛고생만 하는거 아니냐는 말도 들려 옵니다.

사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저희 교회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사업이지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기에 감당합니다. 문화교실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교회의 전도에 얼마나 많은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겠습니까마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바리새인이기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닐지언정 우리 앞에 놓여진 내 작은 십자가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우리가 남을 위해서 이 작은 일조차도 헌신할 수 없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흔들린다는 생각입니다.

교회에 등록해서 교인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화교실에 오는 분들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문화교실에 와서 배우기만 하고 교회는 등록을 안하는 분들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교우들도 있나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문화교실의 한 시간보다 더한 수천배의 가치를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주셨는데,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모른다고 외면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괜히 목사인 저는 힘이 빠집니다. '아니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희생은 그만두고라도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회의감조차 생겨버립니다.

'우리 교회도 정신차리고(?) 기업경영 마인드를 도입해서 교회 성장에 힘쓴 다음 교인이 최소 100명은 된 다음, 그 다음에 봉사를 하든지 헌신을 하든지 해볼까?'

'큰 교회 목사님들이 타락하고 어쩌고 해도 결국 그분들도 이런 구조적인 어쩔 수 없는 벽 때문이 아닌가? 그분들이 나쁠 것도 없지."

별 생각이 다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구조적인 벽 앞에 맞닥뜨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교회가 성장하면서 개인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구조적인 벽앞에 맞닥뜨립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 큰 파도와 같은 거대한 벽 앞에 그 십자가에 내 몸을 던져야겠습니까? 그저 세상은 변하지 않을 뿐이라며 긴 탄식과 한숨과 회한으로 멀리서 지켜보아야겠습니까? 아니면 그 벽 안에 안주하며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축복된 삶이라고 믿으며 살아야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문화교실이라는 이 귀중한 사역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어쩌면 희생에 익숙한 교인들보다는 익숙치 못한 목회자인 부족한 저에게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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