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야베스가 뭐야?"
"... ... ..."
"야고보, 베드로, 스바냔가?"

얼마 전 주말, 강남터미널 근처 대형 기독교 서점을 들렸을 때 신간서적 코너 앞에서 어느 정다운 모자(母子)가 나누는 이야기를 옆에서 훔쳐 들었다.

아직도 이 모자는 그 유명한 "야베스의 ..."를 모르는 모양이다. 구약성경 가운데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 단 한 번 소개된 야베스가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유명 인사로 등장한지도 꽤 되었다. "야베스의 ..."라는 책이 연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더니 이제 야베스의 이름이 붙은 유사(類似)서적까지 나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셀(cell)"에 관한 책이 기독교 서점가를 휩쓸었다. 책제목에 "셀"자를 붙이면 최소한 적자는 면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유행과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구역(區域)"조직을 그대로 갖고 있는 교회를 보면 왠지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왠만한 교회는 구역이란 단어를 모두 "셀"이요, "목장"이요, "순"이요, "사랑방", "다락방" 등으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꾼 것인지 내용까지 바꾼 것인지 그 속은 알 수 없으나, 요즘 교회 이름까지 튀게 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니 명칭을 놓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영이 살아있는", "열린", "물가에 심기운" 등 교회 이름까지 회화화(繪畵化)되어가고 있다. 그 안의 조직도 이름 같이 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내 집사람은 아직도 "구역"을 고집한다. 명칭만 바꾼다고 무슨 변화가 오느냐는 주장이다. 구역을 목장으로 이름을 바꾼지가 벌써 해를 거듭했는데도 옛날 구역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세포는 분열하면서 생성(生成)해가는데, 거대한 공룡처럼 하나의 교회로 군림하고 있으면서, 교회의 모든 조직을 "셀"로 바꾼 교회를 보면 내 집사람의 주장을 반박할 논리마저 희박해진다.

100년 이상 한국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정을 나누며 한국교회를 지탱해 오던 구역조직이 이렇게 유행 앞에서 폐기처분되고 있다. 온고지정(溫故之情)으로 새로운 유행에 투정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셀 목회가 혹시 교회 성장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아니, 애초 교회 성장 프로그램으로 셀 조직을 도입했다는 것이 솔직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셀 목회의 창시자임을 자처하는 어느 외국인은 그의 저서 서문에서 "셀 목회는 교회 성장 프로그램이 아님"을 분명히 선언하고도 본론에서는 셀 목회를 실시하였더니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더라고 일괄되게 주장하는 것을 보니, 교회 성장 문제를 앞에 놓고 초연할 수 있는 목회자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듯 싶다.

왜 셀(cell)인가? 세포는 분열하면서 생성하고, 분열하지 않으면 사멸한다. 심지어 암세포까지 놀라운 힘으로 분열한다. 전 세계 암 연구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암세포 가운데 "헬라 세포"(HeLa cell)라는 것이 있다. 50여 년 전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한 여인의 몸에서 암 검사를 하기 위해 떼어낸 암세포가 그 여인이 죽은 후에도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배양되어 전 세계에서 암세포의 샘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여인의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다면 그 여인과 함께 암세포는 사라졌을 것이다.

세포는 모체 밖에서도 환경과 조건만 맞으면 분열을 계속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분열하는 셀은 비록 분열을 하여도 교회 울타리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분열을 하고 성장을 해도 교회 울 안에서 하라는 말이다. 셀이라는 또 다른 울타리를 겹겹이 둘러치고 다른 셀과의 경쟁과 차별화를 오히려 부추긴다.  

미자립교회, 농어촌교회를 돕는다면서 멀리 이사 간 사람을 버스로 실어 나르면서 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상도의(商道義) 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 교회 안에서는 공동체와 셀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행되고 있다.  

오늘 신문 사회면 한 구석에 실린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의 부활절 메시지가 왠지 내 마음에 크게 와 닿는다.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공동체의 고귀한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동체의 이름을 내세운 한국교회 안의 또 다른 이기주의를 질타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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