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여태까지 나를 비방하는 기사만 썼다. 나를 수없이 비난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기사들에 대해 일일이 문제 제기하고, 고발하겠느냐. 그냥 감수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뉴스앤조이>가 나를 취재하려 하면 거부하고, 원고 청탁하면 거부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 서경석 목사. ⓒ뉴스앤조이 유연석

서경석 목사의 입을 빌려 정의한 서 목사와 <뉴스앤조이>와 관계다. 그런 이가 <뉴스앤조이>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재개발 문제 인터뷰라니까 용기를 내서 한다고 했다. 재개발 문제가 시급한데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으니까, <뉴스앤조이>는 좋아하는 언론은 아니지만 한번 만나 본다고 했다.

지금까지 외면했다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응하면서까지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서경석 목사가 공동대표로 있는 기독교사회책임은 재개발 지역 목회자들과 '재개발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집회'를 올해만 일곱 차례 열었다. 4월 8일 시청 앞 집회를 시작으로 서울역, 국회, 명동, 광화문 등지를 돌며 한 달에 한 번꼴로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길거리에 드러눕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집시법)'을 위반하는 불법도 일삼았다. 작년 촛불 시국 때 "아무리 옳더라도 불법 집회는 안 된다"던 서 목사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집회하는 이유를 들었다.

언론 보도를 위해서라면

재개발 정책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용산 참사라고 들었다. 용산 참사가 서경석 목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작년 초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면서 나는 한국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러시아 혁명 때 러시아 정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사회주의 혁명에 동조한 것처럼, 한국교회가 철거민의 고통을 외면했기 때문에 철거민들이 과격·폭력 시위를 일삼는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를 찾아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전철연의 과격·폭력 시위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동안 무관심했던 교회에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교회를 비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나부터 행동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개발 과정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재개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랬더니 재개발 과정에서 쫓겨난 김포 지역의 목사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속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당하는 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교회의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교회의 문제만을 제기하면 당국은 여러분들을 이해관계 당사자로만 보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러분을 돕는 이유는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철거민들 편에 서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니 여러분도 그런 자세로 임해 달라"고 했다. 그 목사들의 동의를 얻고 나서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집회 기사를 보니까 도로를 점거하던데, 불법 집회 아닌가.

맞다. 불법 집회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1차 집회에 700명, 2차 집회에 300명이 모였는데,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은 재개발 문제에 무관심하고, 진보 언론은 관심이 있지만 서경석 목사가 앞장서는 운동은 보도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든 생각이 우리가 법을 위반하면서 집회하고, 경찰에 체포당하면 보도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하기도 한다.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고 해서 일부러 법을 위반하여 체포당한다. 체포당할 때는 저항하지 않는다. 이런 시민 불복종운동을 불법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가 차도를 점거하고 도로에 눕는 행동이 불법이기는 하지만 과격·폭력 집회와는 다르다.

나는 과격·폭력 집회를 지적했지, 불법 집회가 무조건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과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 시절에도 가능한 합법적으로 활동했지만, 불법적인 활동도 했다. 이를테면 철거민들이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나앉을 때 경실련 회원들은 철거를 몸으로 막는 '공무 집행 방해'를 저질렀고, 이지문 중위 사건 때(1992년 현역 중위가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사건-편집자 주)는 군사기밀 보호법을 위반했다.

▲ 광화문 네거리 도로에 드러누웠던 6월 5일 기습 집회 사진. (사진 제공 기독교사회책임)
6월 5일 기습 집회 때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드러누웠는데, 경찰은 우리를 안 잡아가고 강제 해산시켰다. 그 집회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래서 다음 집회에는 300명이 시청 앞 도로에 드러누우려고 했는데 폭우가 쏟아져 눕지 못하고 차선을 점거했다. 15분 뒤에 경찰이 와서 47명을 연행했다. 경찰에는 "몇 시에 어디서 집회하니까 우리 잡아가라"고 미리 말했다. 그러니 경찰이 "몇 명 잡아갈까요" 묻더라. 그래서 내가 목사로 잡아갈 사람 명단을 줬다. 나를 포함한 주동자 5명만 조사를 받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훈방 조치됐다.

10월에는 국회 앞에 1,500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보도가 되리라 생각했다. 합법 집회를 했는데 <국민일보>만 보도하고 다른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의 무관심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11월 집회 때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체인으로 몸을 감고 도로에 눕기로 했는데 경찰이 막아섰다. 그 기사는 <조선일보>에 났다. 그래서 12월 집회 전에는 아예 '체포당할 사람을 찾는다'는 홍보도 하고 집회에 나섰다. 체인으로 몸을 감고 도로에 누워서 10명이 체포됐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는 안 됐다. 

일부 사람들은 서 목사의 집회를 '쇼'라고 본다. 집회하다가 잡혀가서 금방 풀려나는 과정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들 법하다.

체포당하겠다고 결심하고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 체포를 각오하고 길거리에 눕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도 체포당할 때는 결심을 해야 한다. 만일 300명만 체포당할 수 있다면 잘못된 재개발 정책을 바꿀 수 있다.

나를 조회해 보면 도로교통법, 집시법 위반으로 재판 중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이미 벌금형도 받았다. 내가 유명 인사라고 봐주는 일은 없다. 그리고 누범이 되면 나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아질 것이다. 이것을 '쇼'라고 말해도 좋다. 나는 이 '쇼'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300명만 되었으면 좋겠다.

언론 보도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정책을 바꿀 수 없다. 지금의 재개발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언론에만 보도되면 틀림없이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 것이다. 그러면 정책은 반드시 바뀐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집회를 안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는 지식인들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지식인들 서명 받아서 성명 발표하면 언론의 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들의 서명도 받아 발표하려고 한다. 목사들은 벌써 4,000명 가까이 서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작은 교회 목사들이다. 서울의 큰 교회 목사들은 한 명도 서명하지 않았다.

대형 교회는 재개발을 바란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재개발 정책 개정 운동에 동참 안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형 교회는 재개발을 바란다. 재개발이 결정되면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말도 한다. 재개발 지역에 교회가 100개라면 90개 교회는 내쫓긴다. 조합에서 종교 부지는 이익이 안 되니 적게 배정한다. 이사 비용만 받은 임대 교회는 돈이 없어서 종교 부지를 구매할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쫓겨난다. 돈이 부족하기는 중형 교회도 마찬가지다. 대형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 종교 부지를 확보하고 새 건물을 짓는다. 100개 중 10개 교회만 남으니 사람들은 그 교회로 몰리고 대형 교회는 더욱 커진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대형 교회 출신이다 보니 재개발 정책 개정 촉구 운동에는 동참하지 않는다. 만약 서명하면 그 순간부터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커뮤니티에서 배제된다. 나는 이 재개발 문제를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소형 교회, 중형 교회 다 사라지고 대형 교회만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재개발법이 어떻게 바뀌기를 바라는가.

지금의 신도시·재개발 정책은 전체 주민의 85%를 내쫓는 정책이다. 오로지 개발 이익만으로 신도시를 세우려니 주민들에게 시세대로 보상하지 않고 시세의 50~60%만 보상한다. 그리고는 재입주하려면 보상가의 3~4배 정도의 돈을 내라고 하니 아무도 재입주할 수 없다. 가난해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고통과 원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번에 숭례문에 불을 지른 사람도 이렇게 내쫓긴 주민이었다.

해결책은 다른 선진국처럼 '도시 재생형 재개발'을 하는 것이다. '도시 재생형 재개발'이란 지역 원주민의 재정착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개발을 말한다. 원주민이 최소 70%는 재정착해야 한다. 그리고 건물도 아파트만 짓지 않고 임대 주택·다가구도 짓고 일부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린다. 인간의 모습을 한 재개발을 하는 것이다. 재개발 후에도 임대 교회도 있고 가난한 주민도 있어야 한다. 이미 모든 선진국이 이 방식으로 재개발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못하란 법은 없다.

절대로 무리한 주장 아니다. 역대 정부가 진작 신도시·재개발 제도를 고쳤어야 했다. 그런데 서민 정부를 자처했던 노무현 정부조차도 이 잘못된 제도를 고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현 정부에까지 왔다.

MB 정부의 대표적 정책이 개발 정책인데 재개발 정책 개정이 가능하다고 보나.

그렇다. 나는 올해 봄에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본다. MB 정부가 친(親)서민 정책을 하겠다고 했고, 선진국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재개발 정책 개정은 정부 성향과는 무관하다. 서민 정부라는 노무현 정부 때 서민에게 불리하게 개악된 제도도 많다. 특히 농민 보상 문제는 노무현 정부 때 보상가가 아주 적어졌다. 재개발 문제에 구태여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성격을 연결시킬 이유가 없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등록금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는가.

용산 참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고민 안 하는 진보 진영

지금까지 대형 교회와 임대 교회의 입장을 대비시켜 설명했는데, 용산의 경우 한 교회 안에 철거민과 조합장이 함께 있었다. 교회 안에서 재개발을 바라보는 부자 교인과 빈자 교인의 갈등 문제도 심각하다. 또 교회는 유가족을 위한 위로 예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미세한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보상 문제보다는 재개발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을 들고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근본 대책에는 눈을 감고 보상 문제만 들고 나왔다. 참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보상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다. 진보 진영은 어떻게 하면 MB 정부에게 타격을 주나만 생각하지 재개발을 당해 쫓겨나는 철거민의 문제를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 서 목사는 "진보 진영이 재개발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이 아닌 보상 문제만 거론하는 것은 MB 정부에게 타격을 주려는 게 목적"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사진은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진보 진영 인사들이 기자회견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백정훈

이미 피해를 입은 철거민들은 어떻게 하나.

우선 정부가 모든 재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재개발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원주민 2/3 이상이 재정착할 수 있는 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재개발을 못 하게 해야 한다.

용산 참사가 서 목사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는데, 유가족들을 방문한 적은 있나.

방문한 적은 없다. 내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길은 방문도 좋지만 그보다 재개발 정책의 변경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개발 정책이 개정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는가.

전문가들은 개정이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제도 개혁에 성공한 경험이 많다. 사회운동에서 승리하려면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 하나는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언론이 이 문제를 크게 보도해서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고 신념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제도는 반드시 고쳐진다. 나는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조선족 정책을 다 바꾸어 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재개발 정책 개정은 너무도 타당하며 누가 보아도 옳은 일이다. 다만 문제는 언론의 벽을 뚫지 못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가 무르익을 대로 익었으니 언론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교회가 반드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앞장서서 재개발 정책을 바꾸면 우리 국민들은 교회에 너무도 고마워할 것이다. 내가 이 문제 해결을 교회가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개발 정책 개정의 성과를 한국교회가 취하기 바란다. 한국교회가 1%의 부자를 위한 종교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종교라는 점을 우리 사회에 각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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