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김승범

'가난한 신입생 등록금 모금, 교수들이 나섰다.'

1998년 12월 한 일간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 합격생 10명 중 7명이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자 교수들이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는 이에게 재교육의 기회를 주자"며 모금운동을 벌였던 것. 그해 6월에는 또 IMF 이후 늘어난 휴학생들을 돕기 위해 교수와 직원들이 1억원의 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다른 대학에 비해 급여 수준도 낮은 성공회대 교수들은 연말 상여금에서 100만원씩을 갹출했던 것이다. 누가 실직자의 자녀인지 알 수 없으니 실직증명서라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스승이 제자를 믿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며 단서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아름다운 스승은 아름다운 삶을 산다'고 믿는다. 학문이 실천과 동행하는 삶을 가진 스승을 그들은 '열린 지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스승들을 찾아 이른바 일류대 출신의 프리미엄조차 내던지고 모이는 학생들이 있다. 대안대학일까?

성공회대는 대안대학?

▲ⓒ뉴스앤조이 김승범

"어떤 사람들은 성공회대학교를 보고 대안대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대안대학이라는 명칭은 합당치 않다고 본다. 오히려 성공회대는 '비정상'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정상'의 섬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성공회대에는 학교 간판이 아니라 교수를 찾아서 지원한 학생들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현상은 일면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기 때문이다."(김동춘 교수·사회학)

그들은 지금 '성공회대 학파'의 형성을 지향한다. '성공회대 학파'는 "진보적인 이론과 관점을 중시하고 인권과 평화를 기본적 가치로 놓으면서 사회봉사, 우리 문화 전통의 이해 등을 강조한다"(신영복 교수, 경제학). 우리 사회 담론계의 '프론티어'로 불리는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들, 그들이 포진한 자리가 성공회대라는 점에서 붙여진 '성공회대 학파'라는 이름은 이제 무시 못할 '비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투옥된 바 있는 신영복 교수(경제학·동양철학)는 '성공회대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다. 또 사회학 쪽으로는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를 만든 주역인 조희연 교수(비판사회학·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역시 참여연대 집행위원으로 일하는 김동춘 교수(계급계층론), 김진업 교수(마르크스연구), 이종구 교수(비판적 정보사회학), 소수자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박경태 교수(인종 문제) 등이 포진하고 있다.

언론학 쪽에 있어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든 김창남 교수(비판언론학) 김용호 교수(문명비평) 민주교수협의회 총무간사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을 한 김서중 교수 등이 있으며, 신학 분야에서는 민중신학자 손규태 교수와 권진관·최영실 교수 등을 비롯해 신약학자 정양모 신부, 교회사학자 이정구 신부, 성서해석학자 양권석 신부, 구약학자 김은규 신부 등이 있다.

이밖에 사회복지학 분야에서는 <월간 복지동향> 편집인인 이영환 교수, 서울역 노숙자상담소장인 정원오 교수, 노인문제 전문가 이가옥 교수, 장애인 문제 전문가 김용득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또 교육학을 가르치며 대안학교운동을 처음 일으킨 고병헌 교수 역시 '성공회대 학파'의 빼놓을 수 없는 학자다.

그러나 사실 이들 대부분은 한때 지식인 사회에서 소외된 학자들이었다. 과거 군사독재 체제가 이단자로 분별했던 그들은 보수적인 파벌 구조에 지배된 기성 학계로부터 결코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이 성공회대로 모여들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사람은 전 총장인 이재정 의원이다.

"우리는 다른 대학에서 임용하지 않는 분들을 모셔다 교수님으로 모신 셈이다. 진보를 현 상태에서의 변화·변혁 또는 새로운 전진이라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우리 시대에 새 천년을 맞으며 해야 할 일이 과거 50년간 누적되어 왔던 식민 통치의 잔재와 냉전 구조의 위력 또는 군사 독재에 의해 굴절된 역사, 이런 것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본다. 그럴 때 이 일은 역시 과거의 사회 구조나 이념에 대해 저항했던 사람들이 해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다."(이재정 의원)

이렇게 만들어진 '공포의 외인구단'이 성공회대 학파를 형성하는 성공회대의 '스승'들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실천의 흔적들, 곧 아름다운 삶이 있다. 학자로서의 앎이 사회의 진보를 위한 삶으로 나타난다. 이런 삶을 뭉뚱그린 말이 이른바 '운동 경력'이다. 그것은 운동권이라는 말 그 이상의 의미다. 김창남 교수에게 그것은 대학 때 노래동아리 '메아리' 활동을 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들며, 교수로서 그 운동을 심화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일이다. 운동을 자신의 삶으로 삼아 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교수생활 역시 소중한 이야기들을 물고 다닌다. 학교 느티나무 아래의 토론 모임은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다양한 의견들을 담을 수 있는 계기다. '개고기 논쟁'이 동물 학대에 대한 우려를 거쳐 여성·소수 민족에 이은 동물 해방 시대까지 나아갔던 이야기는 두고두고 오르내린다.

성공회대에서 원로 역할을 하는 사람은 김성수 총장을 비롯해 신영복 교수다. 고병헌 교수는 "마음으로 존중하는 원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밖에 나가서 스타일 구길 일이 생겨도 신영복 선생이 욕먹을까 봐 행동거지에 신경을 쓴다"라고 말한다. 교수들이 토론을 즐겼던 성공회대의 상징인 느티나무가 신축건물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아니 그럼 느티나무는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한 마디로 느티나무를 피해 건축 설계도면을 변경한 일 역시 원로가 있는 '성공회대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변방이 갖는 독특한 개성으로 '우뚝'

그들의 어울림은 지적 토론이나 운동의 연대에 머무르지 않는다. 성공회대 교수들의 연구실에는 대부분 운동복에다 축구화가 한 쪽에 놓여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그들이 편을 갈라 벌이는 축구 경기는 '빵축구'(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수인들의 축구) 못지 않게 치열하다. 연약한 '책상잡이'들이라고 생각해 축구 경기를 제안했다가 대패한 팀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결국 '성공회대 학파'는 이런 교수 공동체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신영복 교수는 성공회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개는 진보나 개혁이나 변혁이라는 것이 거의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학교가 규모라든가 여러 면에서 변방에 속하지만 변방이 갖는 고요한 열림 같은 것이 있다. 열려 있기 때문에 바라볼 수 있는 시각들도 있다. 이제 우리 학교만의 우수하고 독특한 인적 자원이 지닌 것들을 이론화하고 새롭게 정립해냄으로써 '성공회대 학파'의 결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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