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공회대인가, 그렇게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유난히 주목하고 조명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뉴스앤조이 김승범

"대학교와 재벌들이 공동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오너'의 전횡 가능성과 매우 비효율적인 상명하달식 결정 과정, '오너'의 허영심과 관료조직 논리에 입각한 무제한적인 '확장을 위한 확장'의 논리, 인사 관리 등 내부 정책의 불투명성, 하급 근무자에 대한 착취적인 태도 등이다. 사립재단들이 국회의원을 매수하고 사주하여 교육부 등 해당 관청에 로비를 벌이는 광경을 보면, 재벌 총수들이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건네는 일과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은 병원의 건립으로 한 대학교의 재정을 고갈하게 하는 일은 삼성자동차의 과잉 투자와 똑같은 비효율적 투자의 전형이다. 재벌 조직 내의 승진 결정이나 사립대학교의 신규 교수 임용·교직원 재임용 결정들은 개인적인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공통점이다."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가 본 한국의 대학 풍경은 이렇게 어둡고 침침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실험해야 할 대학이 사회의 가장 깊숙한 치부를 공유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3월, 대학이 봄을 맞고 봄을 여는 이 시각, 우리가 다시 성공회대학교를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서울의 변두리 항동, 번듯한 고등학교보다 좁은 캠퍼스, 2천명도 안 되는 학생 수, '일류 대학'의 리스트에 오른 적도 없는 '주변 대학'인 성공회대학교. 그러나 2002년의 새 봄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열린 교문을 들어섰다.

자유의 향기를 맛볼 수 있는 땅

▲ⓒ뉴스앤조이 김승범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는 성공회대학교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성공회대학교를 '자유의 향기'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공부는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어느 길을 어떻게 걸어야 진리를 만날 수 있는지 선험적으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데서는 어떤 성역이나 금기도 있을 수 없으며, 공부하는 이의 자유와 상상력에 대한 속박이 있어서도 안 된다. 나는 이런 점에서 성공회대학교를 좋아한다. 비록 교정은 좁고 사람은 적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어느 대학에서보다 짙은 자유의 향기를 맛볼 수 있다."

성공회대학교에는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권위주의도 찾지 못한다. '열림'을 첫 이념으로 꼽는 이유도 자유를 향한 그들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신학대학으로 출발했지만 처음부터 신학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한학과 동양 사상도 가르친 사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학 가운데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은 최초의 학교라는 점, 대한성공회란 교단의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지만 철저히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가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점, 그래서 신학교조차 장로교·감리교 목사는 물론 천주교 신부와 희랍정교회 소속 교수들까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이 '열림'을 꿈꾸는 성공회대학교의 실천을 잘 설명한다.

전 총장인 이재정 신부(국회의원)는 '열림'의 의미를 "교조주의나 근본주의에 매이지 않고 좀더 역사와 인간과 사회를 향해 열려 있고자 한 신앙적 배경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인문 사회적인 배경에서는 학문의 자유, 학문이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 또는 더 나아가 이념적 자유까지도 내다보는 열림이다"라고 설명한다.

사제 관계를 왜곡시키는 교수의 권위주의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교수 식당이 따로 없는 것은 물론 총장실을 비롯한 모든 교수들의 방은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김성수 총장의 너털웃음이고 튀게 학생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김 총장이 총장으로 취임한 뒤 학생들을 처음 맞은 곳은 집무실이 아니라 학교 교문이었다. 사랑이라는 꽃말을 의식해 빨간 장미 한 송이씩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비록 작은 꽃 한 송이지만 학생들에 대한 애정의 표시였다"라고 그는 고백했다. 따뜻한 인간애가 바탕이 되지 않은 어떤 학문도, 진보도, 경쟁도 무의미하다는 표현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었다.

▲졸업식날 김성수 총장이 환하게 웃으며 졸업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김 총장의 주머니가 늘 비어 있다는 것을 성공회대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김 총장은 연극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가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관람한다. 음악 동아리 회원들과는 양희은 콘서트를 찾기도 했다. 자취생들에게는 1주일에 한 차례 점심을 사주고, 생일을 맞은 학생들에게는 한 달에 한번 생일 잔치도 열어준다. 군에 입대한 성공회대 학생을 직접 찾아가 면회하기도 한다. 이렇게 튀는 학생에 대한 사랑 표현은 법인카드에는 손도 대지 않고, 김 총장의 월급만으로 마련된다. 그래서 그는 '적자 총장'으로 통한다.

약자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꾸다

▲성공회대 교정 ⓒ뉴스앤조이 김승범
"나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대학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지는 대학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신념은 매우 귀한 것이다. 신념이 현실을 변화시킨다. 그래야 우리는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희망의 씨앗처럼 보였다."

한명숙 여성부장관이 본 성공회대학교의 모습이다. 개인주의적 태도보다 공동체적 연대를 중시하는 그들의 얼굴이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아닌 더불어 살 줄 아는 열 사람의 동반자를 길러내겠다는 교육목표 또한 성공회대의 토양이 된다.

양심수의 삶과 경험을 대학 강단으로 올리고, 양심수의 자녀와 5·18 유공자의 자녀들을 특별 전형으로 모집해 사회적 보상을 실천하며, 미션스쿨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를 강단에 세우고, 노동자들에게 학교를 개방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교수 임용에서 운동이나 투옥 경력이 오히려 우대 사항으로 작용하는 대학…. 성공회대학교의 더불어 사는 열 사람의 평민 만들기 노력은 학교 운영 곳곳에서 끝도 없이 드러난다.

성공회대가 꿈꾸는 시민사회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압제자와 피압제자 같은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구도를 깨고 합리적인 대안과 파트너십, 동반자적인 관계와 상호보완적인 역할들이 강조되는 사회다.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는 이런 시민사회를 일구어 가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모든 대학이 첨단 이공계 계열 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때 성공회대는 NGO학과를 개설했다. 첨단 기술 사회와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할 시민사회의 중요성까지 내다본 까닭이다.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안에 신설된 NGO학과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시민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피케팅 기술 △대자보·구호 작성법 등을 가르치는 집회와 시위 방법론까지 포함되며, 시민운동단체들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까지 학점으로 인정된다. NGO 특화 대학으로서 성공회대는 다양한 관련 자료를 구비한 '사이버 NGO자료관'(http://demos.sknu,ac.kr)을 개설하는 한편 이들을 한 공간에 모은 도서관까지 열 계획이다. 지난해 학생의 날에 맞추어 성공회대는 수학·과학 올림피아드가 아닌 'NGO올림피아드'를 열어, 청소년들의 사회참여 능력을 높이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도 '성공회대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 계기였다.

스승이 많아 부러운 대학

▲ⓒ뉴스앤조이 김승범

"지금도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가장 아쉬운 점은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이긴 했지만, 그런 나를 꾸짖어주시고 인생이나 학문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기 위해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면 내 삶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그런 아쉬움으로 스승이 많은 성공회대에 감탄한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뵙는 훌륭하신 스승들이 미리 약속이나 하신 듯이 성공회대학에 모여 계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내 아이를 아껴서 좋은 아주머니나 놀이방 선생님을 찾아다니듯, 선생님들을 그렇게 인선하는 성공회대라면 학생들은 얼마나 더 아낄까….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아직 삶의 무게가 다 지워지지 않고 가치관이 다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저런 선생님들 밑에서 마음껏 읽고 공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공회대의 '스승'들은 결코 군대의 상급자도, 직장의 상사도 아니다. 그들은 학생 편에 서 있기를 즐긴다.

"곧 있을 총학생회장 선거를 위해 학보사와 교내 방송국에서 후보를 모시고 정책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이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 남을 설득하는 것, 모두 교육학의 주요 주제이므로 내 강의와 무관한 행사가 아니다." 교육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이렇게 수업 시간을 학생들의 학교 생활에까지 열어준다. 교수들은 수업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며 그 내용을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고, 교정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함께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초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로 불거진 여러 이야기들은 성공회대 '스승'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교수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등록금 인상률 조정 문제를 결코 학생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대학들이 학생들과 이런 협상 과정을 밟는데 성공회대학은 거부한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교수들은 학생들과 학교가 인상률 조정안을 내놓고 밀고 당기며 협상하는 과정을 보면 마치 학교가 학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고, 이러다 보면 결국 학생과 학교의 신뢰 관계는 깨진다는 이유로 끝까지 원칙을 지켰다.

등록금 인상 협상에 학생 배제…신뢰 지키려

그러면서 교수들은 또 하나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양심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의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까지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교수들의 봉급을 깎아서 등록금 인상률을 내려보겠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런 진심이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예산 집행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집행 과정에서도 학생들이 참여하는 선에서 그들은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성공회대인가, 그렇게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유난히 주목하고 조명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나 성공회대는 이 새봄, 다시 개강을 서두르며 분주한 대학가와 사회를 향해 진지하게 되묻는다. 바른 세상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함께 행복한 세상은 과연 올 것인지, 대학은 무얼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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