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인간이 결단하는 자리
김 목사는 기존 신학이 성서에서 하나님이나 예수가 가진 위격·존재·속성 등을 보려 했다면, 민중신학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해방 사건, 예수께서 일으키신 구원 사건 등 생동하는 기쁜 소식(복음)을 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학자들은 민중신학에 대해 '종교적 거룩함이 없다'고도 말하지만, 김 목사는 "안병무의 글에는 종교적 체험을 중시하는 '지성소'라는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며 반론을 펼쳤다.
지성소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고 종교적인 결단을 하는 자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모세가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모세는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 해방의 역사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결단을 했다. 이것이 모세의 지성소다. 이처럼 지성소란 공간적인 장소를 넘어 영과 진리가 현존하는 곳과 때, 그리고 인간이 전 존재를 걸고 참여하는 사건을 말한다.
그래서 안병무는 사람들이 사회운동을 하다가 변색하는 이유를 '지성소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른바 사회참여, 정의, 인권을 내세우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문제가 있다. 그들은 사회 현상과 사회과학적인 관찰로만 알고 배우려 한다. 우리는 모세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한다. 내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하는 엄숙한 장소, 때, 어느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고, 침범할 수도 없는 지고의 자리. 이런 절대의 경지를 경험해야 상대적인 것에 빠지지 않는다." (안병무, '제가 무엇인데 감히' - 수도교회 30주년 기념 예배, 1984)
교회란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
민중신학의 교회론 역시 '사건', '현장'이라는 시각에서 시작한다. 안병무는 교회를 '제도'나 '조직'으로 보지 않았다.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 예수와 민중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김 목사는 "교회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보다는 예수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회가 지금 일어나는 예수 사건의 증언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며, 그 예로 매주 목요일 가장 고난받는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촛불교회)'을 언급했다. 촛불교회의 창립 선언문에는 "초대교회의 출발점 역시 '예수와 민중이 만나는 현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 현장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단지 조직된 교회로 자신들의 안락한 예배 공간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이들은 하나님 없는 예배와 우상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민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러 들판으로 현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민중을 위한 교회'보다는 민중의 삶으로 들어가는 '민중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선교는 교회가 가진 돈을 나누어 주는 '자선적 선교', '시혜적 선교'보다는 법과 제도 등을 바꾸는 '해방적 선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학은 오늘 일어나는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야 하고, 신앙고백은 사건 속에 자기를 밀어 넣는 것으로 개인이 예수 사건에 참여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내가 설명한 교회론이 현실의 교회와는 거리가 멀어 다소 급진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향린교회, 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로 이어지는 나의 목회 경험과 '예수살기', '촛불교회' 등의 기독교 사회운동 경험 등으로 실현하고 있는 이야기다"라며 어떤 명제를 토대로 세운 이론적인 구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강의를 마치며 청중에게 말했다.
"지금은 새로운 교회의 출현 없이는 기독교가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안병무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새로운 신학은 오늘의 교회가 새롭게 설 수 있는 그루터기이며 우리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