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자 <한겨레21>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한겨레21>이 의욕적으로 신설한 [성역깨기] 첫 번째 '죄 안 되는 폭력은 없다, 교회도 - 목회자 권위 악용한 교회 내 성폭력 위험수위 … 팔짱끼고 있는 교단부터 깨어나야'라는 기사를 읽고 였다.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냐고? 천만에. 사건의 주인공(<한겨레21>이 김성희 권사라는 가명으로 소개한 그 피해자 때문이었다. 김 권사는 올해 3월초부터 기자가 몇 차례 만난 취재원이었다.

어느날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의 여자였다. 목사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자를 바꿔주려 했다. 그런데 기자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한 마디, "가해자가 ㅅ노회 노회장"이라는 말이었다. ㅅ노회는 예장합동 교단 소속으로 서울지역에 있는 노회다. 정치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노회 아닌가. 그 노회 노회장이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라니.

일단은 만나자고 했다.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 권사를 만났다. 사건의 내용은 대부분 <한겨레21>에 난 거의 그대로였다. 김 권사는 이미 민·형사 고소를 한 상태였고, 가해자는 검찰에 불구속 기소가 되어 있었다. 김 권사의 얘기를 들은 뒤 주일날 성동구에 있는 ㅊ교회를 찾아갔다. 예배에 참석한 뒤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임 아무개 목사를 만났다.

임 목사는 대부분의 혐의 내용을 부인했다. 다만 김 권사의 휴대폰에 "권사님 사랑합니다. 보고싶습니다"라는 음성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만은 시인했다. 그러나 "그것은 김 권사가 하도 원해서 할 수 없이 해줬으며, 에로스적인 표현이 아니라 아가페적인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임 목사는 한 마디 덧붙였다. "김 기자가 이 사건을 다루면 안 된다. 서 아무개 목사와 의논했다. 서 목사는 별 문제 안된다고 했다. OO신문이 어려워진다." 염려인지 공갈인지, 염려를 가장한 공갈인 것 같다.

서 아무개 목사는 ㅅ노회의 실세요, 총회에서도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정치목사였다. 교회 안에서 해결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것은 서 아무개 목사가 끼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 목사는 처음에는 사건 내용을 시인하고 교회를 떠날 생각이었다. 김 권사도 그 정도에서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임 목사가 서 목사를 만나 의논한 뒤 태도가 돌변했다. "목사는 남자 아니냐. 관계만 안 가졌으면 죄가 안 된다. 여기서 물러나면 목사들이 모두 힘들어진다"는 얘기에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김 권사와 그의 남편은 서 목사를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 목사는 오히려 김 권사를 행실이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부치고 노회 안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한다. 김 권사 내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셈이다. 김 권사는 임 목사보다 서 목사에 대한 분노가 더 심했다. "임 목사가 모든 것에 대해 잘못을 시인하고 교회를 떠났으면 더 이상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 실세들과 상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목사는 역시 목사 편일 수 밖에 없는가?" 김 권사는 이런 행태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기자는 김 권사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꼭 언론에 보도되고 폭로돼야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을 전했다. 어쩌면 기자로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 권사는 완강했다. 그의 분노는 목사세계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 김 권사의 분노를 과소평가하거나 축소시킬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아무튼 그 기사는 OO신문에 작게나마 다뤄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김 권사 사건은 기자의 의식 속에서 어느 정도 잊혀져 있었다. 그런데 급기야 <한겨레21>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것을 보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권사의 분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목사의 교인 성추행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노출되지도 않고 설사 노출된다 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성직자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꺼려 하지만, 설령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교권주의자들의 철저한 비호 속에서 피해자들만 상처를 안은 채 끝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뉴스앤조이>가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당대비평> 가을호에서 이진구 선생(서울대 종교학 강사)은 '개신교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글을 통해 성직자의 성추행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개신교 종교권력은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 신자의 70% 이상은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의 영역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파와 교단이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허용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들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유교사회에서 여성이 제사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역할만 하였듯이, 오늘날 교회의 여성신도들은 교회운영보다는 예배 후의 식사 준비와 설거지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교회 내의 성차별은 성폭력 사태까지 몰고 오고 있다. 요즈음 성폭력 상담소에 들어오는 사건 중에 남성 목회자에 의한 여신도 성추행 및 성폭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고 있다고 한다. '성(聖)스러운' 목회자가 종교적 권력을 이용하여 여성의 성(性)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내 성폭력은 '발생의 용이성과 처리의 난이성'으로 특징지어진다.

한 피해 여성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저는 완전히 목사에게 세뇌되어 목사를 예수님처럼 섬겼고, 당시 불받는다던 전도사는 목사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모는 목사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도 의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K 희생자의 '탄원서' 중에서)

성폭력 사태가 폭로되어 고발되는 경우에도 남성중심 교회의 치리 구조 하에서는 여성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 여성들은 사실 자체를 감추거나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은 교회 내에서 목사의 지위가 거의 절대적이며 신자들은 목사의 권위에 맹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교회 안의 파시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시적 권력 관계 속에서 성폭력이 '은혜'의 차원으로 해석되어 수용될 여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성직매매, 담임목사 세습, 헌금 유용 등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에서 목사들은 상당한 파쇼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패권주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고리 속에서 필연적으로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는 부패한 것들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사회로부터의 비난의 손가락질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건, 담임목사 세습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 목사 성추행 사건 등 교계에 대한 일반언론의 일련의 보도를 보면서, 교회의 자정능력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또 한번 한숨을 내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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