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신학생 하동기 씨(25)가 기독교 신앙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하 씨는 7월 13일 오전 11시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NCCK 예배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권오성)와 병역거부연대회의(대표 효림 스님) 관계자, 연세대(총장 김한중) 신학과 학생들도 참석해 지지를 표명했다.

하 씨는 “폭력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 요구에 응답하지 않겠다”며 “내가 믿는 예수님은 사람을 적으로 삼고 목숨을 뺏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에 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평화와 사랑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하 씨는 6월 중순 입영 영장을 받고 입대 예정일인 7월 7일 병무청(청장 박종달)에 입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병무청은 하 씨를 관악경찰서에 고발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기독교와 병역거부 운동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정상복 목사(NCCK 정의평화위원장)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신앙 운동"이라고 밝히고 "신앙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병역거부로 수감된 후 출소한 임재성 씨(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도 "기독교 평화주의가 세계의 병역거부 운동을 주도했다"고 설명하고 "하 씨를 계기로 종교계 안에서 다양한 병역거부 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입이 연기된, 대체복무제를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병역거부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대체복무제도를 원래대로 시행했다면 이런 선언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하고 "하동기 씨와 같이 종교적 양심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이 계속 나온다면, 이명박 정부가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황필규 국장(NCCK 정의평화위원회)은 “신학교 교수들도 교단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체복무제와 병역거부권 운동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 씨의 수감 생활을 돕기 위해 결성된 후원회의 회장 조창근 씨(연세대 신학과)는 “면회, 책 보내기, 재정 후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국 신학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체복무제 도입 서명 운동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온라인에 개설된 후원 클럽(http://club.cyworld.com/jxshine)에는 하 씨를 격려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연세대 신학과 종교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이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하 씨의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중단된 대체복무를 즉각 도입하라

작년 말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도입을 유보하겠다는 발표를 내린 뒤 우려했던 바대로 그동안 대체복무 시행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의 감옥행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 9월,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2009년 1월부터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더니 결국 작년 12월 말 국방부가 대체복무 도입을 유보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국가인권위에서 지속적으로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해왔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 현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마당에 현 정부는 케케묵은 시기상조론과 국민여론 수렴이라는 수사로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하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하동기 씨는 “사랑을 행했던 예수의 길을 따라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는 병역거부 소견서에서 밝히기를, 2006년 평택에서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던 주민을 비롯한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자행된 군․경의 폭력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징집된 군인들에게 폭력의 사용을 명령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병역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면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이다. 따라서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그의 양심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비난이나 처벌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기독교 신자의 병역거부 선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에 박경수씨가 기독교 신자로서 병역거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으며, 천주교나 불교 신자로서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일부 종교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은 따라서 정확한 지적도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인 평화를 이야기하는 병역거부의 논점을 흐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대외적으로 시작된 2001년부터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비롯한 보수집단의 반대 목소리가 있어왔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감옥행을 선택했으며 그 숫자는 2000년대에만 5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벌써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국가인권위는 이미 4년 전인 2005년에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한 바 있고, 2006년에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에서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2006년 11월에 유엔에 개인통보를 접수한 두 명의 병역거부자들과 관련하여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했으며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이후에도 정부는 유엔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변명을 대기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새로운 499명의 개인통보가 다시 제출되어 자유권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올 초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은국씨가 바로 얼마 전인 7월 3일 1심에서 1년 6월을 선고받고 수감이 되었다. 국가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철회하고 병역거부 사안을 방기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이 계속해서 수감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기꺼이 감수한 병역거부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받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받아갈 고통을 국가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국방부는 이제 근 10년째 지긋지긋 끌어오고 있는 병역거부 이슈가 지겹지도 않은가?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는 인권후진국이라는 꼬리표가 싫다면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병역거부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 개선의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 연대회의는 정부가 남북간 무력충돌을 운운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아니라 평화를 외치는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2009. 7. 13.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 하동기 씨의 수감생활 후원 계획을 밝히고 있는 후원회 회장 조창근 씨(연세대 신학과). ⓒ뉴스앤조이 백정훈

▲ 연세대 신학과 종교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은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뉴스앤조이 백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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