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1024인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잔인한 정권, 후안무치한 정치 세력"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목회자들은 6월 18일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해 현 정부를 규탄하고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회개를 촉구했다. 1970~1980년대에 열었던 목요기도회와 같은 시국기도회를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임광빈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의장)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는 민주주의라고 강조하며 현 정부가 오랜 세월 국민이 이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핵집 목사(열린교회)는 "다윗의 죄를 고발한 나단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기도했다. 목회자들은 "정부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폭력적 공권력을 당연시하고, 민주주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는 후안무치한 정치 세력"이라고 시국선언문에서 개탄했다.
또 현 정부를 "총칼로 수립된 정권이 아닌데도 군홧발과 방패로 국민을 짓밟고, 경찰력으로 (국민을) 처참하게 살해하면서도 아무런 반성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잔인한 정권"이라고 규정하며 현 시국을 '위기'라고 강조했다. 임광빈 목사는 "촛불시위자 검거, 용산참사 등을 지켜본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인권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였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인권을 우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문자 목사(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전 이사장)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즉각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깨닫지 못하면 내치시길 기도할 것"
정부가 남북 관계에서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며 대결 구도를 이어가는 점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박덕신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는 이 대통령이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강경한 대북 정책을 요청한 점을 지적했다. 박 목사는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외세에 의존했던 조상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했다. 현 정부는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우며 반민족, 반통일을 세뇌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목회자들은 "대결과 전쟁으로 결코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주님께서 어리석은 통치자에게 주시기를 기도하되, 정녕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위험한 자리에서 내치시길 구할 것"이라고 시국선언문에서 밝혔다.
정권을 지지하는 한국교회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서일웅 목사(전국목회장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는 "정권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한국교회 일부 모습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하나님께서는 권력형 살인마를 써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대통령을 버리셨다. 한국교회도 속히 회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서 목사는 "대선 과정이나 국정 운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서 정의와 공의, 진실성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을 기만하는 자를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은영 사무국장(한국교회인권센터)은 7월 2일부터 1970~19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목요기도회의 전통을 이어서 시국기도회를 시작할 것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부터는 인천, 대전, 부산, 대구 등 전국을 돌며 시국기도회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시국선언문 전문과 서명한 목회자 명단이다.
한국 교회 목회자 1000인 시국 선언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라." - 이사야 53:5 -
국민의 피땀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온 겨레의 여망과 전 세계 양심의 기대와 축복 속에 어렵게 정착되어가던 한반도의 평화가 파탄 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가 처참하게 이지러지고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이웃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이명박 정권 2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기간, 우리 사회와 역사는 너무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현 정권이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전 정부보다는 조금 더 보수적이고,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순응적이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소극적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생태적 감수성에 무능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면 국민에 의한 선거로 선임된 정부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현 정부가 자신의 통치 철학과 이념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 한 점 이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떨리는 심정으로 현 시국을 진정으로 위기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폭력적 공권력을 당연시하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조차 지키는 못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자명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칼로 수립된 정권이 아님에도 군홧발과 방패로 국민을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력으로 처참하게 살해하면서도 아무런 반성이나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방치하는 잔인한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낡은 이념에 갇혀 칠천만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한 줌의 재로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고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국민들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오늘의 이 참담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진정으로 국민에 의해 선택된 정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현실인지에 대해 심각한 혼란 속에 고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위기의 본질은 현 정권이 단지 보수적이라거나 덜 개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회와 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기본적 사람됨의 도리, 최소한의 양식조차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웬만하면 국가의 먼 미래를 보고 현 정부가 바른길을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그런 소박한 충정은 점점 어리석은 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함께 기독교는 참으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어가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 부끄럽고 통탄스럽습니다.
누구를 탓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참하게 무너지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현실에서 우리의 죄악을 봅니다. 우리는 시커멓게 타버린 용산의 주검 앞에서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공생의 원칙조차 지켜내지 못했던 타버린 양심을 목도합니다. 부엉이 바위에 묻어 있는 핏자국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의 죽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라는 하늘의 명령 앞에서 한없이 게으르고 무능했던 우리의 죄악이 너무 큽니다. 정권의 잘못 때문에 억울하게 찔리고 상처입은 모든 이들에게 대신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와 교회는 영속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놀랜 눈으로 다시 기도의 자리를 잡고자 합니다. 역사 앞에, 민족의 미래 앞에 속죄의 기도를 올립니다. 불의한 정권에 의해서 억울하게 고통당한 이들에 대한 중보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하여 우리 목회자들은 다시 이 역사의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기도의 행진을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독재의 망령이 넘실대는 이 땅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회복되는 새 역사를 주시도록, 국민의 소리, 하늘의 음성에 귀 막는 정권으로 인해 더 이상 역사 전체가 더 깊은 불행의 늪에 빠지지 않는 길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대결과 전쟁으로 결코 평화는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어리석은 통치자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하되, 정녕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그 위험한 자리에서 내치시는 하늘의 뜻을 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도구로 길든 국가 기관들,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국민을 배신해 버린 타락한 기관들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저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손들이 멈추어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또한, 온갖 요설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썩은 언론들의 회개를 위해 성령님의 인도를 기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허황한 개발의 논리로 생명세상을 파괴하고 죽음의 길로 내닫는 모든 이들이 생명의 길로 돌아설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며 용산에서 죽어간 이들의 억울함이 풀리고 진실이 밝힐 수 있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정파, 사회 세력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 위에서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존을 위해 함께 일하는 그런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