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주년을 즈음해 심각한 내홍을 겪는 경주제일교회

1신, 1월 29일
지난 1월 27일 주일. 경주제일교회는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내분중인 교회들이 밟아온 전철을 비껴갔다. 사태의 핵심에 선 당사자인 김형기 목사는 예배를 인도했고 김 목사의 퇴진을 강력 요구해 온 장로들도 일반 성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다. 매일 저녁 교회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 외견상의 변화라면 변화이다. 물론 교회게시판을 통해 양측의 날카로운 설전은 계속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찻잔속 고요함 속에서 양측은 이해관계의 득실과 향후 대응전략 수립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해당노회인 경서노회 임원진들도 28일 이후 노회사무실에 나와 양측의 대표자들을 개별 면담하면서 더 이상 문제가 심화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던 노회장 림춘광 목사(영천중앙교회)는 "교회일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는 가운데 의외로 쉽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사태해결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림 목사가 얼마전과 달리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은 김형기 목사와 선임장로인 강주복 장로를 중심으로 대립중인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나왔다는 점에서 교회화합에 대해 얼마간의 기대를 갖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형기 목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젠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다.

▲후임결정 후 개척교회 하기로 한 김형기 목사
"교회가 현재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어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아픔을 통해 조만간 더욱 성숙한 모습의 교회로 거듭날 것으로 믿는다. 이제 더 이상 경주제일교회 당회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하지만 각종 비리와 부정을 저질러 교회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장로들은 일괄 사임해야 한다. 또 각종 고소내용도 취하되어야 하며 그 이후 나의 거취문제도 자연스럽게 정리하도록 하겠다."

외견상으로 김목사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안수집사들의 입장도 그리 다르지 않다. 교회의 화합을 위해 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당회원들의 일괄 사임 △당회장 목사의 사임 △각종 고소건으로 얽혀 있는 상황해결을 위해 모든 고소를 스스로 취하하자는 것에 의견들이 모아진 상태다.

그리고 이들은 나아가 경주제일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함께 했다.

김창식 집사와 윤종갑 집사는 "지금 같은 교회내부의 문제점들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담임목사, 장로에 대해 임기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과거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던 당회에 방척석을 마련해 사안에 따라 평신도들의 참관을 허용케 할 것과 재정집행상의 집중을 막기 위해 제직회 부서장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어야 할 것 등이 준비중인 개혁안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 준비중인 개혁안은 과거 당회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이 같은 사태로 비화됐음을 인식하고 앞으로는 특정인에 대해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교회재정과 사업수립과 집행에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 개혁안이라고 소개했다.

만일 김 목사와 교사모 등 몇몇 개혁그룹들이 주장하는 개혁안이 당회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세력에 의해 전격 수용된다면 당회원 대다수를 불신임한 제일교회로서는 아픈 과거를 교훈삼아 새로운 화합과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홍빛 꿈만 꾸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당회원 불신임 사태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강주복 선임장로
불신임 사태를 맞은 당회를 대표하고 있는 강주복 장로(경주 기독교연합회장)는 "이러한 사태를 맞은 것에 대해 장로들 모두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 평생을 섬겨온 교회에서 불법 공동의회를 개최해 대다수 장로들을 불신임한다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우리는 어찌 낯을 들고 교인들을 대하고 지역교계 인사들을 대할 수 있겠는가. 모든 조건들을 수용할 수 있으나 공동의회가 불법으로 원인무효 선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신. 2월 1일
전격적으로 양측이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먼저 모든 당회원들이 사임키로 했다. 여기에는 신임여부를 떠나 전체 당회원에 대해 일괄 사임키로 한다는 원칙이 적용됐다. 그리고 이후 조속한 시간내에 공동의회를 열고 새로운 당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또한 모든 노회, 총회에 제소된 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합의도출에 결정적인 쟁점이 됐던 공동의회에 대한 적법성 여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김형기 목사는 후임목사가 정해지는대로 경주제일교회 1백주년 기념교회를 개척해 나가기로 했다. 개척후 3년동안 김목사의 사례비 70%는 제일교회가 지원키로 했다.

일견 양측의 합의가 이뤄져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 것처럼 보이나, 노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너무 서둘렀다는 감을 떨치기 어렵다.

먼저 장로들의 권위에 눌려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던 수백명의 개혁세력(교사모)들이 김목사를 중심으로 뭉쳐 자신들의 주장을 제기했던 전례를 볼 때 과연 김 목사가 떠난 이후 교회개혁이 가능할 것인가가 의문이다.

과거 제일교회 당회를 구성했던 장로들 중에는 지역교계를 쥐락펴락하던 실력자들이 적지않다. 노회에 대한 로비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됐던 것도 이때문이다. 물론 이 일에는 중재에 큰 힘을 발휘했던 노회장 림춘광 목사의 공평무사한 역할이 결정적일 것이다.

그 이유는 림 목사가 임시당회장을 맡아 김 목사와 협의해 후임목사를 구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명예회복을 노리는 장로들의 지나친 개입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한다면 제일교회의 개혁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공동의회를 통해 김 목사의 유임을 요구했던 3백여명의 교인들이 이 같은 합의안을 수용할 것인가도 의문이다. 몇몇 대표들의 협의내용이 과연 모든 교인들이 만족할 수준의 안을 도출해 낸 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며 교인들의 수용여부에 따라서 교회분리라는 최악의 상황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의 핵심인 김 목사가 "물론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합의안이라고 본다. 시간을 길게 끄는 것에 대한 노회의 부담감, 교회의 분열의 골이 심화됨, 향후 교회의 양분방지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안이라고 본다"고 말하고 있어 제일교회 사태해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경주제일교회가 어떤 수순을 밟아갈 지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과거의 아픔을 거울삼아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갈 것인지, 과거의 명예회복을 꿈꾸는 장로들의 분풀이 마당이 될지는 더 두고 봐야 겠다. 하지만 공동의회 불신임이라는 아픔을 통해 성숙의 자리로 접어들었을 장로들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숙한 내일에 대한 각오를 기대해 보는 것도 제일교회 사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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