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관문 군대.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영역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치열하다.(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양심에 따른 집총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가장 큰 목소리로 반대하는 집단은 국방부와 일부 개신교 단체들이다. 좀처럼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체가 대체복무제 문제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로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국방대의 김병렬 교수는 지난 12월 서울대서 열린 '소수자의 인권' 학술 세미나에서, 자신의 논문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점'을 통해 대체복무 입법이 불가능함을 주장했다.

그가 반대의 논거로 제시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형평성의 문제이다.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제 실시 후 여호와의 증인 25명, 스님 3명이 이를 신청했는데, 신청자의 숫자가 적은 것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부과되는 대체복무가 일반 대체복무보다 강도가 높고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만에 필적할만한 대체복무제가 없기 때문에, 양심에 따른 대체 복무를 허용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현역입영 대상자와의 형평성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병역거부자들은 예비군 훈련도 안 받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체복무가 아니라 사실상 '면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한, 이 법안이 특정 종교를 두둔하여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환경 역시 대체복무제를 실시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의 침략 위험이 상존하는 현 상황이 갖는 심각성을 강조하며, 유엔 인권위의 결의안도 우리의 특수 상황에서는 반드시 준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현재는 군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이 많지 않아 징병가용자원에 부족이 없지만, 수년 내에 부족현상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현역병의 규모를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결국 북한군의 사기를 높일 것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예상이다. 양심이나 종교의 자유도 소중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신체 등급을 판정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젊은이들
(병무청 공보과 제공)
지난 10월 23일 발표한 국방부의 공식 입장도 김 교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는 이 성명서에서 우리나라의 특수상황과 형평성의 문제를 강조하며, 대체복무제는 군복무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생명을 담보로 싸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또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국민 통합이 저해될 것이며 이를 계기로 병역거부운동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단체들이 보낸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도 앞의 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안보환경, 국민의 법 감정, 국민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대체복무법의 수용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최종 결론이다.

지난해 초, 사회 전반에 일기 시작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 논의가 한 참 진행될 때에는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의 입지가 불안해 보였다. 실제 <동아일보> 임터넷 사이트인 동아닷컴에(donga.com)에서 3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3.7%가 대체복무제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를 크게 뒤집은 사건이 일어났다. 개신교인들의 반대가 그것이다. 선두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만신 목사·한기총)의 성명서가 있었다.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오성환 목사의 이름으로 지난 6울 1일 발표된 성명서는 결과적으로 당시 장영달, 천정배 민주당 의원에 의해 추진중인 대체복무제 입법안을 막는 성과를 올렸다. 한기총은 두 의원에게 반대의 뜻을 분명히 전하는 항의 서한을 보냈고, 의원들의 지역구 기독교 인사들도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고 한다. 실제 7월에 예정된 공청회는 한기총이 발표한 반대 성명의 여파로 취소되었으며, 입법과정에서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의원들도 하나 둘 발을 뺐다고 한다.

한기총이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대체복무제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한기총은 예의 성명서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으로 표현하며 이들이 수혈거부, 국기배례거부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왔다고 말한다. 만약 이들의 신앙을 존중하여 대체복무제를 만든다면 이는 병역기피자들에게 악용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 소수자의 인권 차원이 아니라 이단 문제로 접근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기총의 박영률 총무는 지난 6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체복무제는 종교간 형평을 깨는 제도이며 이를 기화로 각종 사이비 종교가 탄생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집총거부를 이유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불쌍하지만 징병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를 거부하는 것은 무임승차 행위이다"라고 비난했다.

정연택 한기총 사무총장도 지난애 7월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대체복무제를 통해 여호와의 증인이 교세를 확장할 우려가 있음을 표시했다. 또한, 내부적으로 국가를 사탄으로 가르치는 그들의 양심을 믿을 수 없다며 상대가 여호와의 증인인 한 반대를 접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월 C3TV(www.c3tv.com)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는, 참가자 5600여 명 가운데 찬성이 49.97%, 반대가 50.03%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동아닷컴의 결과와 비교할 때,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기총의 격렬한 반대 정서와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교계 내에 한기총의 경우처럼 반대의 입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복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전인 지난 3월15일, 부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이 문제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윤실은 병역거부자를 종교적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가는 '양심범'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인권 역시 하나님이 부여한 인권이라며 대체복무제를 찬성했다. 한 편, 기독시민사회연대는 개신교 단체로는 유일하게 1월 30일 출범 예정인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연대회의(가칭)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동완·KNCC)와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공동의장 김광수 목사) 등 진보적 성향의 단체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이는 이 문제가 개신교에서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불교 신자로는 최초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28) 씨로 인해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병역거부 문제. 이단의 일이라는 이유로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를 취해 온 개신교계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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