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송순재 교수와의 인터뷰에 이어 이번에는 고신대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치는 강용원 교수를 만났다. 강 교수는 현재 한국기독교교육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우선 강 교수에게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한국 교회의 특성상 진보와 보수신학의 대립이 뚜렷하고 이 때문에 교육 개념 또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신명기(6:4-9)에서는 교육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경우 일반적으로 전도나 선교와 연결시키는데 나는 이 말씀이야말로 교육적 명령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 나오지만, 그 보다도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다섯 개의 동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인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 바로 교육명령이기 때문이다. '제자를 삼는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교육적인 용어이며, 이 말속에는 가르침과 배움, 모방, 교육, 훈련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제자를 삼으라’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교육(paideia)’을 의미하며, ‘가르쳐’란 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 즉 ‘교수(didache)’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교육적 사역이 이차적인 것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교회의 비본질적인 기능으로 간주된다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육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일, 또 분산되어 있는 교육적 관심을 한데 모으는 일, 그리고 그것을 가시적인 노력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교회교육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첫째는 현장에 대한 바른 분석과 평가가 결여되어 있다. 신뢰할 만한, 분명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교육학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기독교교육논총’이 지금 7권까지 발간되었지만, 현장개선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수집용 조사 통계 논문은 찾기가 힘든 형편이다. 둘째는 전반적으로 교회교육이 아직도 전도중심이고, 외형적인 숫자 늘이기에 관심이 많은 점이다. 때문에 좀 더 전인적인 성숙을 위한 교육,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는 달란트 교육, 삶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시키는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형편이다. 셋째 오늘의 교회교육은 ‘통합성’ 혹은 전체성이 결여돼 있다. 그래서 교육이 교육관이나 교실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육의 대상은 자라나는 세대에 국한돼 있다. 또 교육이 열성적인 평신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교육은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뿐이다. 나는 교회교육이 ‘교회 전체의 기능’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이 같은 부분적 사고들로 가득 차 있다. 각 부서의 교육이 교회 공동체 전체와 연결되어 있지 못하며, 유년주일학교는 전통적으로 어른과 격리해 따로 예배를 드려왔다. 그리고 중 고등부도 이제는 거의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로부터 독립되고 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청년교회’라고 명칭을 붙여서 따로 독립된 교회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할 큰 과제이다. 교회가 예배 공동체라면 이들을 통합시키는 어떤 노력들이 분명 있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교육은 기독교교육의 다른 노력들과도 긴밀한 연결을 이루어야 한다. 즉 가정, 교회, 사회, 학교의 신앙교육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교육이 가정교육과 연관성이 희박하고, 학교교육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으며, 미션스쿨조차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이다. 넷째 물론 교회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도 예배와 분반공부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일학교의 경우는 예배와 분반공부 형태, 중 고등부의 경우는 ‘경배와 찬양’ 형식의 예배와 분반공부, 대학부와 청년부 역시 대동소이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현실의 이야기들을 교육의 현장으로 가져와야 한다. 거기서 토론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벽에 부딪쳤을 때는 함께 울부짖어 보기도 해야 한다. 다섯째 교회교육을 감당하는 교사들의 경험들이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들 23%가 타의에 의해서 봉사하고 있으며, 약 30%는 교사 직분이 불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20, 30대가 60%이고, 50세 이상은 4.4%에 불과하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회교육을 개선해 보려는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이와 관련한 도서들도 출판되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책들의 경우 ‘혁신’이나 ‘개혁’ 등의 용어를 쓰면서 교육현장의 개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나도 그런 책들을 읽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읽히기도 한다. 학자들의 글이 이론적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을 비롯해서 교회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런 도서들은 “교회교육, 현장에서 다시 출발”이란 모토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터뷰와 관찰을 통한 현장분석을 그 기초로 하고 있어 바람직하다. 또 거의 대부분이 예배와 분반공부에 그 일차적 초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교육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주제임에 틀림없고,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교육을 개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단히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이 무엇보다도 교육대상자들에 대한 이해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N세대, 혹은 사이버 세대로 표현되는 대상자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일과,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의 적극적인 활용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에까지 깊이 있게 천착해 들어가기보다 외형적인 환경을 개선하려는 데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보완돼야 할 측면들이 있을 텐데.

그럴 수 있다. 사실 어느 한 교회의 시도가 다른 교회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교회마다 서로 다른 상황이 있다. 학생수, 교사수에서 가동할 수 있는 재정적인 규모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례들 속에서 기본적인 원리들을 가져와서 교회에 적합한 실천적이고, 가능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교육구조가 예배 및 성경공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이밖에 이런 사례들이 유년주일학교와 중 고등부가 교회 전체의 공동체와의 연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점도 비판받을 만 하다.

특히 진보적인 신학을 배경으로 교육개혁을 하는 이들에게서 보여지는 교육 행태들, 가령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교육에 반영하는 것이라든지, 생활신앙에 초점을 두는 교육 등은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교수님은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인 신학을 토대로 한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이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고 있는가?

신학적 강조점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적 신학의 배경을 가진 교회가 보수적 신학의 배경을 가진 교회들보다 교회교육 현장에서 그런 측면을 더 잘 잘 실행시키고 있는지는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 생각으로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생활신앙에 초점을 두지 못하는 교육은 어쩌면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직도 구원중심의 사고가 더 강하다. 이제는 구원 후에 오는 성화에도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의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지난해 총회에서 통과된 교육백서를 보면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분석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양식’이라는 주일학교 교재를 보면, 성경공부에서 적용을 강조하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다시 삶에 적용하는 공부를 장려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환경, 직업, 이성 문제 등 기독교인의 사회적, 문화적 문제를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다루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나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은 진보적 신학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종교, 통일, 환경, 대중문화, 여가, 사이버문화 등의 주제들이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 더 이상 눈을 막고, 귀를 막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하다고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영원히 수영은 배울 수 없다.

구원중심의 사고란 소위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영적인 것을 따로 떼놓으려는 이분법적 사고도 포함되는 것 같다. 교육현장에서도 영적인 것을 몸의 훈련과 분리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사람들은 믿기 때문에 행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믿음이 우선이라고 한다. 믿음이 생기면 저절로 행함이 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행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훈련이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행함으로 우리의 아는 것이 더욱 분명해 지고, 우리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는 경우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천을 통한 지식, 경험을 통한 지식보다 더욱 확고한 지식은 없다.

제3의 대안이 있는가? 교회교육현장에서 어떤 밑그림을 가지고 교회교육에 임해야 할까?

학자들에 따라서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의 주된 사역은 선포, 봉사, 교제, 예배, 교육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사역들과 교육사역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교육은 우선 다른 사역들을 지원해준다는 특징을 갖는다. 다시 말해 제반 사역들이 잘 성취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배를 위한 교육, 봉사를 위한 교육, 교제를 위한 교육 등으로 불려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모든 사역들은 이미 그 안에 교육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사역의 수행자체가 교육적이며 교육을 지향한다. 따라서 교회의 교육사역은 모든 다른 사역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전도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신앙이 더욱 강화됨을 체험하고, 식탁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의 필요성을 배우게 된다. 또 봉사를 통해 돌봄과 사랑의 필요성을 깨닫고 실천한다. 예배는 그 자체가 교육은 아니지만 예배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전인적인 성숙과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사역은 포괄적인 성격을 갖는다. 또 다른 사역과는 다른 독특성을 지니며, 이 때문에 교육사역을 뚜렷한 경계선으로 나누어 단지 하나의 사역분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교육사역은 포괄적인 사역이며, 다양한 사역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또 다양한 사역들을 통해서 성취된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에게 목회사역에서 감당하는 일들을 열거해 보라고 하면, 예배 인도와 설교, 상담, 행정, 심방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교육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하나를 빼라고 하면 무엇을 빼겠느냐 물으면 모두 교육을 빼겠다고 말한다. 교육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이른 바 교육목회란 개념을 설명하는 것 같다.

그렇다. 교육은 목사님들이 하시는 목회사역들 중의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목사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교육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것이 교육목회적 전망이다. 따라서 목사는 교육을 자신이 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하는 모든 사역들이 곧 교육적 목표와 전망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목회에 접근하는 길은 다음 몇 가지가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교회 전체의 기능으로서의 교회교육의 갱신을 추구하는 일이며, 둘째는 교회의 중요한 사역을 중심으로 교육목회적 전략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역에는 예배, 선포, 교제, 봉사 등이 있는데, 이러한 사역들은 그 자체가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교육적 효과를 증대시켜 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사역들을 '위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는 목회의 다양한 영역인 설교, 심방, 상담, 의식 등과 교육을 연결시켜 보는 작업이다. 교육목회란 말도 필요에 따라 쓰는 과도기적 용어로 보여진다.

교수님은 교육목회적 접근과 동시에 주간학교, 또는 방과후 학교의 교회도입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강조해 오신 것으로 안다.

교회교육은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교육기회의 확장이다.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서 한 주간의 엿새를 보낸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육을 받는 시간은 예배시간을 제외하면, 주당 한 시간을 넘지 못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주간 또는 평일학교의 실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시기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주간학교는 주일에만 국한된 교회의 교육적 노력을 평일에까지 확장하자는 것이다. 주간학교는 어린이 집이나 아가방을 위한 설비를 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이 일은 부모전도의 기회가 되기도 하며, 어린이들에게는 종교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오전 시간은 주로 유치원 과정을 실시하도록 한다. 시설을 갖추고, 좋은 교사를 두면,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보낸다. 부모교육 과정을 함께 병행하면 전도효과가 훨씬 크다. 오후 시간은 방과후에 초등학생 과정으로 진행하는데, 저학년부터 시작하해 학년별로 시작 시간을 정하고 모이는 회수나 교육시간은 상황에 따라 조정하도록 한다. 저녁 시간은 중 고등학생의 시간으로 학년별 혹은 학년을 몇 그룹으로 묶어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실시하되, 공부방 등을 병행해서 운영하면 좋다. 가르치는 내용은 특별한 연구가 필요한데, 이것은 주간학교의 매우 본질적인 부분이다. 주간학교는 무엇보다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교회를 친밀히 느끼도록 해야하며,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공부와 기독교적 삶의 철학(세계관)을 어려서부터 키워주는 일이면 좋다. 가능하면 지식과 신앙을 연결시켜 주어야하며, 바른 관점을 가지고 사물과 이 세상의 현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신앙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주간학교의 운영에서 중요한 문제는 지도자의 확보이다. 주간학교에는 담임교역자 및 교회학교 담당 전임교역자가 참여해야 하며, 훈련받은 교회교육 전문가가 직접 교육을 담당하도록 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어떤 호칭으로 부르든지 충분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한다. 주간학교의 담당자들은 대학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신학적인 기초 소양과, 기독교교육에 대한 지식을 겸비해야 하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과정에 대한 기본 지식과 나아가서는 신앙과 지식을 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면 좋다. 교회는 이런 전문적인 교사를 유급으로 고용하여 주간학교의 전반적인 일을 수행하도록 한다. 주간학교의 규모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으나 교회는 2-3명의 전문교사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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