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에 위치한 제자교회(정삼지 목사). 이미 제자훈련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알려져 온 이 교회가 작년부터 셀교회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정삼지 목사는 이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의 본질을 예배 선교 봉사 교육 교제 등이라 할 때 우리 교회는 분명히 어딘가 허점이 나타났다. 교제, 곧 코이노니아의 부재였다. 그것은 여간 큰 구멍이 아니었다. 목동으로 교회당을 옮기고 난 뒤 매년 5백 명 이상씩 성도들이 늘었지만 우리에겐 이런 식으로 가서 대형교회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골다공증을 앓는 한국의 대형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교회’가 아니었다. 성도들 사이에 누가 누군지, 그들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교회의 본질을 놓쳐버린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 우리는 그 벽에 부딪쳐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자교회의 지난 10년은 구역모임의 한계인 구역장 중심의 예배문화를 순장 중심의 다락방모임으로 바꾼 세월이었다. 이 모임에선 귀납법적 성경공부가 진행됐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학력 수준이 낮은 성도들은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교회는 모른 사이에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란 계층이 생겨났다. 이것이 자칫 화석처럼 굳어질까 두려웠다.”

셀교회로의 전환은 그 대안이었다. 구역모임에서 제자훈련이 가미된 ‘다락’으로, 다시 ‘다락’이 어려움 접하면서 가정교회로 돌파구를 열어 온 셈이다. 다행히 제자교회는 이미 제자훈련을 통해 셀교회로의 전환에 필요한 기반이 만족할 만큼 탄탄했다. 셀에서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성경공부를 통해 적어도 삶의 비전을 한 방향으로 맞춰놓은 것도 셀의 토대가 됐다.

무엇보다 놓쳐버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제자교회의 셀교회 전환은 곧 ‘개혁’의 몸부림으로 비쳐진다. 또한 셀교회로의 전환을 결코 완성된 개혁으로 보지 않고,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에 끊임없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변화에 대해 언제나 ‘열린 교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0년 이상 몸에 젖어 익숙한 교회생활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몸에 맞추는 데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가정교회가 성서적인 교회를 담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워크숍, 독서토론, 공청회, 세미나 등을 열었다. 8개월이 넘게 소요됐다.  

작년 5월 이런 과정을 밟아 처음 조직된 셀(제자교회에서는 목장이라 부른다)의 리더(목자)로 60명이 자원했고 여기 약 7백 명(전체 성도의 3분의 1)의 성도들이 구성원(목원)으로 연결됐다. 목자들은 대부분 다락을 인도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들이었다. 구역모임처럼 지역적으로 조직하기보다 오히려 풍성한 교제를 위해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율적으로 모였다. 직업 분포도 공통점들이 있었다. 올 3월에는 셀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각 셀에서 이미 셀 구성원들이 협의해서 세운 예비목자들이 목자가 되어 현재 소속된 셀을 섬기고, 지금의 목자들은 다시 두세 명의 목원을 데리고 나가 새롭게 목장을 만들어 독립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제자교회는 셀교회의 전형인 두 개의 날개를 갖게 됐다. 셀과 셀들의 연합으로서 셀의 사역을 뒷받침하는 교회가 그것이다. 연합교회는 셀 구성원들을 교육하는 학교와 같다. 그래서 제자훈련이나 평신도훈련 등을 주관한다. 이것은 셀교회로 전환하기 전에도 이미 있었지만 셀이 생기면서부터 훨씬 강화되고 활성화됐다. 셀로부터 이른 바 ‘위탁교육’ 성격을 띠기 때문에 셀에서 자체적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동기부여도 뚜렷하다. 셀 리더를 위해 매월 리더모임도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셀의 현황을 보고하고 기도하고 비전을 다진다. 좋은 셀교회들을 방문하기 위해 때로는 싱가포르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놓쳐버린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도입한 셀교회로의 전환은 지금 어느 정도 싹이 틔었을까? 결론적으로 예상외로 ‘감’이 좋다는 게 대부분 목회자들의 평가다. 특히 교회의 기능 가운데 제자교회가 가장 취약했던 코이노니아 기능을 셀에서 충분히 회복한 점이 눈에 띈다. 정 목사의 소감이다.

“무엇보다 목회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동안 목사가 끙끙대며 짊어졌던 짐을 많은 부분 셀 리더들이 떠 안아서 훨씬 잘 해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셀에서는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구역모임이나 다락모임에 나오지 않던 이들도 셀모임에는 적극적이다. 셀모임에서는 거의 결석이 없다. 과거에는 직장에 무슨 일이 생겨서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모임이 있어서 가야한다는 식이다. 특히 셀에 참여하는 성도들 대부분이 젊은 연령층이어서 직장 일이 많고 바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바뀌었으니 기적이 아닌가?”

선교사역 역시 형식보다 본질에 더욱 충실하게 됐다. 그 동안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비를 보냈지만 이것이 정작 교회 성도들의 충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 따로, 성도 따로 식이었다. 반면 셀이 아예 선교사 후원과 기도를 떠맡으면서부터 선교사에 대한 관심과 서신 왕래 등이 빈번해졌으며, 설 휴가를 이용해 셀 구성원들이 선교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경우까지 나타났다.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 ⓒ뉴스앤조이 김승범
그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었던 문제점 역시 셀을 통해 극복됐다. 특히 연령층의 차이에 따른 이질적인 현상이 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연령층을 초월해서 진정한 존경과 애정의 공감대를 만든 셈이다. 곧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화의 미를 배우게 만들었다. 그토록 꿈이었던 바고 그 교회의 본질, 곧 온전한 하나됨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또 가정이 지닌 다양한 불화들을 셀 구성원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해결방안을 모색하게 됐고, 구성원들이 함께 대안들을 찾음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가 자주 나타났다. 이것은 곧 성령의 역동적인 간섭을 체험하도록 했고, 평신도들이 스스로 목회의 개념을 깨우치는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 셀은 전도를 자연스럽게 실천한다.

제자교회가 셀교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중요한 교훈은 역시 ‘과정’의 중요성이다. 다시 말해 전통교회의 구역예배를 어느날 갑자기 셀이라 이름 짓는다고 해서 셀교회의 특징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꾸준히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통해 셀교회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 사이에 진정한 교회를 지향하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셀이란 틀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자교회에 있어 그것은 제자훈련이었고, 셀은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온 대안이었다. 이 때문에 셀교회로의 다양한 전환모델을 필요로 하는 한국교회에 제자교회의 발자취는 어쩌면 중요한 개척자의 걸음이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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