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교육한다. 또 보다 정확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수수께끼 같은 고대문자를 해독하는데 엄청난 인력과 예산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이들을 분석하고 상호관계를 맺어 수천년의 인류의 삶의 모습과 그 변화를 추적한다. 이는 인간에게 과거가 자신의 뿌리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증거하고, 또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는 다양하다. 박물관에 보존된 각종 유물로부터, 문화와 풍습들, 그리고 다양한 관점의 역사서들이 이러한 자료에 포함된다.

건축물은 다양한 역사자료 중에서도 과거의 흔적과 삶의 모습, 당시의 생각과 풍습들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종류의 유물이나 유적보다도 그 시대의 역사를 가장 많이 그리고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인류 역사의 기록이며, 특별한 자료이다.

수천년 전에 지어진 고대 이집트나 희랍의 건축물들, 그리고 건축 후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건재하며,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중세 유럽의 수많은 성당이나, 인도, 남미 등지의 중세 사원건축들과, 심지어는 목조로 이루어진 중국이나 한국 등지의 건축물 등 세계 도처에 수없이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건재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재료와 기술에 의해 그 시대의 인간의 삶을 담았기에, 그들의 정신적 물질적인 모습은 물론, 그들의 신앙적 모습도 담겨져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교회 건축물들은 당시의 선조들의 신앙심이 집결되어 이루어진 결과로서, 그들의 교회 생활의 다양한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본을 전하고 잘 잘못을 교훈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교회건축을 통해 당시의 신학과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과 교인들의 의식 등 다양한 교회의 모습과 그 변화 발전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모든 교회의 역사는 곧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행하신 역사의 증거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우리가 행할 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교회건축에서 역사성은 다른 어떤 종류의 세속건물에서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교회건축은 두 가지 관점에서 역사성의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새로 건축되는 교회당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건물의 보존이라는 문제이다.

전자의 문제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 많은 교회들이 그 설립 50주년이나 100주년 등을 기념하여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는 경우에 자주 논의되는데, 이는 주로 기념성의 문제나 교회 설립 이후의 역사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러나 교회건축의 역사성은 이러한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의 신앙과 기독교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기에는 교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역사, 문화의식은 한 시대의 표현으로서의 교회건축도 가능하게 할 것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교회 자체의 사역에 대한 보다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함으로서, 미래사회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창출해 낼 수 있게 할 것이다.  

기존 건물의 보존에 관한 문제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의식이 깊은 외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문제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최근에야 인식하기 시작한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들은 수없이 많은 교회건물을 지었고, 또 헐고 다시 지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빈곤한 시절에는 필요한 교회당 공간의 면적을 확보하기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후 경제의 사정이 상당히 호전되고, 급속도로 교회성장이 이루어진 최근까지도 역사와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아지지 못한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교회만이 아닌 한국 사회 전체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한국의 중앙청이었으며 과거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사용하던 건물의 철거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유럽의 도시에서 현대 건축물들과 함께 조화롭게 서 있는 수많은 과거의 건축물들이 기능적으로 살아 있음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유럽사회가 과거의 전통의 맥을 현대에 잇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이며, 그 사회가 높은 문화사회이며 안정된 복지사회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존건물의 보존문제는 단지 경제적 또는 실용적 차원에서만 다룰 일이 아니며, 역사 문화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한국교회도 이제부터라도 이 시대의 예술과 기술의 역량을 모두어 하나 하나의 건축물들을 정성을 다해 지음으로써,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시는 역사의 증거로서,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증거로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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