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8개월이라는 단독 목회 사역을 큰 경험으로 뒤로하고 부목사로서 첫 발을 내 디딘지 이제 4개월 째다. 4개월을 부목사로서 부딪혀 본 필자의 소감으로서는 역시 한국교회에서는 담임목사와 부목사와의 벽이 너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젊은 나이로 담임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서 그런 경향을 두드러지게 발견한다.


설교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그중에 가장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설교 문제다. 필자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참된 목사라면 설교를 하는데 있어, 어떤 문제이든, 어떤 분야든 거침없이 두루 섭렵(涉獵)하다시피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면접을 통해 담임 목사님을 만날 때면 당연히 그럴 줄 알고 설교 문제에서만큼은 묻지 아니했다.

그리고 설교할 기회가 주어지기에 나름대로 파악한 안목으로 열심히 준비한 설교를 예배시에 선포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담임 목사님의 얼굴이 굳어지고, 매우 질색을 하는 표정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난감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설교를 잘못한 부분이라도 있는가?" "아니 왜 저러시지?" 라는 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야고보 사도의 글을 인용해 요한복음 2장1-11절 말씀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맹물인생으로 살 것이 아니라, 맛있는 포도주 같은 인생, 물질이 변화하듯, 내적으로 참된 변화를 가져오는 인생을 살자. 우리 안에 더러운 것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맛있는 포도주 같은 인생이 될 수 없다. 내적으로 우리는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성화되어 가는 참된 인생이다"

고 설교했다.

아마도 이 설교가 담임 목사인 당신의 부도덕한 면과 자신 없는 부분을 건드리는 설교였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 주간 금요기도회 시간이었다. 담임 목사님은 설교시에 골로새서1장9-1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 본문 내용은 원래,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단 사설과 정치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용케... 믿음, 소망, 사랑을 지켜 가는 그들에 대한 감사와 기쁨(3-8)이 표현된 내용이다. 그런데 본 내용을 가지고 지난 수요일에 한 내 설교에 대하여 비판하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으로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성령의 빛을 받은 성도에게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설교를 하였다. 아래 것은 바라보지 말고 오직 위에 것만 생각하자고 말하면서...즉 이 말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는 모순된 논리일 수도 있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실천을 약화시킴으로 말미암아 부실한 그리스도인, 타락해 가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청렴하고, 정직하고,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자고 설교한 본인의 설교는 율법주의자들의 설교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골이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여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바리새인의 행함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예수를 본 받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자고 했는데... 정죄를 하고, 율법주의자라니...

자신있게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없다면 그것부터 고치고 나서 설교를 해야 함이 옳은 것 아닐까? 나는 이날 한 지도자의 옹졸하고 비겁한 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씁쓸했다.

이러한 의도는 다른 뜻으로 본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오직 담임목사 당신의 설교만이 최고라는 것일 수 있다. 다른 목사의 설교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설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성령님의 폭넓은 역사도 부인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자기 방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금요기도회에 골로새서 1장9-14절 말씀을 가지고 한 설교는 분명 자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골로새서가 말하는 본문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된 설교는 그 본문을 가지고 자기를 방어하는 듯한 말이나, 자기의 모순된 점을 옹호하려는 설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건 정직한 설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주 양심 불량적인 설교이고, 비정직한 설교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를 합리화하는 듯한 설교, 상대방을 겨누고 비판하며 때리는 설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설교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자이어야 한다! 김남준 교수님이 이야기 하셨듯이, 정말 자신이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성경이 우리 인격을 통하여 설교됨으로써, 우리의 설교가 하나님 자신의 음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깊이 체험된 진리로서 설교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은 목회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타락한 마음과 비뚤어진 인격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신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참된 설교자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 시대를 아파해야 한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럴 때만이 참된 설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면서 처절한 절규와 참된 고뇌가 있는 설교...이러한 설교를 많이 할 수 있는 설교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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