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1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이랜드 일반노조 사무국장 홍윤경 사무국장을 만났다. (사진제공 유헌)
홍윤경 사무국장(41)은 대학시절 케냐단기선교를 다녀오고 선교사를 꿈꾸었던 선교 헌신자였다. 선교지가 이랜드로 바뀌었을 뿐 기독교기업에서 선교적 삶을 추구했던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도 이랜드에서 살려고 했던 선교적 삶의 선택이었다. 기독교기업이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보고, 누구든지 거부할 수 없는 최소한의 요구를 한 것일뿐. 그는 15년 동안 노조활동이 신앙 양심에 거리낀 적이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해고된 데 따른 결과이고 복직투쟁도 남아있지만, 그는 이것이 그동안 진솔이와 고은이에게 못 다한 엄마노릇을 보상할 기회라고 여긴다.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라는 생각을 접었던 계기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홍윤경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지난 11월 13일 이랜드 일반노조가 홈플러스와 합의하기까지 510일의 오랜 투쟁의 선두에 서 싸워온 그였다. 끝까지 명랑함을 잃지 않고 꿋꿋했던 그였지만 싸움은 외롭고 뜨겁고 처절했다. 그는 인터뷰 하는 동안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혀가면서 이랜드가 인간에 대한 연민을 저버리지 않고,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을 인정하는 기업이 되기를 끝까지 바랐다.

그동안 이랜드는 세금을 잘 내고 구제를 많이 하는 좋은 기독교기업으로 알려졌다. 이랜드복지재단을 통해 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고, 노숙자, 행려자, 외국인 노동자, 북한 동포를 돕는 데 힘썼다. 올해도 이랜드는 사회공헌부문에서 몇 개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한사코 경영상의 이유를 앞세워 외면했다. 결국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외주화강행으로 시작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매듭지은 것은 이랜드로부터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테스코였다. 이랜드는 노조를 인정하고 설득하기 보다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홈에버를 되파는 방식을 선택했다. 홍 사무국장은 이런 이랜드의 태도에 대해서 박성수 회장의 노조에 대한 편견 탓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는 510일 간의 오랜 투쟁기간과 많은 중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이랜드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기독교기업의 롤모델로 부각되었던 이랜드였던 만큼, 답답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기독경영이나 기독교기업에 대한 논쟁거리가 되었고, 기독교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기독교기업은 없는가? 기독경영은 신자유주의적 경영방식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적 양극화를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대응방식은 없는 것일까? 아직도 이랜드는 한국 기독교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권오성)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원규)에서는 지난 8일, 이랜드일반노조에게 제22회 인권상을 수여했다. NCCK는 인권상 수상자로 이랜드 일반노조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 “이랜드 일반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NCCK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투쟁에서 대안을 발견한 셈이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연대해서 세웠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품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모범적인 노조였다. 그만큼 남다른 연대의식으로 뭉쳤다.

홍 사무국장은 오랜 기간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로 ‘50여 명의 해고자들과 함께 510일이 넘도록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150여 명 ‘아줌마들의 의리’를 꼽았다. 무엇이 4,50대 아줌마들을 투사가 되게 한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신용불량자가 되고 물대포를 맞고 한뎃잠을 청하면서도 510일을 견디게 한 것일까, 기독교기업의 원칙과 경영방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육성을 전해 듣는 게 우선일 것이다. 12월 11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홍윤경 사무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510일의 오랜 투쟁을 거쳐서 노사합의를 타결했습니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해결된 셈인데, 이랜드와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요.

이랜드 사측과는 해결한 게 하나도 없어요. 노조가 잘 한 일은, 홈에버를 홈플러스에게 팔게 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홈플러스와 이랜드가 노조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었어요. 홈플러스도 삼성 지분이 적다고 하지만 모든 관리인이 삼성(무노조를 원칙으로 하는) 출신이예요. 그런데 그들도 이미 있는 노조를 없앨 수는 없으니까,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어요. 홈플러스와 합의한 주요 내용은 추가 외주화를 하지 않겠다,(일부부서는 외주화 했던 것을 직영으로 전환) 계약직으로 16개월을 경과한 경우 무기계약으로 간주한다, 또 비정규직들에게도 공휴일 유급을 인정하고 임금 인상하겠다. 임금을 제외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시정도 크지는 않지만 이루어진 셈이죠. 애초에 투쟁을 시작했던 이유가 대부분 해소되었어요. 그리고 파업 중에 발생한 손배, 가압류 및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하기로 합의했어요. 

이랜드 노조는 어떤 상황인가요.

이랜드의 경우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죠. 단체협약이 3년째 해지된 상태고 임금도 4년 째 동결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데다 노조 사무실도 없어요. 홈플러스 해고자 8명은 위로금이라도 받았는데 이랜드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다가 법적으로도 노동위원회에서 졌으니까 불리한 상황이지요. 현재 홈플러스 노조와 분리한 이랜드노조 조합원은 47명이죠. 그 중에 7명이 해고자니 그 노조가 어떻게 제대로 된 노조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그나마 핵심 역할을 한 저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현재 이랜드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이 해고되서 새로운 위원장을 뽑아야 하는데, 경험자도 없고 어려운 상황이에요. 또 아직 이랜드가 손해배상 소송을 건 게 있는데 그건 아직 안 풀렸어요. 대부분 집회를 홈에버 앞에서 하다가 딱 한번 2001아울렛에 갔는데, 이랜드월드가 그 부분에 대해 최근에 손배를 걸었어요. 또 2006년 노조 통합하기 전 까르푸/뉴코아/이랜드노조가 공동투쟁 했던 건에 대해서 2년이나 지난 최근에 손배를 청구했죠. 이 두 건은 아직 안 풀렸어요. 이랜드가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거죠.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끝까지 싸워야죠.

이랜드 사측에서는 자신들이 합법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합니다만 노조의 입장이 있다면.

이랜드가 법을 먼저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까르푸노조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될 것을 예상하고 18개월 이상 고용보장 단협조항을 어렵게 따냈었어요. 사실상 마지막으로 까르푸가 주고 간 선물이었지요. 그런데 이랜드가 그것을 무시하고 해고하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처음 파업을 결의할 때 조합원 1200명 중에 300명 정도 나올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파업 첫날 700명이 넘게 나왔어요. 그렇게 나온 것은 회사가 단체협약을 어겼기 때문이지요. 단협을 어긴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현재 처벌조항은 없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사 간 약속이잖아요. 법이라는 게 뭡니까? 단협을 지켜야지요.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고 쳐요. 지방노동위원회에 가서 저희가 이겼어요. 부당해고라고 판정이 난 거죠. 그러면 회사가 그것을 불복해서 중노위를 가든 소송을 가든 일단 복직을 시켜놓고 하는 게 원칙이예요. 그런데 법의 맹점이 뭐냐면 복직을 안 시키고 중노위를 가도 처벌을 안 해요. 그런데 회사는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했어요. 대법원까지 갈려면 3년 걸려요. 80만 원 받는 비정규직 보고 3년 기다리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분노해서 파업에 나온 거거든요. 자기들이 먼저 법을 안 지킨 거잖아요. 그런 식이예요. 노동자들과 관계에 있어서는 벌금을 내거나 끝까지 가요. 가더라도 먼저 회복을 시키고 가야 맞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죠.

510일이라는 최장 기간 파업 기록을 남겼는데, 노사 신뢰의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93년에 노조를 만들 때부터 같이 했는데, 그 당시 직원이 1500명 정도였는데, 700명이상이 가입했어요. 저는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어서 노조가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어요. 단지 회사 내에서 소외받는 직종도 있고, 직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봤지요. 그런데 그때 나온 소리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 이런 거였어요. 그때 기독교인들이 노조를 많이 탈퇴했죠. 회사랑 친분이 있는 목사님을 아는 직원들도 우루루 탈퇴했어요.

노조는 그렇게 소수가 되었고, 항상 가장 차별받는 계층을 위해서 싸웠어요. 그 당시 직영매장에 있던 직원들이 부당하게 차별을 받았을 때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싸웠어요. 직영매장에 있는 직원 중에 억울하게 해고를 당했을 때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싸웠지요. 신화적 성장을 하고 있던 이랜드의 영광, 그 아래에서, 한쪽 구석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웠어요. 이랜드 주류 직원 입장에서 보면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회사를 말아먹으려는 부류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신앙의 양심, 노동자의 양심으로 일 했고, 그건 이랜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안 했으면 이랜드는 더 큰 위기를 맞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사는 그런 걸 인정하지 않지요.

실제로 이랜드는 노동조합을 15년 동안 인정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렇게 판단해요. 내가 떠날 수 없는 이유도 그거 예요. 만약 이랜드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대화한다면 떠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게 안 되고 있어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결국 박성수 회장 때문이 아닌가라는 결론밖에 없어요.

4,50대 아줌마 조합원들이 장기간 동안 투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나도 대단히 놀랐어요. 어떤 사람은 남자들의 의리를 얘기하는데, 아줌마 의리가 진짜 의리더라구요. 최후까지 남은 190여명 되는 인원 중에 150여 명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매장 가서 일할 수 있고,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였어요. 그럼에도 그들은 의지적으로 복귀 안 하고 투쟁을 끝까지 한 거죠. 해고자를 두고 갈 수 없었던 거예요. 만약 복귀 하더라도 몇 명은 남을 텐데 그들만 두고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컸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마음도 컸어요. 그리고 비정규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지요. 그런데 싸움을 하다보니까 40여 년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은 너무 순종적이었던 거죠. 생활에 보탬이 되게끔 돈 벌고 아이들 돌보는 소시민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을 던져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걸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거죠. 나중에라도 “엄마가 이렇게 했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사실 올해 들어서는, 솔직히, 오기로 버틴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뭐였나요.

조합원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경제적 문제였어요. 정규직이더라도 연봉이 1500밖에 안 되고,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실질적인 가장도 많았어요. 500여 일 동안 수입 없이 파업하는 게 정말 어려웠지요. 대부분 아이들에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연령층이고, 올해 새로 대학에 보낸 조합원들도 있었죠. 그래서 복귀한 조합원도 많아요. 당장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전망이 확실치 않아서 힘들었어요. 과연 어떻게 될까. 대충 언제쯤 이긴다는 확신만 있으면 참을 수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죠. 이랜드를 보면 너무 막막했어요. 그게 너무 힘들게 했어요. 집행부인 저는 한 달에 최소 30만원 정도, 교통비라도 주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어요. 올해 여름에는 촛불집회, 각종 집회마다 쫒아다니며 매일같이 얼린 물을 한 병에 천 원씩 팔았죠. 추석 재정사업도 하면서 기적같이 여기까지 왔어요. 기적같이 겨울을 지내고 겨울보다 더 힘든 봄을 지내고 지금까지 온 거죠. 그런 처절함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구치소에서 60여 일 계시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실 해고되고 구속도 되었지만 이랜드에서 15년 동안 노조하면서 구속은 처음인데, 어떻게 보면 처음이란 게 이상한 거죠. 60여 일은 사실 휴가 같은 기분이었어요.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니 편히 쉬었죠. 회의도 없고 전화도 안 하고 누가 독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도 없고. 다만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된 것 같아요. 수배와 구속 생활이 5개월 간이었는데,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시간이 지나니까 드러나고 있어요. 다 크고 나면 채워주려고 해도 채워줄 수 없잖아요. 더 늦기 전에 그걸 채워 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기독교대책위가 구성되어서 도왔지만, 교회나 기독인들에게 오해를 사거나 비난을 받지는 않았나요. 

많죠. 이랜드 내부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회사는 잘못한 게 없다. 회사는 법을 지켰고 노조가 확대 왜곡 과장해서 파업을 하는 거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식의 인식도 꽤 있었어요. 노조가 무리한 걸 요구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사실 홈플러스가 하는 걸 봐도 그렇지만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아요. 외주화를 안 하면 당장 비용이 절약되거든요. 교인 중에는 그런 분도 있었지요. 사랑의교회 앞에서 농성할 때 “고생 많으시죠. 기도합시다” (웃음) ’설사 사장이 잘못했더라도 기도해야지 왜 여기까지 와서 데모를 하냐, 데모는 나쁘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왔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은 소수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박성수 회장도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양심으로 하지 않겠냐, 그걸 노조가 믿어라’ 이런 얘길 했어요. 마치 이명박이 장로니까 잘 알아서 다 하겠지 그런 식이죠. 그런 분들을 100% 이해시킬 순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기독교인이 사회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분들의 잘못이 크다고 봐요.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라는 생각을 처음에 하셨는데 이건 아니다 라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항상 있었죠. 하지만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2000년 투쟁도 비정규직 투쟁이었어요. 그때 우리 구호가 ‘못 살겠다 50만 원, 먹고 살자 70만 원’이었어요. 정말 소박한 요구 아닌가요. 파업 첫 날 신촌 본사 마당에 천막을 치는데, 회사 예배 시간에 정말 열심히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 그 천막을 철거했어요. 그러면서 왜 아르바이트 주제에 남의 회사에 와서 난리를 치냐고 했죠. 그때 가장 강하게 기독교 기업이라면 이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파업 도중에도 그런 일은 많았어요.

솔직히 이번 파업을 하면서 걱정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 기대가 생긴 건 2000년엔 100명이 싸웠고 이번에는 처음 뉴코아까지 합치면 1000명 넘게 싸웠거든요. 이미 6월부터 뉴코아 외주화 문제가 언론에 많이 알려졌어요. 월드컵 매장 농성 전부터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었죠.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 회사도 어쩔 수 없겠지, 그리고 홈에버를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홈에버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거다. 어쨌든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월드컵 매장에서 농성하고 추석까지 버텼어요. 구속될 거 뻔히 아는 상황에서도 그런 미련이 있었던 거죠. 그 후에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서 나온 얘기가 우리가 처음에 ‘월드컵 점거할 때 회사는 1년을 준비했다’는 말이 들렸어요.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얘길 들었을 때 충격이었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잖아요. 그리고 홈에버 팔 때, 나는 진짜 홈에버 안 팔 줄 알았어요. 이랜드가 홈에버를 팔면서 손실이 엄청 났어요.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홈에버를 팔지언정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입장을 보면서 충격이 컸죠.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이랜드가 기독교 회사가 아닌 건 오래되었어요. 그래도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양심, 도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소한 노조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다는 걸 알았죠. 정말 무엇이 기독교적인가요. 기업의 논리는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비용으로 계산해요. 그렇다면 기독교 기업이란 이름을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 이름을 빌미로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죠. 아직도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기 때문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만약 기독교 기업이라고 한다면, 이윤도 내고 사람도 살펴야 하니까, 두 가지 모두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죠. 어떻게 보면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요. 하지만 감정이 있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투자를 하고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랜드는 그런 사람을 선을 긋고 구분해요. 상위 10%는 키우지만 나머지 90%는 원자재처럼 생각하는 거죠. 또 그걸 잘 활용하는 게 신자유주의적 경영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에 대한 연민, 동정이 있어야죠.

대담 및 정리 이광하 편집장 terry33@hanmail.net
사진 유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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