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환자여야 한다. 질병이 걸려 있든지 아니면 교통사고나 낙상과 같은 상해를 입었을 경우와 같이 몸에 이상이 있어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이 병원에 입원 할 수 있다. 전혀 고치고 손댈 필요가 없는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으며 병원에서는 가뜩이나 환자가 넘치는 데 건강한 사람을 받을 수도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교회는 천사같이 의로운 분들만 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교인만 보면 주눅이 드는 사람이 있는 데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에 등록하고 신자로서 생활하는 분들은 모두가 치료받을 필요가 있어서 하늘의 큰 손이 교회에 불러모은 것이다. 병원에 입원할 때도 자기 의지로 입원하는 사람이 있고 타의에 의해 입원하는 분들이 있듯이, 교회도 자기의 의지로 출석하게 된 사람이 있고 타인의 인도에 의해 출석하게 된 분들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인도되어 왔든 일단 교회에 온 분들은 모두가 치료받을 필요가 있어서 부름 받아 온 분들이다. 하나님은 온전한 분들보다도 이러한 온전하지 못한 분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치료하고 교육하고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신다. 예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눅5:32). 바울도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다(딤전1:15). 하물며 우리야 말할 것도 없이 죄인임에 틀림없고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다(표준, 롬3:10).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이유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는 데 있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니. 그렇다면 창피한데 교회에서 뛰쳐나가면 어떨까? 그건 잘못된 교만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자신이 환자라는 것이 부끄러워 환자이기를 그만두고 뛰쳐나와 의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면 아마 그는 머지 않아 건강에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교회에 부름 받은 사람은 그대로 사회에 두면 자기도 망하고 사회도 망할 가능성이 있어 하늘에 계신 큰 손이 교회라는 곳에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창피해서 교회를 빠져나가면 그런 행위는 신에 대한 거역일 뿐만 아니라 사회도 망치고 자신도 망치는 행위다.  

환자가 잘나서 병원에서 부른 것이 아니듯이 신도들이 잘나서 교회로 부른 것이 아니다. 큰일날 심각한 병이 걸려서 병원에서 부르고 교회에서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환자의 치료는 의사가 해야한다. 먼저 병원에 입원한 선배환자가 치료하는 게 아니다. 선배환자가 그동안 병원생활의 경험으로 간단한 치료방법을 알아 늦게 들어 온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 치료는 예수께서 하시는 것이지 목사가 하는 게 아니다. 목사가 여러 가지 신앙경험과 성경지식으로 신도들의 영적 치료를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목사는 병원 환자의 조장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병자 수용소에 가면 각 방마다 조장이 있다. 그러나 그 조장도 정신병환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지 결코 의사는 아니다. 정신병동의 질서를 위해 세워 논 조장일 뿐이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질서를 위해 세워 논 사람일뿐이지 목사가 메스를 들고 환자를 치료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건 날강도 짓이요 월권행위다. 목사는 신도의 조장으로서 겸손히 치료자이신 예수님을 초청하고 기다리는 일을 해야만 정직한 목사다. 바울선생도 그래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요 목표를 향해서 달려갈 뿐이라고 하였다(표준,빌3:12).

그런데 문제는 환자가 너무 심각한 상태에 이르면 귀가 엷어진다는 것이다. 주치의사의 말을 들어야 되는 데 마음이 조급하고 병은 빨리 낳지 않으니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 용하다는 약은 다 써보게 된다. 용하다는 의사 찾으러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다가 건강이 더 손상되고 잘 듣는다는 약 먹느라고 이 약 저 약 함부로 먹어 간과 신장에 무리를 끼쳐 건강에 더 큰 손해를 끼치는 예가 너무도 많다. 영적으로 연약한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영적으로도 연약해 지면 귀가 엷어진다.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 신통한 교회 찾아다니고 이 목사(환자조장) 저 목사(환자조장) 찾아다니느라고 영적으로 지치고 육적으로 지쳐 더 심각한 상태가 된다. 신학지식이 없으니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영적 혼란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이제 아예 교회가 혐오스러우며 저주하고 떠나고 싶다. 마치 질병에 지친 환자가 병원 놈들 다 믿을 수 없다고 욕을 하고 병원을 떠나듯이 귀가 엷어 여기 저기 방황하던 신도는 교회 놈들(목사) 다 믿을게 못된다고 교회를 떠난다. 환자가 스스로 병을 고치겠다고 병원을 떠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듯이 영적 환자가 스스로 치료해 보겠다고 교회를 떠날 때 이미 그는 영적 죽음의 상태에 이른 것이다(롬8:6).


2.

환자나 신자나 착각은 금물이다. 잘나서 환자가 된 것이 아니요, 잘나서 신자(목사포함)가 된 것이 아니다. 격리시킬 필요가 있어서 병원으로 교회(Temple)로 수용한 것이다. 요즈음 환자들이나 신자들 보면 건방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죽을 목숨 구해 주니까 세상 마구 정죄하고 인간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 부인이 상담을 하고 싶다고 아침 일찍 전화를 주고 찾아오다. 남편과 함께 못살겠단다. 이혼을 해야겠다나. 서너 달 전에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다 높은 데서 떨어져 죽을 뻔한 남편이 병원의 치료와 부인의 정성어린 간호로 가까스로 살아 이제 겨우 움직일 만 하니까 고마운 마음은 조금도 갖지 않고 부인만 괴롭힌다나. 병원에 드러누워 각종 시집살이는 다 시키고 여러 사람 있는데서 함부로 욕지거리에 손찌검까지 해대니 어떻게 살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에 성할 때도 날마다 괴롭혀 몇 번 이혼을 결심한 적이 있었지만 다리 부러진 남편이 불쌍해 참고 있었더니 해도 너무하다는 거다. 일자 무식이라 한글도 몰라 시내버스 탈 때도 부인이 알려 주어야 탈 수 있는 사람. 술만 먹으면 집에 들어와 부인을 때리고 살림을 내 팽개치며 부인을 종 부리듯이 하는 막노동쟁이를 남편이기 때문에 참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이 부인의 말이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혜를 잊어버린 남편의 거칠은 행동에 대한 말이 남의 남편의 말이 아니고. 나의 모습이요 우리의 행동이요 우리 신앙인에 대한 고발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구원받았다는 자만심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교만했는가. 죄인이라 교회에 불려와 회개시켜 새사람 된 용서받은 죄인인 줄을 까맣게 잊고, 의인이라 교인이 된 줄로 알고 믿지 않는 자들이나 다른 종교인들에게 사탄 마귀라고 교만방자하게 대하는 기독교인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인 주제에 본래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심판자인양 마구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가.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신자가 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과격한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사회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어떻게 간과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마25:1)이 우리와 함께 살 수가 없어 이혼해야 되겠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상처받은 부인 남편의 오만한 행동이 꼭 우리의 모습 같아 부끄럽기만 하구나.

그렇다고 무신론자 세인들이 문제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고 다 건강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너무 병이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할 필요도 없어서 입원시키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신이 병든 사실을 몰라 입원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입원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더욱 심각한 병이 든 사람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질병을 체크하기 위하여 정규적으로 입원하는 사람보다 전혀 체크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사람이 더 위험한 질병에 걸려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나마 병원(교회)에 입원해 있으므로 가능성이 있다. 언제고 고칠 수도 있고 더 이상 나쁜 병에 전염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질병 옮겨 붙여 줄려고 애쓰는 것 보았는가? 하나라도 더 고치려고 노력하면 하였지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서 도둑질 가르치는 것 보았는가. 새벽마다 기도하며 좋은 사람 착한 사람되라고 가르치면 가르쳤지 아마 도둑질 가르치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온유하여 남을 존중하고 의사의 지시에 순종하여 자기 치료에 열심을 내는 환자는 자기 건강도 회복하고 동료 환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듯이, 신도들도 귀가 엷어져서 이 약 저 약 먹으러 다니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입원한 병원(교회)에서 주치의(예수님)의 지시를 잘 따르며 허한 마음을 다스리고 소망을 가지고 자기 삶에 충실하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해 나아갈 때 건강한 미래가 우리 앞에 열려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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