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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운동가 남도기행 이야기(2)
숨은 동역자를 찾아서 - 둘째날
  • 김은선 (norangjoa@naver.com)
  • 승인 2008.12.01 15:56

둘째 날 아침, 우리는 간단하게 기도회를 가진 후 다시 차를 달렸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42번지에 위치한 민들레공동체를 향해서였다. 민들레공동체는 1991년에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로, 하는 일은 농촌 교회 지원과 농촌지역사회 개발을 돕는 일, 예술 공방 운영을 통한 농촌문화운동, 대안기술센터를 통한 대안기술 보급, 제3세계 선교와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운영 등이다.1) 시골 길은 시골 길인지라, 이 골목이 맞는지 저 골목이 제 길인지 여러 번 헷갈렸다. “이리 쭉~ 올라가면 되” 하는 마을 분들의 설명은 쭉 올라가는 중간중간 나오는 갈래 길 앞에서 우리의 은근한 원망을 샀다.

그렇게 도착한 민들레공동체, 흙으로 지은 집 지붕에는 키 낮은 잔디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프로그램 답사로 방문한 영안교회 정호열 전도사님 내외와 함께, 민들레공동체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따끈한 메밀차를 내어주시고 공동체에 대한 안내를 해주신 분은 민들레를 닮은 차분한 목소리를 내시는, 권근숙 선생님이었다. 

   
 
  ▲ 경남 산청 민들레공동체에서  
 

민들레공동체에서는 6000평의 땅에다 모두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공동체 식구들과, 공동체를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쓴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식구들은 약 20~30명으로, 현재 다섯 가정과 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고 있다. 민들레학교는 오전은 일반 교과로, 오후는 활동 위주의 자립 교과로 운영되는데, 주로 농사나 건축, 대안기술, 옷 만들기 등이다. 권근숙 선생님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보고 놀라요. 아이가 자신감이 생기고 활달해졌다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땐 참 보람되죠” 하며 옅게 웃으셨다.

민들레공동체에 있는 건물은 흙벽 안을 볏단으로 채웠다. 우리나라 토속 기법은 아니지만 대안기술의 하나로, 보온과 방음 효과가 있고 볏단 속에 기관지에 이로운 균들이 있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건물 지붕에서 자라나는 풀들이다. 이 풀들은 일부러 지붕위로 흙을 올리고 씨를 뿌려서 기르고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지붕에 풀을 얹으면 열대야가 없어져요.”

집안의 온도를 내리는 방법으로 이런 친환경적인 생각을 하다니. 잔디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참 여러 번 올려다보았다.  또한 태양전지판, 풍력발전기, 자전거 발전기 등 대체에너지 사용에 마음을 쏟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의 태양전지판은 국가보조금 60%, 지자체보조금20%의 지원을 받아 설치했다고 한다.

태양전지로 모아지는 전력은 한전으로 넘어가, 공동체에 설치된 계량기는 그만큼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 반면 풍력발전기는 태양전지판에 비해 설치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1시간 당 1,000W를 생산해 내어, 시간당 500w를 내는 자전거 발전기보다 위력이 세다. 또 대안기술센터에는 폐식용유를 활용한 바이오디젤 생산설비와, 태양의 복사열을 이용한 태양열 오븐, 변에 물과 풀을 넣어 발효시켜서 가스를 얻는 설비들이 설치되어있었다.3) 

   
 
  ▲대안기술센터에서 태양열 오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마지막으로 천연염색과 손바느질, 천연종이 만들기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공방을 구경한 후, 우리는 다시 남원으로 출발했다. 남원은 동행한 김종환 목사님(통일시대평화누리 사무국장)의 고향, 목사님은 신나 하시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남원 충절교회. 이곳은 정원섭 목사님이 계신 곳이다.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정원섭 목사님은 우리를 보자 반가워하시며 선물인 듯 사슴농장의 문을 열어주셨다. 사슴농장과 오소리농장은 목사님과 충절교회 교인들에겐 아주 소중한 재원이다. 목사님은 농장에서 나온 수익으로 자비량 목회를 하고, 대부분 고령인 교인들은 농장에 나와 보수를 받고 함께 일한다.

   
 
  ▲정원섭 목사님의 사슴목장에서. ⓒ뉴스앤조이  
 

“그 땐 정말 대단했지.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하는 날 우리 악대가 가장 선두에 서서 행진했어. 군악대랑 우리 재소자 악대가 있었는데, 군악대 대장이랑 내가 미리 만났지. 아, 너희는 도둑놈들 아니느냐구,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가야 된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래 우리 도둑놈이다- 근데 광주 시민들을 누가 죽였느냐, 군인이 죽이지 않았느냐했지. 그러니까 아무 말 못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가장 앞에 나갔어. 아, 내가 밖에 있었으면 그 때 촬영한 테이프를 구했을 텐데 안에 있는 바람에 못 구해서 정말 아쉬워.”

여기서 ‘안에 있었다’, ‘재소자’란 단어에서 눈치 챘겠지만, 정원섭 목사님은 교도소에서 15년간 복역한 분이다. “몇 번이나 나를 잡아넣으려고 했었지. 그러다가 결국 10월 유신 전에 잡아갔던 거야.”  1960∼70년대 초반 청년들의 농촌계몽운동을 지원하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을 도왔던 목사님은 정권의 눈엣 가시였다.

결국 목사님은 197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춘천 강도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 선고를 받는다. 수감자들의 멸시를 받으며 자살을 시도한 것도 여러 번. 하지만 나중엔 수감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검정고시를 보도록 돕는 등 일명 ‘정 선생’으로 통하며 존경을 받게 된다. ‘정 선생’의 제자 중 3명은 목사안수도 받았다고 한다. 1987년 12월 목사님은 15년 2개월 7일 만에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2007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법당국에 정 목사 사건을 재심하라고 권고해, 현재 사법당국은 이 사건을 재심중이다.

“나 죽고 나면 여기 내려와서 목회 할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야. 여기서 목회 하려면 나처럼 자비량으로 해야 되는데. 나 떠나고 나면 여기 노인들 어떻게 해...” 긴 시간 꼬불꼬불 답답한 터널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끝에서 맛보는 신선한 공기와 햇살로 그동안의 막막하고 억울한 시간을 승화시켜 내는 힘이 있는 것일까.

기가 막힌 시간을 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콧날이 시큰거리게 하는 인생여정을 풀어낸 정원섭 목사님의 눈에는, 인생에 대한 회한이나 원망은 없고 지금의 삶과 사역에 대한 감사와 소망만이 비친다. ‘목사님,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충절교회 교인들과, 또 우리를 맞아주었던 그 우아한 사슴들도요....’ 우리는 고개숙여 인사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목사님의 이야기가 실린, 2005년 2월호 「기독교사상」을 손에 들고서.

대전 동구 대성동, 아파트 단지 안 작은건물에는 ‘마당교회’가 위치 해 있다.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새길민생상담소’, ‘강아지똥어린이도서관’ 글씨. 얼마 전 목사안수를 받으셨다는 김철호 목사님은 거칠고 묵직한 손이 참 잘 어울리는,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 반가운 분이었다.

 “요즘 아이들 극심하게 경쟁학습을 하잖아요. 경쟁하습을 하면서 아이들의 인권도 무시될뿐더러 그 와중에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들이 사장 되는 일이 많이 있잖아요. 아이들이 책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대여하는 것을 보면서 책이랑 뒹굴고 씨름하고 책이랑 노는 그런 마당을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강아지똥어린이도서관’ 이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 자유롭게 이곳에서 책을 보고 읽고 뒹굴며, 방학 때는 북아트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함께한다. 

   
 
  ▲ 마당교회 입구ⓒ뉴스앤조이  
 

새길민생상담소는 김철호 소장님이 빈민과 소외된 이들을 위해 열어놓은 빈곤, 노동 문제 상담소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문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상담하고 돕는다. 모두 하나님나라를 실천하고 확장시켜나가는 운동의 일부다.

 “한동안 제가 있던 공동체가 해산이 되고 하면서 나는 열심히 하나님나라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스스로 고통스러웠거든 그래서 할 일은 없고 도망 온 것이 신학대예요.”

김철호 소장님은 신학교에 가기 전 청주에서 일용노동자들과 10년 동안 자활공동체를 꾸려 생활했다. 하지만 IMF를 맞아 공동체가 해산되면서 어려움에 부딪히자 주위의 권고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더 큰 방향으로 확산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목회적 접근으로, 하나님나라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김철호 소장님의 꿈이다. “농사짓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아니면 도시에서 노가다를 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그럴 수도 있고 도시에서 꽃 장사를 하는 하나님나라 공동체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없지만 결국엔 그렇게 되리라는 꿈, 김철호 소장님의 아름답고 귀한 꿈에 많은 이들의 기도가 보태져 결국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김철호 목사와 구교형  사무총장의 대화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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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 광야의 함성 2008-12-03 17:43:02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이분들을 발굴하여 기사하는 언론이 있으니
    희망은 있습니다. 문제있는 교회들은 이 참에 회개하세요   삭제

    • 울어도 못하네~ 2008-12-03 03:31:14

      말이 15년 2개월 7일이죠~
      정말 기네요~~
      군대 30개월도 안 가데요~
      끝으로 노가다는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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