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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서평]나는 이 책을 읽고 회심한다
<회심> 짐 월리스 지음, 정모세 역,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 복음과상황 (goscon@newsnjoy.or.kr)
  • 승인 2008.11.28 10:55

   
 
   
 

내가 짐 월리스(Jim Wallis)가 쓴 <회심>의 서평을 자청한 것은, 일종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반드시 짐 월리스를 알려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 말이다. 짐 월리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유독 내가 깊이 빠져든 얼마 안 되는 ‘미국’ 기독교인이며 또 내가 그의 사상과 행동에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그에게서 한국 기독교와 정치의 희망을 찾는다고 한다면, 심지어 <복음과상황>의 독자들 가운데서도 (비록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의 한 지인에게 이미 출간된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청림출판)와 이번의 <회심> 가운데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느냐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이 <회심>을 주저 없이 최우선으로 꼽았다. 기독교인에게 회심이란 무척 익숙한 개념이기도 하지만, 월리스의 주장처럼 가장 오해되고 피상적이 된 개념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볼 때, “물질적 축복, 번영, 그리고 권력”이 한국 기독교의 중심 주제가 되어버린 상황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의 상식의 뿌리부터 흔들어놓는 이 <회심>을 기회로 삼게 만든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신앙의 기초부터 완성에까지 이르는, 한편의 교리서처럼 읽혀진다. <회심>은 단순히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신자가 행하는 영적 전향(轉向)을 의도하는 책이 아니다. 여기서 “영적 전향”이란 말 그대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인간내면의 영적인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전향은 세계관을 바꾸며 우리가 처한 세계를 실제로 바꾸는 초석이 된다. 전향이란 기존의 기독교와 세상의 관점에 대한 파악과 전환을 포함한다.

회심의 재정의
 
월리스에게 있어서 회심은 빈곤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문제로부터 전환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세상에서의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이며 신학적인 문제다. 돌이킴은 변화된 세계상과 비전에 대한 수용과 이전의 세계관에 대한 인식의 부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원칙과 원리에 순종하거나 복종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회개와 회심은 신앙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표현들과 논리들은 상당히 교리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해방과 자유는 세상이 믿고 섬기는 우상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이다. 현대에서의 우상은 신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신(神)처럼 군림하는 것들이며 우리가 실제로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들이다. 그것은 풍요, 권력, 자만, 국가적 자긍심, 성, 종족, 군사력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나라의 의미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내면과 영적인 부분에만 침투하는 것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공동체에 침투한다. 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과 이상이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 질서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통해서 잘 드러나있다. 산상수훈의 특징은 인간사의 모든 부분을 다룬다는 것과 철저하게 전복적(顚覆的)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사도행전에서 잘 나타난다. 이 공동체는 사랑과 상호 돌봄으로 그 특징을 보여준다. 성령의 역사는 치유와 기적과 은사뿐만 아니라, 경제적 나눔으로 통해서 드러난다.

현대기독교의 모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현대의 기독교는 사도행전의 새 공동체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기독교는 변화가 아니라, 자기애와 관련된 향상과 진보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신들(돈과 권력과 성공)을 겸하여 섬기고 있다. 즉 복음의 사회적 의미는 상실되고 개인의 복음만이 이 세상의 현상유지를 지지할 뿐이다. 세상에서의 죄(노예제도, 제도상의 인종차별, 부의 불공정한 분배, 성차별, 핵무기 경쟁 등)를 용납하면서도 우리는 기독교의 영적 가치를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세상에 침투해야 하는데, 게토화되거나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어 버렸다.

세상의 현실과 가치

세상을 보라. 세상에는 빈민층이 늘어간다. 미국은 도시빈민이 남겨지지만, 우리나라를 재개발의 이름으로 이들을 유배 보낸다. 국제적 전쟁을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작은 일부를 사용한다면, 빈곤극복 프로그램 1년 치의 예산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대기업들과 부자들을 지원하는 세금지원과 공적자금은 항상 가난한 자들을 위한 비용을 훨씬 상회한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로 나누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특히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아시아)의 문제도 그들의 유익을 위한 원조가 아니라, 경제적 수탈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남용된 탓이 크다. 우리는 ‘근면과 게으름’의 문제로 이 양극화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일하지 못하는 빈민도 문제지만 ‘일하는 빈민’(working poor)도 큰 문제다. 일을 해도 먹고살 수기에 부족한 수입! 부유한 나라들의 과소유(過所有)와 불의한 소유에서 비롯된 ‘영적 위기’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적 위기와 맞물린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월리스는 이것이 맘몬이라는 우상숭배의 결과라고 말한다.

복음의 의미

복음은 로마시대에도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에 대한 해방과 자유의 소식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복음주의운동은 노예제도의 폐지와 여권신장과 경제정의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풍요와 권력으로 인해서 복음의 진수를 잊어버렸다.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에서 행해지는 군사비증강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공자원지원의 삭감을 지지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이와 같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문제는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의 단골메뉴이기도 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와 같은 정신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잘 드러나는 초대교회(나눔과 분배)를 지나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미국의 부흥의 시대에도 특별히 노예제도를 영적인 문제로 신학적인 문제로 여겨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월리스는 빈곤이 현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긴다.

전쟁과 평화의 해결

이 문제는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행동으로 억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 주도의 군사력의 동원은 방법 자체도 정당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거짓을 행한 것으로 드러난다. 월리스는 “정당한 평화주의”를 주창한다. 기독교인은 교회가 평화를 추구하고 세상의 폭력을 억제하고 제안하는데 나서야 한다. 기독교인은 고대 이스라엘사람들처럼 무기나 군사적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기독교인은 화평의 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군사행동의 우선주의에 반대해야 하며 그것을 축복하거나 옹호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저자는 폭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수단으로서 기도를 제안한다. 기도는 폭력과 증오와 적대감을 상대적이게 만들며 평화와 위로와 사랑을 갖게 만든다.

공동체의 목적

하나님은 공동체 속에서 부르시며 자신의 뜻을 구현하신다. 칼빈은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공동체이며 신자들을 양육하는 공동체이다. 또한 이 공동체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대화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예언자적 삶과 목회적 삶의 일치와 통합을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양면적 삶은 우선적으로 교회에서 통합되어 실현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예배의 재정의

이 영적 예배는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세상과 우상을 상대시한다.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선지자적 부르심을 체험하게 만든다. 예배는 자유와 기쁨과 일치라는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게 해준다. 예배 가운데 찬양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하나님)과 태도(온전한 충성)와 도리(실천)를 깨닫게 해준다. 예배에 사용되는 성만찬은 유월절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를 해방케 하시는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체험케 해준다. 십자가는 가진 자들에게는 포기를, 못가진 자들에게는 해방에 대한 약속 혹은 소망의 징표다. 그러나 가진 자들에게도 재물을 우상시하는 것에 대한 “해방”의 말씀은 전해진다. 절대 권력을 포기하시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예수는 자신의 경우처럼 부자들에게도 부와 권력의 절대 권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촉구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신뢰와 상호협동을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는 양자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실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의 의미

다른 종교들과 예수의 가르침의 차별성은 부활에 있다. 예수가 세상권력과 불의의 희생물이 아니셨다는 점은 부활을 통해서 입증된다. 이 부활은 예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세상을 회심케 한다. 그는 사망을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게 만들었던 정사와 권세와 통치를 이기셨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예수는 그것들과 싸우셨지만, 그것들과 편승하거나 타협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이용하셔서 세상을 이기신 것이 아니다. 마치 예수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을 때 사람들이 오해하였던 것처럼, 예수는 귀신의 권세로 귀신을 내어보내신 것이 아니었다. 빌라도의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세상적” 물음(“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회피나 모호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이에 대한 정당한 대답이었다.

회심의 요청

나는 월리스의 책을 통하여 회심한다. 그 회심의 증거를 서평과 기고로 증언한다. 월리스는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년의 압제와 왜곡의 세월을 살아온 한국 사람들에게도 ‘고대하던’ 해방의 메시야와 그의 나라의 도래를 예비하는 세례자 요한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월리스가 (공화당과 민주당에게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구체적인 메시지와 활동방안에 대해서는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를 참조하면 된다.) 그러나 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회심이 우선해야 할 것 같다.

성기문 (서울시냇가교회 협동목사, 전북개혁국제신학원 구약학 교수) k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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