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학교 내에 있는 학문과신앙연구회가 11월 2일부터 4일까지 개최한 [한동기독교세계관대회]나 학원복음화협의회가 11월 9일 개최한 [기독청년대학생포럼]을 통해,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새로운 꿈틀거림을 감지하게 된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보던' 폐쇄적 신앙구조의 틀을 깨고, 이웃과 사회와 민족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한 기독청년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한동대와 복음주의 학원선교단체의 연합체인 학복협이 각각 개최한 이번 행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한동대가 개최한 세계관대회의 주제는 '한국 사회 속의 그리스도인'. 나만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의 모습을 극복하고, 이웃과 사회로 신앙의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는 통전적인 기독교세계관의 구체적인 접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장 서경석 목사는 두 번의 주제강연을 통해, 기독시민운동에 있어서 교회의 교인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특히 기독학생들이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서경석 목사는, 70년대와 80년대 인권투쟁을 선도한 바 있는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전문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정론 구축의 기독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 목사는 또, 지난 10년간 전무한 기독학생운동의 현실을 지적하고 성서적 신앙에 바탕을 둔 바른 역사의식과 현장의식을 지닌 각성된 기독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지성인 사회 속에 물들어 있는 기독교인에 대한 냉소주의의 원인과 해결방안, 사회적으로 지도급 위치에 있는 기독교 인사들의 반사회적 행위의 원인과 해법, 신세대와 함께 하는 기독시민운동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 시민운동단체에서는 전 지구촌나눔운동 박승룡 간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유해신 처장, 기독교 언론매체에서는 <복음과 상황> 서재석 편집장·<새벽이슬>·이진오 대표·<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 현장에서의 활동경험을 근거한 얘기를 주로 나눴다.

활동가들이 현장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얘기를 끄집어냈다면, 교수들은 각자 전공분야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적 분석 틀을 제공했다. 이준일 교수(법학부)가 발표한 [기독교 정신과 아동의 인권], 김두식 교수(법학부)가 발표한 [기독교 정신과 평화주의]라는 논문은 모두 이 땅의 소수자(청소년·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제공했다. 류대영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의 [북한 기독교에 대한 남한 기독교의 책임], 박희주 교수(기학연 연구위원)의 [한국의 생명복제 논쟁), 김연종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의 [다원주의 문화와 기독교] 등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주제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실속있는 작업이었다.

한동기독교세계관대회는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로 열렸다. 작년에는 '현대사회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의 적실성'을 주제로 이만열 교수와 백종국 교수가 강의한 바 있다. 올해 주제는 첫 번째 심포지엄을 토대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단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획과정에서부터 발표자들과 주최측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심포지엄의 질을 확보하려고 철저하게 준비한 결과였는지, 주말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3일간 연인원 1,700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한동대 행사 일주일 뒤에 열린 학복협 포럼 역시 기독교세계관의 보다 구체적인 논의의 장으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한동대 행사와 맥을 같이 한다. '절망의 시대,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사회적 문제의 한 가운데 기독교인이 자리잡고 있어 도덕적 지탄을 받을 뿐 아니라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기독교의 현주소를 반성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의 장을 연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세계관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 합동신학대학원 송인규 교수가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는 주제로 문을 열었다. 송 교수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구조악을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성경적 틀에 맞춰 차분히 설명해 나갔다.

이어 [캠퍼스, 기독인인가? 학생인가?] [직업, 소명인가? 수단인가?] [복음화, 전도인가? 참여인가?] 등 세 개의 분과토의가 진행됐다. 1분과에서는 '기독대학생의 우선순위, 캠퍼스 전도'(차성헌·CCC), '학생회 활동을 통한 캠퍼스 섬김'(이은창·새벽이슬), '캠퍼스 기독인의 자화상'(김용주·한양대) 등 학원선교사역을 하는 간사들이 발제했고, 2분과에서는 '복음전도의 장으로서 직장'(김대형·삼성탈레스), '소명의 장으로서의 직업'(최규창·한국통신), '직장의 구조 모순에의 도전'(민경중·CBS 노조) 등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었다. 3분과에서는 '복음주의권 사회참여의 조건'(이강일·IVF 협동간사), '기독학생운동:기독학생의 살아나기'(황용연·서울대 SCA 간사) 등 보다 진보적인 영역에 대해 선교단체 간사들이 발표했다. 문제제기성 주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 기독대학생들은 이분법적인 의식과 행동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양극화 구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고민이 발제와 토론 사이에서 진지하게 오고 간 것이다.

학복협 포럼 역시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석해 주최측을 흥분시켰다. 지난 여름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던 부흥콘서트에 수만명이 운집했지만 상당수는 동원된 숫자였다. 그러나 이번 포럼에는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번 행사 역시 기획위원회에서 수 차례 기획회의를 열고 발제와 토론 내용을 조절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 빛을 발한 셈이다.

물론 복음주의 대학생 그룹에서의 고민하는 정도가 여전히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하는 수준의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같은 날 저녁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회원들은 전태일 추모예배를 드리고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 이들의 운동방식을 전적으로 지향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 대해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공부하고 현장에 뛰어드는 실천적 삶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일 수 있다. 복음주의 학생들이 모처럼 진지한 고민의 장을 만들었으나, 그것이 아름답게 열매 맺기 위해서는 예수의 희생과 헌신된 삶을 그대로 실천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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