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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진정 큰 나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작은 나라, 그러나 큰 나라
  • 김민웅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00.10.04 18:18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 (마태복음 2장 5절-6절)

<비틀즈>의 전설적인 주역이었던 존 레논의 노래 가운데 "이메진(Imagine)"이라는 제목의 곡이 있습니다. 그 가사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번역하자면,

"한번 상상해봐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것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나를 꿈만 꾸는 몽상가라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나만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랍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들과 같은 마음을 품기를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모두 하나가 되어 살게 될 겁니다."

반전, 평화, 민권 이런 단어들이 질풍노도와 같이 시대를 움직였던 60년대를 거쳐, 좀 차분해진 1971년 그가 이 노래를 발표하자 세계는 그의 노래를 깊이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열광했습니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국경이 사라지고, 종교를 내세운 분쟁이 끝나며 지구촌의 생명을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가지고 서로 형제 자매가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자유를 노래한 그의 음성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치고 좌절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으로 다가와 주었던 것입니다.

1940년에 태어나 1980년, 정신이상자의 총에 맞아 마흔이라는 짧은 인생을 마쳐야 했던 존 레논의 말 가운데 그의 평생의 신념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All we are saying, is give peace a chance" 우리말로 하자면 이렇게 되지요. "우리가 말하려는 바는, 평화에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평화에게 기회가 돌아가기도 전에, 평화의 가치를 아예 묵살해버리는 세상에 대한 일깨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에 기회를 주자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산하가 미국의 폭격으로 묵사발이 되고 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맑은 하늘에 벼락같이 내린 포탄에 맞아 생죽음을 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존 레논의 노래가 더욱 가슴에 맴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온 가족이 멸절을 당한 뒤 간신히 살아남은 그 집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장면을 영국과 인도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폭격기 조종사의 얼굴을 꼭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가 도대체 누구 길래, 무슨 권리가 있다고 이런 불행을 자신의 가족에게 안기는 것이냐고 절규했던 것입니다.

이번 전쟁이 테러에 대한 응징이라고 하는데, 정작 싸움은 아프가니스탄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이 테러 조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이렇게 계속 희생을 당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매우 중세적 봉건성을 지닌 문제가 많은 체제입니다. 여성들에 대한 억압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에게 이렇게 공격을 받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령, 미국이 지원하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소수 특권집단이 권력을 누리는 왕정체제이고, 터키는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무참하게 탄압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 대해서 미국은 아무런 비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번 테러 사건의 주범들로 밝혀진 사람들은 대부분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테러 준비를 했던 곳도 미국과 독일이었다는 사실도 파악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한 명도 관련되지 않았는데 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미국의 공습으로 죽어가야 하는지 실로 분노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간인의 희생은 전쟁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병원과 학교, 그리고 적십자 센타까지 파괴되고 있으나 "오발"이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마을 전체가 폭격으로 파괴되어 그 희생이 막심했는데, 미 국방부는 테러 조직을 지원한 마을이기에 그런 결과를 당한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녕 그렇다고 쳐도, 그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무슨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누가 뭐라 해도 명백한 민간인 학살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우리도 이런 일을 겪었기에 더욱 마음이 통절해집니다. 꼭 이런 식이 아니면 테러에 대한 대응책이 달리 없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테러의 주범으로 미국에 의해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법정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하겠다고 한 아프가니스탄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부한 미국은 그래서 평화에 돌아갈 기회를 박탈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세계는 지금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경제는 날이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만이 답인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테러에 대한 비난이 전쟁을 정당화시킬 수 없습니다. 전쟁만이 테러를 막는 유일한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만이 가장 분명한 해답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상 모두가 미국의 이러한 뜻에 그대로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억하심정이 복받친다 해도 인간의 일에 있어서 테러가 답이 아니듯이, 전쟁 또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폭력으로 인간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 전쟁은 결코 정당한 전쟁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전쟁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을 절대로 편드시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화력을 가지고 임한다 해도 이미 지고 있는 전쟁입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부한 나라가 가난하고 황폐한 나라의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혹 얻는 승리라면, 그것은 치욕입니다. 아니 죄입니다. 그래서 정당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한이 풀리는 것도 아니며, 또 다른 테러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도 아닙니다.


탄저균 보다 더 무서운 영적 질병에 걸려 있는 미국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장 우선적으로 앞세우며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큰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해결의 방안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은 테러와는 그 규모나 범위가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의 희생도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지난 몇 주간에 걸쳐 날마다 아무런 항변도 해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아픔이나 양심의 고뇌가 없이 지낸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전쟁이 진행되어 가면 갈수록 이 나라가 오늘날, 매우 심각한 정신적 혼미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더더욱 절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을 생각하면 애초의 분노와 복수심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배려의 여지가 자꾸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암살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 정부의 공식 기구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체의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되거나 추방당한 아랍계 이민자들이 현재 1천 여명이 넘습니다. 미법무부의 공식적인 발표입니다. 그래서 민권단체들이 합동으로 미국 정부에게 이들의 신상과 현재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밝히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저는 이들의 이러한 인권운동에 대해서 미국의 양심이 살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과 사태 속에서 저는 미국이 오늘날 백색 가루 탄저균 보다 더 무서운 영적 질병에 걸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능력을 세상의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쓰기보다는, 이들을 억누르고 짓밟는데 쓰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힘을 내세워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행세를 해왔기에 작은 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또는 냉혹했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큰 나라가 세상의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사야서 43장은 흔히들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린 사람의 모습을 이사야서는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리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하나님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큰 소리로 요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그 깊숙한 곳에 있는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져 새살이 돋게 하고 절망의 자리에 희망의 등불을 진심을 다해 켜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감당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갈대를 꺾고 등불을 끄려는 힘이 그를 가로막고 나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의 기력이 그런 세상의 장애와 난관으로 약해지지 않을 것이며 아, 이거 안 되는 일이로구나 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생명의 질서를 세우는 일을 위해 자신의 몸과 영혼을 모두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자신에게 능력이 되는 것을 믿는 이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기도 한 것을 아는 이들의 선택입니다. 그 기쁨이 모두에게 기쁨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순종이 이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종은 맹목적 굴종이 아니라, 엄청난 힘을 가진 용기를 우리 안에 길러줍니다. 이사야서 본문에도 나와있다시피 다른 누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심"을 확신하는 것에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있는 사람, 나라, 시대가 진실로 평안하며 진실로 자신 있으며 진실로 큰 몫을 감당하는 은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절실하게 간구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실로 '큰 자'

하여, 한 인간의 삶, 한 나라의 영혼, 한 시대의 정신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삶이, 그 나라가, 그 시대가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사람을 살리려 들고, 저버려진 자가 없게 하며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나누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인간사의 비극은 그만큼 사라지고 절망의 자리가 희망을 일으켜 세우는 현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를 내세우고, 대접받기만을 원하며 누리려고만 드는 사람은 자신이 정작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해주지 않는 것만 불만으로 삼고, 힘이 생기면 상대를 함부로 짓밟기 일쑤이며 쉽게 오만해집니다. 작은 것을 멸시하며 큰 것을 숭상합니다. 사람의 진심을 알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편견과 단정을 확신하는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이 겪는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아파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니 만사가 힘으로 해결하려는 습성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기면 자신이 크다는 것이 입증될 줄로 압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가 진실로 <큰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마태복음 본문은 본래 미가서 5장을 인용한 대목입니다. 베들레헴이 비록 유대 땅에서 작은 고을이지만, 그 고을의 작음이 이제 그곳에서부터 역사 하실 하나님의 뜻이 작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큰 나라의 기틀이 거기에서 시작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 진정 큰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이는 자"입니다. 그것이 백성들에게 평화가 됩니다. 마태복음 본문의 원본이 된 미가서는 "그는 그 백성들의 평화가 될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거대한 통치 아래 놓여 있던 한 변방의 작은 땅 갈릴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사렛 예수의 삶이 결코 작지 아니한 것은 그의 삶 속에 인간의 생명을 먹이고 기르는 하늘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힘이 있는가 없는가가 그의 존재가 진정 하나님 나라에서 큰 가, 작은 가를 결정합니다. 세상의 큰 자들이라고 위용을 부리는 이들은 백성들이 먹을 것을 가로채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온통 신경을 쏟는다면,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생명의 떡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의 따뜻함, 그의 손길이 닿을 때 이루어지는 사랑의 감격, 그가 전하는 말씀이 사람들의 영혼에 하늘을 보게 하는 충격, 자신의 목숨을 온통 걸고 하늘의 생명이 우리들에게 주어지기를 간구한 희생,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힘이 되었고, 격려가 되었으며 생명의 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지럽고 힘겨운 세상살이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던 이들의 가슴과 영혼에 뿌듯한 감사와 평안을 안겨다 주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큰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출발과 원천은 바로 이런 것에 있습니다. 그런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의 삶은 그래서 그의 키와 그의 사회적 지위와 그의 명망이 어떠한가에 구애받지 않고 넓고 높고 광활합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허기지고 지친 생명이 들어설 자리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더 많이 생겨나는 것이 하나님이 정작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만 가득 찬 작은 나라가 아무리 모여봐야 그것은 큰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자기만 아는 소국의 분쟁으로 하루도 평화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미국이 진정 큰 나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빕니다. 자기만 아는 작고 쫀쫀한 나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 이 세상의 뭇 생명들을 먹이고 담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크기와 높이로 변화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속히 중지하고, 새로운 생명의 방식을 찾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진정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아닙니까?


우리는 관객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 작은 민족이요, 작은 나라 출신의 백성들이지만 그 안에 큰 나라의 꿈을 기틀로 세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나사렛 예수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의 능력에 대한 증언을 듣고 돌아가는 관객을 만들어 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되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는, 그래서 그 자신의 삶 속에 세상의 생명에게 먹일 것이 있는 큰 나라가 들어서는 그런 일을 감당하려는 결단과 각오, 그리고 보람을 선택하고 체험하려는 자리입니다. 속히 유아기에서 벗어나 자라나야 합니다.

스승 예수께서 다 해주시겠지 하고 손 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사렛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믿음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남이 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도우실 뿐이며, 정작 그 변화를 감당하고 체험해야 할 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큰 나라의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 예수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능력이 우리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큰 나라, 그 나라의 주역, 주체세력이 되라는 것, 그 큰 나라의 주도권을 쥐고 세상을 감당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비하면 자기 하나는 작다고 주눅들지 말고, 그 마음과 영혼에 그 엄청나게 커다란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은사와 축복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이 세상에 진정한 생명과 평화를 나누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길러주시며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과 감격을 체험하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혼미한 시대에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이 하늘의 나라가 임하여 세상의 소문과 세상의 소란과 세상의 분쟁에 휘말리지 아니하고, 올곧게 세상의 희망과 축복의 원천이 되는 기쁨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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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2
  • 민욱 2001-11-11 16:48:41

    도대체 어떤 근거로 미국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 가장 힘을 쓰는 국가라고 말씀하시는지 현실적인 예를 좀 말해주시지요...

    역사적으로 우리가 미국에게 당했던 아픔을 밝히는 것과 나라의 운명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덮어두고 다 우리 잘못이야 하는게 사대주의 아닙니까? 미국의 잘못을 말하는것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만들겠다는 의지이지 미국에대한 사대주의가 이니지요.

    미국이 최근 남아공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에 보이콧한 사실은 미국의 인권신장에 대한 의지가 얼마니 약한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얼마나 관심이 없는가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미국이 인권에 대해 가장 힘쓰는 나라라는 님의 견해에 대한 실제적 예를 부탁합니다.   삭제

    • jun w. kim 2001-11-11 05:48:45

      아래 20번 독자의견란에 관해 본인의 생각을 밝히려 합니다. 먼저, 귀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제가 아래 글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미국은 이상국가가 아닙니다. 또한 그 근본되는 이념인 '인간의 권리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완성한 나라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의 실현을 위해 가장(?) 힘을 쏟고 있는 나라에 불과합니다. 귀하가 예로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관해서도, 미국은 역사적 실험의 과정을 통하여 지금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금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전의 미국을 현재의 미국으로 인식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에 관해서도 저의 입장은 아래에 적은 의견과 다를바 없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것은 근본적으로는 우리 한국의 문제였습니다. 귀하는 전두환 정권을 미국이 만들었다고 보십니까?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말씀드린다면, 미국은 근본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싫어한 것으로 압니다. 다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나중에 인정한 것뿐이지요. 실례로, 전두환정권 당시 한국과 관계하였던 어느 미고위관리는 우리 한국민을 보고 "들쥐같은 국민'이라 하여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있습니다. 지금도, 박정희와 전두환의 출신 지역에서는 그들을 그리워하는 "신파극"을 연출하고 있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자주성이 없는 국민은 그 나라의 운명을 외국에 의존하는 "신판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삭제

      • 민욱 2001-11-10 23:44:42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상대의 인권을 중요시 했던 실제적 예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군사독재시절 미국이 우리와 긴밀한 외교를 했다고 해서 전적으로 미국이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정말 단편적인 시각인 아닌듯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대해 올바로 알게된 계기는 광주항쟁입니다. 광주항쟁 당시 미국은 전두환의 손을 들어주고 시민군의 도움을 거절해 광주시민의 인권이 땅에 떨어지게 했지요.  그리고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켜 가장 민주주의 정부인 장면 내각이 실각위기에 쳐했을때 미국은 박정희의 손을 들어줍니다. 물론 박정희가 미국에건너가 베트남에 한국군 파병이라는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적인 순종이 있었지만요.
        한국전쟁만해도 북한군에게 죽은 남한 민간인보다 한국경찰, 군인, 미군에게 죽은 민간인이 열배나 많은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이후 전시상황의 군 통제권을 미국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미사일 개발을500km이하로 제한하여 지금까지 비싼 미제 미사일을 팔아먹는 상술은 무슨 인권을 위한것인지요.  

        주한미군의 범죄, 베트남에 뿌리 화학물질로 인해 아직 기형아를 낳고있는 베트남의 어머니들, 불과 30여년전만해도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만 했던 흑인들,,, 과연 미국의 자유와 평등, 인권에대한 관심은 모든사람에게 평등하고 자유롭게 적용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jun,w님의 사대주의적 생각이 아닐지....
          삭제

        • Tyler 2001-11-10 18:46:14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함께하시기를 문안합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추구는 하나님의 의를 이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인류의 나아갈 바입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대외정책은 그 밖의 나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는 것은 남미에서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지원, 심지어 선거를 통한 합법적 민주정권을 군사 쿠테다로 몰락시킨 칠레의 경우, 오일 이권만을 챙기려는 중동정책,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쿄토 의정서 탈퇴, 최근의 UN 인종문제를 다루는 회의에서의 무단퇴장, 등등..

          미국의 대외정책 반세기는 실로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을 고통속에 살게 하였고,-우리의 조국도 예외는 아니었다-이제 고통 속에 살았던 그들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권 파괴에 대항하는 권리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9.11 사건을 통해 인류에게 주는 강한 음성을 우리는 실로 겸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주신 이땅에 더이상의 분쟁과 파괴가 없는 아름다움으로 이땅을 채우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분이셨고 지금도 한분이시고 앞으로도 한분이십니다. 인류는 각기 다른 말로 하나님을 말하나 그 본질은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이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피흘리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아 피흘림은 십자가에서 족하니라.  서로 사랑하라!   삭제

          • jun w. kim 2001-11-10 02:05:50

            아래 본인의 의견에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의 글을 읽고, 생각나는 몇가지 것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미국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이 미국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견해는 너무 단편적인 것같습니다. 사실 그 사상들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전, 이미 서구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 발전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그 사상의 근본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의 권리'입니다. 단지, 미국은 이 사상을 현실 정치에서 실험해 오는 국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온전히 이 사상들을 현실에서 완성하였느냐? 하는 점은 다른 질문입니다. 단지, 미국은 이 사상을 가장 많이 실험해 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도 이 '인간의 권리'는 중요한 외교의 잣대가 되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국가의 이익이 현실 외교정책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상대국의 '인권'상황을 도외시 하면서까지 그 상대국과의 외교를 수행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각의 국가에 인간의 고유한 권리로서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은 해당 국가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실례로 지난 세월 우리 한국이 독재정권하에서 인권이 심히 탄압받고 있었을 때, 그리고 미국이 그 독재정권과 외교를 계속 하고 있었다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민의 정치수준이 그 상황이 있게끔 만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미국은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외교문제화 하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인간의 권리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지금도 국내,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현실적 실현은 각국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이라는 외국나라에 그 이상의 실현마저 요구하는 일은 '신판 사대주의'라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또 다른 독자들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스마엘의 하나님'의 개념을 말하는 것에 대해, 저의 다른 생각을 몇마디 적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범위내에서 말씀을 드린다면, 이러한 '신관'은 너무 '구약적 사상'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스마엘의 하나님'을 이 세상을 만드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믿는 것은 바른 것일지 몰라도, 역사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고백하는 '신'으로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이신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시지, 무고한 생명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며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희생케 만드는 자들을 칭찬하시는 '신'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성과 부패성은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게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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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구 2001-11-10 01:40:26

              미국의 외교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데 해서는 동의합니다. 미국의 잘못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웃 사랑이 미국의 모든 국가정책의 기본정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는 정반대인 “증오”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무고한 백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테러리스트는 “evil doer” 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탄의 종이고 문명의 적이며 온 인류의 암적 존재인 것이지요. 왜냐 하면 그들은 바로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사탄의 손발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가난하고 못사는 저들을 돕고 사랑으로 복음을 선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선은 문명에 일격을 가한 야만의 손목을 끊어놓은 후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세워갈 국론이 정립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십시다. 이번 테러리스트를 그냥 나둔다고 가정해 봅시다. 수 많은 테러리스트 조직들이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테러리즘이야 말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 이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문명국들에 테러를 감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생화학무기, 핵무기 등 손에 닿는 데로 사용하여 문명과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종 노릇을 자기도 죽기를 자원하면서 해 내려 할 것입니다.

              아랍인들이 성전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하시는데 그들이 아랍세계의 5%에 지나지 않는 소수 극렬 분자인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약한 자의 생존권 투쟁에 동정을 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테러를 통한 생존권 투쟁은 적어도 크리스챤인 우리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모슬렘 세계에도 자기 개혁을 통한 복지향상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도와야 하겠지요. 그리고 참으로 그들을 이웃으로 사랑하는 일은 그들에게 유일한 진리고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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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 2001-11-09 12:36:58

                이스마엘의 하나님이나, 이삭의 하나님이나, 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지요.

                근데 왜? 시끄럽습니까?

                다 우리가 나눈거이지요!

                우리의 지식이 우리를 훼방하고 싸움질하게 한거이지요!  

                우리의 똑똑한 아집들이----

                테일러님 글 감사합니다.   삭제

                • Tyler 2001-11-09 11:01:22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셨지만, 이스마엘에게도 축복을 내리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 16:11)

                  "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창 17:20)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 21:13)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 21:18)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 21:20)

                  이삭에게 언약이 되신분도 하나님이시오 이스마엘과 함께 계신이도 하나님이신데, 그의 후손들이 서로 분쟁함이 어찌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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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욱 2001-11-09 04:18:51

                    jun w. kim님이 언급한 미국의 자유와 평등은 오로지 자국내에서만 국한되는 고귀한 이념이다. 미국에 대해 비판할때 자국내 정책에 대해 어느것도 비판한적이 없다. 문제는 강경한 외교정책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객관적으로 단점 투성이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극빈국인 아프간이랑 전쟁을 하는것은 아니다. 국제법상으로도 위법이고 유엔도 이 전쟁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아직 라덴이 범인이라는 정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탈래반측 라덴 제3국 인도안도 거부당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하는 전쟁이라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있는가?
                      단순히   미국=힘있는 나라=가진자 라서 비판하는게 아니다. 그 막강한 힘을 올바르게 써야할 청지기의 사명을 망각해서 이다.   삭제

                    • jun w. kim 2001-11-09 02:35:12

                      뉴스엔죠이 기사 가운데, 유독 많은 호응을 받는 제목중의 하나가 단연, "가진 자와 못가진 자"에 대한 내용들인 것같다. 미국 유학생활중 간혹 고국에 대한 생각이 그리워 이 웹사이트를 찾는 나로서도 이점이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여러 독자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가진 자 혹은 가진 나라=나쁜 것 혹은 비난의 대상, 그리고 못가진 자 혹은 나라=무조건적 옹호의 대상이라는 시각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 이점을 잠시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먼저, 이런 시각을 가지는 것은 바로 우리 한국인들을 포함한 모든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타나지만,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그 시기심 때문에 죽이게 된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타락한 인간본성은 남의 우월성과 우수성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말씀을 주신다. 남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주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일정양의 달란트를 주셨다. 나의 모습이 남과 다르듯이, 하나님의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그 양과 질에서 모두다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차이를 모두다 같게 하자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차이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인으로서 문제 삼아야 할 점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부여한 능력을 얼마나 충실히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미국이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도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자신의 능력과 힘을 오용 혹은 남용하여 약한 나라 아프카니스칸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뜻에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도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자국의 안보를 위한 전쟁을 수행하는 일이라면, 그 전쟁은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판단도 이제는 미국=힘있는 나라=피해를 당해도 정당하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선도 혹은 악도 아닌 나라이다. 현재까지 몇년동안 이 나라에서 살아본 나의 입장에서는, 미국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지적하였듯이, 역사적으로 국내외적으로 잘못된 일들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들이 이 나라가 가진 좋은 점들을 애써서 부정하게끔 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그 장점들 중에서도 이 나라의 기본되는 이념인 '자유'와'평등'은 여전히 고귀한 정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고귀한 이념도 여러가지 현실의 장애에 부딪친다. 종교적 우상, 민족적 우상, 인종적 우상, 전통적 우상, 사상적 우상 등등에 의해 그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자유'와 '평등'은 계속 그 싸움에서 승리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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