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조직신학의 거성인 프린스턴신학교의 A.A.Hodge(하지, 1823-1886)는 그의 유명한 저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크리스챤다이제스트) 제1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관한 모든 토론에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성경에 호소해야 합니다"(사 8:20; 행 15:15; 요 5:39,46).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10절에서 그는 위의 8절에 대한 더욱 자세한 분석을 시도하는 듯 하는데 바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대한 모든 논쟁을 결정하며, 교회회의들의 모든 결정과 고대 저술가들의 의견과 사람들의 주장과 개인들의 생각을 검토할 때에, 최고 심판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외에 달리 없으며(마 22:29,31; 엡 2:20; 행 28:25), 그의 판결로 우리는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위의 내용에 충실하게 기초를 놓게 된다면 신학이라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개개인의 주관성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상대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교리)의 절대성에 기초하는 객관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결론을 쉽게 도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8절과 10절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은 성령께서 영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내용은 절대성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기에 사람의 관점에 따라 바뀌어질 수 있는 성질인 상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교회의 교리적 순수성을 교회 안에 보존하기 위하여 이단과의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성경의 교리를 정립하여 왔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단은 개혁교회가 성경을 고백하는 그 내용과 의미(신앙고백적 교리 : 이것이 신학적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의 선조들은 철저하게 성경에 입각하여 또한 자신들 보다 앞서 가신 개혁신앙인들의 문헌을 중심으로 교리적 체계를 세워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해석 작업(교리체계)을 함에 있어서 개혁신앙의 선조들이 성경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핌으로 개혁교회는 탈선을 방지함과 더불어 그 정확한 개혁교회의 노선에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 번째 결론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됩니다. 반드시 성경의 절대성에 근거해야 하는 이 신학의 객관성은 결코 다양성(자유주의신학)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위에서도 계속적으로 말한 바 개혁신학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기초하여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 교회사는 교리 논쟁의 투쟁사였습니다. 단 하나의 잘못된 의미라도 개혁교회에서는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든 컵 속에 단 한 방울의 잉크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급기야 전체를 물들인다는 사실과 같은데, 잉크가 떨어진 물의 성분이 변화되어지듯이 성경의 절대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신학이 단 한방울의 상대성이라도 인정하게 된다면 그 신학 역시 성분이 바뀌어 변질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반드시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보통 "신학적이다"라는 말은 "성경적이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아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일 신학과 신앙이 분리되어야 한다라든지 다르다고 말한다면 아주 우스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은 신앙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 신앙과 "분리되어 있는" 혹은 "다른" 그 위험한 것을 신학생들은 7년간이나 배우게 된다는 결론에 빠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단편적인 예일 뿐 더 큰 문제는 신앙이라는 것을 주관적 판단(다양성)에 의지하게 되는 비참함에 이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과 신앙이 동일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신학은 언제나 성경의 절대성에 기초한다는 것을 전제하여 그 신앙으로 하여금 신학이 가리키는 저 성경의 진리를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의 객관성을 부정한다라는 것은 결국 성경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형태로 반드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2000년 교회의 역사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은 인정하지만 그 흐름에 발맞추는 자유주의 신학(상대성)과, 성경의 문자적 표현에 집착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거절합니다.

개혁신앙은 사도의 글, 즉 성경과 그 신앙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분명한 인물사적 노선과 신앙고백사적 노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끊임없는 노력에 있어서 누구의 신학(신앙)을 거쳐서 돌아가느냐, 어느 신앙고백(신조)을 거쳐서 성경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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